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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 국제공동 반전행동:
이라크 전쟁 5년 ― 점령과 저항의 5년

이라크 전쟁은 5년 동안 세계 정치의 지형을 바꿔 놨다.

가장 극명한 변화는 바로 이라크에서 일어났다. 부시는 지난 1월 중동 방문 기간에 “바그다드에 희망이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지만 2003년 3월 20일 부시 일당의 공격이 시작된 이래로 이라크는 생지옥이 됐다.

의학전문잡지 《랜싯》이 2006년에 내놓은 조사 자료로는 65만 명, 2007년 영국의 〈옵저버〉지가 내놓은 자료로는 1백20만 명이 이라크에서 사망했다.

이라크 인구의 54퍼센트가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이라크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더라도 실업률은 60퍼센트에서 70퍼센트 사이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따르면 2백30만 명의 이라크인들이 집을 떠나 난민 신세가 됐고, 또 다른 2백30만 명은 이라크를 떠나야 했다.(이라크 전체 인구는 약 2천2백만 명이다)

부시의 전쟁에 동원된 연합군 병사 4천2백79명이 목숨을 잃었다(2월 26일 현재). 사망과 부상, 전투 스트레스 때문에 참전 군인들의 반전 운동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생지옥

그러나 이라크 점령 5년은 저항과 투쟁의 5년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부시 일당은 큰 난관에 직면해 있다. 2003년 4월 9일 바그다드 함락 이후 그 해 8월부터 시작된 이라크인들의 저항은 부시 점령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부시는 이라크에 대한 공중 폭격을 6배 늘렸고, 지상군 3만 명을 증파했다.

국제적인 반전 운동의 분출 또한 부시의 전쟁에 타격을 입혔다. 2003년 2월 15일에 최고조에 이르렀던 국제 반전 운동은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거대하게 시작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도미니크 레미에의 조사를 보면, 2003년 1월 3일~4월 12일에 전 세계에서 3천 번의 항의시위가 열렸고, 약 3천6백만 명이 참가했다.

전쟁 동맹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부시의 전쟁을 지원한 유럽의 ‘악의 축’이었던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스페인의 아스나르는 2004년 3월 일찌감치 권좌에서 쫓겨났다. 또 다른 ‘악의 축’ 베를루스코니도 정권 연장에 실패했다.

5년 전 2003년 2월 15일 마로니에 공원으로 모여들었던 수천 명의 반전 시위 대열은 한국 최초의 대중적 반전 운동의 출현을 알렸다.

주요 제국주의 열강도 아닌데다, 친제국주의 군사독재의 오랜 억압 때문에 반전 운동의 전통이 없던 한국에서 이것은 뜻깊은 일이었다. 베트남 전쟁 때도 한국군이 총 34만 명 파병됐고, 5천 명이 사망했지만 한국에서 반전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해 7월 한반도 평화포럼에서 동국대 박순성 교수는 한국에서 반전 운동이 등장한 것을 “기적”이라고 평했다.

2월 15일 시위의 성공은 3월과 4월 노무현의 파병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로 연결됐다. 그래서 3월말 국회에서 파병안 통과가 두 차례나 좌절됐다. 반전 운동은 노무현 정부의 정치 위기를 촉발하는 구실을 했고, 2004년 6월 고(故)김선일 피랍 사태에서는 최대 1만 5천 명 규모의 반전 시위가 벌어지면서 파병을 정치의 핵심 의제로 올려놨다.

저항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

반전 운동은 새로운 세대를 운동으로 끌어들였다. 2002년 말 여중생 시위와 2003~2004년 반전 시위의 주요 구성원은 한국의 전통적인 좌파 ― NL과 PD ― 의 어느 경향에도 속하지 않는 청년과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은 국제주의적이고, 개방적이고, 급진적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일부는 새로운 세대의 반제국주의 활동가층을 형성했고, 지금도 대학과 거리에서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건설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반전 운동은 몇몇 중요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한국 반전 운동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많은 활동가들이 2003년 4월 바그다드가 함락됐을 때, 그리고 2004년 8월 자이툰 부대가 파병됐을 때 전쟁과 파병을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싸웠고, 중요한 승리들을 거뒀다. 지금 패배하고 있는 것은 부시 일당이다. 반전 운동의 주장이 옳았음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입증됐고, 이제는 반전 운동의 주장이 일종의 상식이 됐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부시는 여전히 공세를 계속하고 있고, 이란 공격이라는 카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새 주인 이명박은 노무현의 파병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고, 오히려 더 강화하겠다고 한다. 여전히 이라크에서는 자이툰 부대가 점령을 돕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에는 군인이 포함된 지역재건팀(PRT)이 파견돼 동의·다산 부대의 임무를 이어가고 있다. 이명박은 상시파병법을 통과시켜 필요할 때 언제든지 파병하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는 반전 운동을 계속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3월 16일 국제공동반전행동은 매우 중요하다. 3월 16일 부시의 전쟁에 반대하는 세계적 저항의 일부가 돼야 하고, 이명박 취임 이후 벌어지는 첫 대중 시위의 일부가 돼야 한다.

이미 각 대학의 신입생 수련회에서 반전 캠페인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제도 때문에 “저주받은 89년생”이라 불려 온 신입생들은 반전 운동 속에서 자신의 분노와 소외를 표출할 수 있다.

높은 반전 여론 때문에 지금도 대학과 거리에서 반전 운동에 지지를 보내는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활동가들은 다시금 이들이 운동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3월 16일 시위로 연결시켜야 한다. 부시 일당은 이 전쟁을 “상시적 전쟁”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저항과 투쟁도 “상시적”이어야 한다. 3월 16일 부시의 전쟁에 대한 “상시적” 저항이 계속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