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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가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분당 논란 때문에 거의 마비되다시피했던 민주노동당이 한미FTA 국회 비준 반대와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항의 등 대외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민주노동당은 자유주의적 포퓰리즘 세력을 대체해 이명박 정부의 반동적 ‘개혁’과 맞서 싸우는 유효한 정치적 수단이 돼야 한다.

심상정 비대위는 1월 19일에 열린 워크숍에서 당 혁신 구상의 대강을 밝혔다. 이 구상에는 지지할 만한 것들과 우려되는 것들이 뒤섞여 있다.

비대위가 당의 외연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은 적극 지지할 만하다. 심상정 비대위장은 민주노총과 전농 기반에 더해 “시민운동의 좌파진영, 문화예술, 사회적 약자, 환경·생태, 여성 등 다양한 부문운동, 검증된 기성 정치인 등에 당의 문호를 과감하게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단체들에게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운동들에도 당 문호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사회운동들과 유기적 관계를 충분히 맺지 못했다. 특히, NGO들이 주도한 운동들에 대해서 그랬다. 가령, 2000년 총선 당시 낙선 운동이나 2004년 탄핵 반대 운동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종파적 태도를 취한 바 있다.

외부 운동에 대해 종종 보였던 종파적 태도는 당 내부에도 부분적으로 반영돼 있다. 특히 평등파들이 강조했던 당원 교육 의무화나 예비당원 제도 등은 당 문호 개방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다. 비대위의 당 문호 개방 정책이 이런 오류들에 대한 자기비판적 교정을 뜻하는 것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당 외연 확대가 민주노동당에 대한 민주노총의 영향력 약화를 동반해서는 안 된다.

심상정 비대위장이 노동할당제 축소를 언급한 것은 그래서 우려된다. 아마도 다른 사회운동 부문들에 당 문호를 개방하려면 노동할당제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착취에 반대하는 운동과 억압에 반대하는 운동은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계급을 착취함과 동시에 그 착취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성·성지향·인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한다.

따라서 억압에 맞서는 운동들이 승리하려면 착취에 반대하는 운동과 결합돼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에 근거하고 있고 노동계급이야말로 착취를 끝장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유일한 사회 계급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직된 부분이 매우 중요한데(비록 조직률이 낮다해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할당제 축소는 민주노동당이 억압과 착취를 끝장낼 수 있는 사회적 세력과 거리를 두는 효과를 낼 것이다.

한편, 비정규직 조직 확대 전략과 함께 “88만 원 세대 젊은 대학생”을 민주노동당의 새로운 기반으로 삼겠다는 “새로운 조직 전략”도 지지할 만하다. 사실, 그 동안 민주노동당은 학생들의 상황에 대해 꽤 무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가 이번 대선에서도 어느 정도 반영됐다. SBS의 대선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의 투표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낮았다. 그만큼 노무현에 대한 환멸이 크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동영에 대한 지지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저조했다. 이로부터 이득을 얻은 오른쪽 수혜자는 이명박이었고(42.5퍼센트), 왼쪽의 주된 수혜자는 문국현이었다(15.9퍼센트). 권영길 후보는 3.5퍼센트를 얻었다. 20대가 민주노동당 후보보다는 NGO와 유사한 스펙트럼을 지닌 문국현으로 상당히 쏠려갔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학생을 조직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정당적 색채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레 단정할 필요는 없다. 20대의 상당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공산이 커 스스로 예비 노동자로 자리매김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다만, 20대는 1990년대 말부터 노동조합 상근 간부층이 형성되고 이들의 보수주의가 뚜렷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대체로 노동운동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 세대라 할 수 있다. 한미FTA 반대 운동이나 이랜드 투쟁 등에 노동조합의 동원이 미미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축소된 것도 이런 인식에 한몫했다.

이로부터 내릴 수 있는 교훈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어야지, 노동과 거리두기가 돼서는 안 된다.

무엇을 위한 혁신인가

비대위가 역점을 두고 있는 평가혁신 분야는 우려스럽다. 비대위는 임시당대회에서 “편향적 친북당 이미지”에 대해 “명확한 평가와 입장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심회 관련 사건”과 “북핵 자위론 논란”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편향적 친북당 이미지”는 당내 평등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낸 신화 성격이 짙다. 비대위가 스스로 사업 원칙이라고 밝혔듯이, “사실에 기초해 냉정하고, 엄정하게” “당 활동 평가”를 해야 한다.

‘일심회 관련 사건’으로 말하자면, 자주파가 다수였던 당 지도부는 최기영 씨를 직책에서 해임하고 대국민 유감 표명을 했던 것이 진실이다. 대다수 당 지도부는 ‘일심회’ 사건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일관되게 국가보안법 희생자들을 방어하지 않았다.

평등파들이 물고늘어지는 당원 정보 유출도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다. 최기영 씨 본인이 당원 정보 유출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법원도 당원 유출 관련 부분을 판결문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원 정보 유출을 꼬투리 삼아 최기영 씨를 징계하려는 것은 국가 탄압에 기회주의적으로 굴복하는 것밖에 안 된다.

선거주의 압력에 기회주의적으로 굴복한다면, 지금도 국가보안법에 의해 고통받는 투사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커다란 환멸감을 느낄 것이다.

“북핵 자위론 논란”도 과장돼 있다. 북핵 개발 직후 방북한 당 대표단은 북 핵실험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그래서 북한 사회민주당 관계자들이 당 대표 연설에 불쾌해했던 것이다. 물론 자주파의 주요 지도자가 “북핵 자위론”을 언급한 것은 잘못됐다. 그러나 이 발언 때문에 당 전체가 “친북당 이미지”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민주노동당 같은 다정파 연합체에서 한 개인이, 설령 그가 간부라고 할지라도, 자기 사상을 표현한 것을 (토론이 아니라) “청산”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은 단일 정파의 의제만을 허용하겠다는 발상이다.

비대위가 당의 결속을 전제로 쇄신을 해야지 결속을 해치면서 잘못된 ‘쇄신’을 하려 한다면, 당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 비대위를 지지했던 당원들로부터 매서운 비판이 제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