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경제살리기” 슬로건으로 대권을 잡았다. 그런데 대선에서 잘 먹혀들었던 “경제살리기”라는 말이 과연 성립할 수 있는지는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 우선, “경제살리기”라는 구호에서 “살리겠다”는 대상이 되는 “경제”라는 범주는 초계급적인 “(국민)경제”를 지칭하는데, 이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특히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 경제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범주라는 점이 지적돼야 한다.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적대와 계급투쟁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이른바 “(국민)경제”란 최종심에서는 “재벌 경제” 또는 “자본가 경제”이거나, “서민 경제” 또는 노동자·민중의 경제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경제살리기”(위기 극복)란 항상 노동자·민중과 “서민 죽이기”(착취 강화)를 통한 자본가 경제 살리기(이윤율 회복)의 과정이었다. 지난 1997~98년 IMF 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신자유주의 정권 하에서 죽어난 경제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민중·서민의 경제였다. 지난 10년 동안 재벌 경제는 노동자·민중·서민 경제의 희생 위에서 오히려 더 살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자신들의 재벌 경제 편향을 생색내기 수준의 재벌 규제와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호도하고 은폐하려 했다면, 이명박의 “경제살리기”는 최근 인수위의 금산 분리 완화와 출총제 폐지에서 보듯이 완전히 노골적인 재벌 지원 정책이다.

이명박의 “경제살리기” 슬로건은 이처럼 재벌의 이익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허구이다. “경제살리기”라는 표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권 시기 한국경제가 이미 죽어 있거나 거의 빈사 상태에 있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런가?

한국경제의 연평균 GDP 성장률은 IMF 위기의 해였던 1998년 6.9퍼센트 감소해 뒷걸음질 친 후 김대중 정권 동안(1999~2002) 7.2퍼센트로 ‘V자 형’ 회복을 보였다가, 노무현 정권 시기(2003~2006) 4.3퍼센트로 둔화됐다. 그러나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노무현 정권 시기 (2003~2005)에도 한국경제의 연평균 GDP 성장률은 3.9퍼센트로 같은 시기 OECD 평균치 2.5퍼센트보다 1.4퍼센트 포인트나 높았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 들어 경제성장은 이전 시기에 비해 둔화됐다. 그런데 이명박은 그 이유를 저투자에서 찾는다. 이른바 연이은 “좌파” 정권들의 재벌 규제·분배 우선 정책으로 투자 환경과 투자 심리가 악화돼 투자가 감소했고, 그 결과 성장이 둔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시기에 투자가 부진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투자율(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 39퍼센트를 정점으로 김대중 정권 마지막 해인 2002년에 29.1퍼센트까지 저하했지만, 노무현 정권 후반기인 2006년에도 29.9퍼센트로 더 저하하지는 않았다. 〈그림〉에서 보듯이, OECD 나라들의 경우 투자율은 1990~2004년 평균 20퍼센트 수준에서 거의 변동이 없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이 수치는 1990~97년 무려 40퍼센트 수준에 달했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인 1998~2005년에는 30퍼센트 수준으로 안정됐는데, 이는 OECD 평균치보다 10퍼센트 포인트나 높은 수준이었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2004년 한국의 투자율은 29.5퍼센트로 24개 OECD 나라들 중 1위였다. 그런데 무슨 저투자 타령인가?

〈그림〉에서 보듯이, OECD 나라들의 GDP 구성의 특징은 높은 투자가 아니라 낮은 투자, 그리고 높은 수준의 가계소비가 장기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점이다. 반면, OECD 7대 강국을 지향한다는 한국경제의 GDP 구성은 여전히 극단적인 과잉투자와 과소소비가 특징이다. OECD 나라들의 경우 GDP에서 가계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2004년 평균 61.6퍼센트 수준인 것에 비해, 같은 시기 한국의 그것은 52.7퍼센트로 9퍼센트 포인트 가까이 낮았다. 향후 한국이 OECD 나라들 경제의 평균치에라도 접근하려면, 이명박이 주장하듯 투자를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자를 줄이고 소비를 증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저투자? 한국의 투자율은 OECD 1위 수준

