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의 고발이 있은 지 무려 두 달 반이 지나서야 이건희와 핵심 간부들의 자택, 삼성 본관 전략기획실 등 주요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이건희 일당과 범죄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워낙 크기 때문에, 특검은 삼성의 ‘심장부’에 압수수색 카드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드러난 구체적 사실이 워낙 많았고, ‘삼성 이건희 일가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승계 불법행위 진상규명 국민운동’을 중심으로 문제제기도 지속돼 왔다. 이건희의 털끝이라도 건드리는 시늉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 삼성이 터뜨린 환경 대재앙에 대한 분노는 심상치 않다. 태안 앞바다에 검은 기름을 뿌려 놓고 40일이 지나도록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삼성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해경과 검찰은 사건 경위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민 이영권 씨 영결식에서 고인의 딸은 “기름을 뿌린 사람도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아버지가 왜 삶을 포기하신 것인지 원망스럽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흰 방제복을 입은 어민들이 1만 5천 명이나 모인 영결식장은 삼성 성토장이나 다름없었다. “죽음으로 항거한 고인의 뜻을 기억하라” 등 삼성을 비난하는 구호가 적힌 만장 수백 개가 물결쳤다.

“태안군민 다 죽이는 삼성그룹 박살내자”, “삼성그룹 보위부대 서산검찰 자폭하라” 등 울분을 담은 펼침막도 시내 곳곳에 나붙었다. 조만간 삼성을 비판하는 대규모 집회도 할 예정이다.

보수 언론들은 이처럼 들끓는 삼성 비난 여론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려”(〈헤럴드경제〉) 온 이건희를 “특검 수사가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을 다루”(〈매일경제〉)듯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희의 개인 집무실에서 수사팀이 가지고 나온 것은 달랑 서류봉투 몇 개뿐이었다. 두 달 반이면 주요 장소에서 핵심 증거들을 모두 인멸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 검찰 수사 때도 ‘떡값판사’들이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수사를 방해하고 이건희에게 증거 인멸할 시간을 벌어 줬다고 폭로했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뽑은 필수 수사 항목만도 36가지에 이른다. 특검이 이 ‘비리백화점’에 대한 수사 의지가 있다면 당장 이건희와 공범들을 소환 조사해야만 한다.

가관

“삼성의 5년짜리 고용 사장”이라는 이명박에 대한 특검도 위헌 판결을 면하고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시작부터 개운치 않다.

특검에 임명된 정호영은 “다른 사람이 [특검이] 됐으면 기대를 했는데 …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는데” 하며 수사를 대충 덮을 궁리만 하는 듯하다.

정호영이 지명한 특검보들은 이명박의 전 정책 자문위원, 친이명박 단체 소속 변호사, 〈조선일보〉 탈세와 황우석 사기극 등을 방어한 변호사들까지 줄줄이 가관이었다. 최종 임명에서 일부가 제외되긴 했지만, 친이명박·친기업·우파 변호사들을 모아서 뭘 하려는지 알 만하다.

헌법재판소도 특검법의 동행명령권 조항을 ‘위헌’ 판결해 주요 관련자 소환에 발을 걸었다. 삼성 특검 수사팀도 이 판결을 ‘참고’하겠다고 한다.

이들 특검이 이 나라 경제 권력과 정치 권력의 양 우두머리인 이건희와 이명박을 알아서 심판하길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다. 삼성 특검이 뒤늦게나마 삼성 본관 압수수색을 하게 만든 반삼성 운동과 여론을 계속 고무해야 한다. 

부패·비리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토해 낸 오물이다. 이 오물로 범벅된 이건희·이명박 같은 자들은 부패 고리로 연결돼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여 왔다. 따라서 이명박과 삼성의 부패 고리를 쳐 내는 것은 이들이 저지르는 반동에 맞서는 주요한 방법이다. 이들이 뿌린 돈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 착복한 것이므로, 반부패 투쟁은 노동자 운동의 과제이기도 하다.

‘한몸’이나 다름없는 이건희가  처벌받는 것은 사기꾼 낙인을 지우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이명박에게 악몽과도 같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명박의 부패와 반동에 맞선 투쟁은 곧 ‘삼성공화국’에 균열을 내는 일이기도 하다.

진보진영은 이건희와 이명박을 단죄하고 이들이 세운 ‘삼성 범죄 정부’를 좌초시킬 수 있도록 대중운동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