인도 반신자유주의 투쟁: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좌파 정부에 맞서는 인도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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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인도 서벵골 주
인도공산당
2007년 1월 난디그람 주민들은 특별경제구역에 화학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자신들의 땅 2만 5천 에이커가 징발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땅은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독재 정권을 지지했던 인도네시아 회사 살림그룹에게 임차될 예정이었다.
좌파전선 정부는 결정을 내리기 전 난디그람 주민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기업의 침략에 맞서 자기 땅을 지키려는 대규모 기층 운동이 시작됐다.
주민들은 행동에 나서 경찰과 CPI
정부는 난디그람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마을에 진입하지 못했고, 1~3월 사이에 잠시 소강 상태가 찾아 왔다. 락쉬만 세스 패거리들은 보복을 계획했다.
그들은 3월에 행동을 개시했다. 경찰 대대와 경찰로 가장한 CPI
주민들은 간신히 공격을 물리쳤다. 주 정부와 CPI
다른 한편, 주 정부는 난디그람 농민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 생활과 노동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기층 대중 행동 ― 를 가리기 위해 중앙정부의 도움을 받아 종단주의와 마오쩌둥주의의 폐해
채찍과 당근을 뒤섞는 얄팍한 책략으로, 좌파전선 정부 총리는 주민의 동의 없이 땅을 빼앗지 않겠다는 선언문을 마지못해 발표했다.
그러나 학살 사건이 발생한 뒤 어떤 정당의 지도자도 난디그람을 방문하는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3월 폭력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보상금이 지불된 것도 아니다. 정부는 사법부 조사를 계속 연기했고,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난디그람 주민들이 서벵골 주 총리의 말을 믿을 이유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그를 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불행히도 주민들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3~11월 사이 저강도 내전이 일어났다. CPI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벵골 주 정부는 난디그람의 마을들로 진입하는데 실패했다.
10월 30일에는 두 명의 주민들이 난디르람 지역을 되찾으려는 경찰과 CPI
11월 10일 CPI
지금 주민들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테러가 자행되고 있고, 주민들은 사실상 포로가 됐다. 주민들은 CPI
좌파를 자처하는 정부가 기업 확장 계획을 위해 무력 테러로 민중운동을 탄압하고 토지를 빼앗으려는 모습은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난디그람 사태가 벌어진 뒤, 서벵골 주 대학교들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CPI
난디그람에 대한 연대 행동의 중심은 콜카타다. 학생·지식인·예술가·법조인·의사 들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단결해서 경찰 공격과 체포를 감수하고 항의 행동을 벌였다. 11월 14일 콜카타에서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난디그람 학살에 항의하는 자발적 시위에 참가했다.
이날 시위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콜카타에서는 주로 집권 좌파전선 소속 정당들이 벌이는 과시용 시위가 열려 왔다.
콜카타의 대규모 연대 행동은 감동적이었다. 그것은 주 정부의 만행과 기업 침략에 반대하는 행동 중 최대 규모였다.
상황이 변했다. 가능성, 기회,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 인도에서 신자유주의는 벽에 부딪쳤다. 무장한 국가권력이 뒷받침하는 기업 확장·구조조정·토지 압류 계획이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각각의 계획은 끈질긴 저항에 직면해 있다.
우리 앞에 대안에 관한 청사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맞선 저항들은 단호할 뿐 아니라 기층 대중이 주도하고 있다. 진정한 좌파라면 기꺼이 이 저항운동의 일부가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