곧 출범할 이명박 정권에게 제기될 진정한 도전은, 이미 죽어 있던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여태까지는 그럭저럭 살아 온 한국경제를 당장 들이닥칠 세계경제 위기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말 그대로 죽이지 않고 살려내느냐일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 시험에서 필경 실패할 것이다. 무능하기 짝이 없던 노무현 정권보다 더 무지할 뿐 아니라 임박한 세계경제 위기에 전혀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무능했던 노무현 정권조차 출범 초기에는 독일 모델, 스웨덴 모델, 네덜란드 모델, 유연안정성 모델 운운하면서, 북유럽 선진 복지국가를 벤치마킹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노무현 정권은 임기 내내 동북아 금융허브, 인적자원개발, 혁신클러스터, 혁신도시, 국가균형발전, 비전2030, 사회투자국가, 사회적 자본, 양극화 해소, 동반성장, 금융감독, 시장규율 강화, 한미FTA 등등으로 좌충우돌했다(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 즉 한국판 “사회적 자유주의”). 이것들은 진정성이 의심되고, 또 대부분 실패했음에도, 어쨌든 과거 박정희식 생산요소 투입 중심의 개발독재 모델의 약발이 다됐음을 인식하고, 혁신과 인적자원개발을 표방하는 소위 “질적 성장” 축적체제로의 전환을 의도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최근 인수위 논의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들에는 새로움이 전혀 없다. 이명박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한국자본주의 축적체제 전환 시도들까지 “좌파” 정책들이라고 폐기하고, 그 대신 1970년대 박정희 군부 독재정권의 친재벌·반민중·정경유착·토건국가 모델을 “선진화” 모델, “신발전체제” 모델이라고 분칠해 내놓고 있다. 이런 시대착오적 접근으로 임기 내 OECD 7위의 선진강국을 건설하겠다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박정희식 양적 성장을 통한 고도성장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막을 내렸다. 1997년 IMF 위기가 이를 웅변적으로 입증하지 않았는가?

현재 한국자본주의의 주된 모순은 생산요소 투입의 부족, 즉 투자의 부족이 아니라 정반대로 투자의 과잉, 과소소비, 무엇보다 낮은 이윤율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의 투자 촉진 정책은 오히려 과잉축적을 더욱 격화시켜 곧 들이닥칠 경제위기의 규모를 키울 것이다.

이명박 정책은 경제 위기를 재촉하고 키울 것

2008년 한국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지난해 여름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새해 벽두부터 세계경제 위기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지난 1990년대 이후 장기불황에서 헤어나고 있지 못한 한국경제에 큰 타격을 가할 것이다. 이미 극심한 내수 부진에 수출 급감(이미 수출 증가세는 급격하게 둔화되고 있다), 물가 상승까지 겹칠 경우 이명박이 공언한 7퍼센트 성장은 고사하고, 1997~98년 IMF 위기 이후 최초의 진정한 불황, 즉 마이너스 성장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의 시대착오적인 막가파식 불도저 정책이 임박한 위기를 더 재촉하고, 더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려는 경부운하 건설은 사상 유례없는 과잉투자와 부동산거품으로 귀결돼 아마도 OECD 나라들 중 최대의 경제 위기로 폭발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장전입·자녀 위장취업·도곡동 땅·BBK 의혹 등 그가 저지른 온갖 불법과 비리에도 불구하고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며 이명박을 찍었던 국민들 다수가 곧바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일 것이다.

다가올 경제 위기 국면에서 이명박 정권과 지배계급은 자본가의 경제, 재벌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 지난 1997~98년 IMF 위기 때처럼 다시 새로운 버전의 “경제살리기”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면서 노동자·민중과 서민 경제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물론 노동자·민중·서민 대중은 “서민 죽이기”를 통한 “경제살리기”를 더는 용납하지 않고 저항할 것이다. 정말이지, 10년이면 충분하다! 노동자·민중과 서민은 더는 “경제살리기” 이데올로기에 현혹되고 포섭돼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지난 대선 국면에서 일부 진보진영까지 이명박의 “경제살리기” 이데올로기, 이른바 “경제성장” 프레임에 포박돼, “진보적 성장”, “사회연대전략” 등을 대안이라고 국민들에게 내놓았던 것은 큰 잘못이다.

다가올 경제 위기와 함께 이명박으로부터 등을 돌릴 노동자·민중·서민을 진보진영으로 견인하기 위해 긴급하게 요청되는 과제는 이명박 정권과 지배계급의 “경제살리기” 이데올로기를 분쇄하고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의 프레임 자체를 깨는 반자본주의 투쟁에 집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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