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 위기가 폭발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상황은 갈수록 더 나빠지는 듯하다. 12월 10일 스위스계 거대 투자은행[UBS]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관련해서] 1백억 달러[약 9조 2천4백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미국 빌 클린턴 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는 최근 다음과 같이 썼다. “필요한 정책 변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미국의 경기 후퇴로 세계 경제의 성장이 상당히 둔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세계가 직면한 문제는 몇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위기가 시작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시장 ― 가난한 신용불량자들에게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 준 ― 이다.

미국의 주택시장은 지금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한 투자 전문가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심각한 [주택시장] 침체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이다.”

미국의 현 재무장관인 행크 폴슨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구제 방안을 마련했다. 폴슨이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렇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폴슨은 대형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회수하지 못해 줄줄이 무너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경우 그 손실 규모는 약 1백50억∼3백억 달러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 정도 규모의 채무불이행 사태가 벌어지면 사람들은 신용카드 대금이나 자동차 담보대출금 등등도 갚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부실채권 규모가 7백억∼8백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 이는 1989년 이후 일본의 은행 시스템을 10년 동안 마비시킨 부실채권 규모와 맞먹는다.

그러나 국제 은행 시스템의 많은 부분이 이미 마비됐다. 8월 이후 은행들은 상호 대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국제 금융의 주요 메커니즘이 마비된 것이다. 이것은 누가 손실을 입을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손실을 입을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반영한다.

지금까지 은행들이 인정한 손실 규모는 약 7백억 달러다. 그러나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실제보다 더 좋게 꾸미기 위해 고안된 구조화투자회사(SIVs) 같은 파생 금융 기법을 통해 주택담보대출 채권이 다른 투자자들에게 판매됐기 때문에 부실채권은 국제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널리 퍼졌다.

주택담보대출

한 정책입안자는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은행] 시스템에서 수류탄이 잇달아 터지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은행 시스템] 마비를 악화시킨 것은 ‘실물 경제’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금의 위기는 새천년과 함께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국 연방준비은행[중앙은행]과 각국 중앙은행들은 닷컴 거품 붕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세계 경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소비자들은 더 많은 제품을 구입하는 등 지출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제 이 과정이 역전되고 있다. 신용대출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대출 금리가 인상되자 가계들은 지출을 줄이고 따라서 재화·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감소하고 있다.

이 과정은 아직 초기 단계일 뿐이다. 위기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양대 경제인 미국과 영국에서 고용과 생산은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서양 양쪽에서 소비 지출이 압박을 받고 있다는 조짐이 이미 나타났다.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 등 6∼7년 전에 사용한 방법들을 되풀이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물가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미국·영국·유럽연합 정부들이 설정한 목표치를 웃돌았다.

높은 물가상승률은 세계 경제가 지난 몇 년 동안 상대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수요 증대로 식품, 석유, 기타 천연자원 가격이 오르고 있다.

그래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경기부양책을 너무 많이 쓰면 물가오름세를 부추겨 지난 15년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그들은 ― 그리고 우리도 ― 세계 불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영국은행은 지난주에 금리를 겨우 0.25퍼센트 내린 반면, 유럽중앙은행은 금리를 현행대로 유지했다. 이렇게 소심한 태도로는 심화하는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교수이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이다. 국내 번역된 주요 저서로는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과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책갈피) 등이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방한 강연
2008년 1월 19(토)~20일(일)
■ 2008년 세계 정세
■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좌파 정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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