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일하는 동네 병원에 마치 아프리카 난민처럼 살가죽만 겨우 남은 앙상한 백발 노인이 찾아왔다. 병원까지 고작 백여 미터 거리를 한 시간 동안 걸어왔다는 그는 막노동 일감이 없고 돈이 떨어져 일주일을 굶었다고 했다. 병원에 오자마자 “밥 좀 달라”던 그의 나이는 놀랍게도 40대 중반이었다. 

우리 병원 단골인 관절염이 심한 한 할머니는 파지를 주워 판 돈으로 손녀를 키우고 사신다. 1회 진료비는 겨우 1천5백 원이지만, 비 오는 날이면 돈을 벌지 못해 아무리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한다.  

한국의 병원은 거의 다 ‘비영리법인’이고 건강은 국민의 기본권으로 돼 있지만, 위에 소개된 ‘국민’을 무상으로 진료하면 ‘불법호객행위’로 처벌받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이 책은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난한 환자들을 병원이 어떻게 쥐어짜고 돈벌이를 하고 있는지 폭로하는 훌륭한 설명서다.

의료계의 ‘블루오션’인 비급여 문제, 불법 의료비 청구의 대명사 선택진료비, 환자가 백전백패하는 의료 사고,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 밥장사·방장사로 돈 버는 병원들의 문제를 포함해 병원 감염, 의료 광고, 민영보험 문제와 한미FTA가 가져다 줄 어두운 미래까지 의료 자본과 정부가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들을 조목조목 폭로한다.    

저자 자신이 백혈병으로 투병하면서 망가진 몸도 아랑곳 않고 이런 실태를 바꾸기 위해 투쟁해 온 훌륭한 활동가이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그는 백혈병을 앓으며 “한 달 약값만 3백만 원이나 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건강의 계급적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다.

“소득의 하위 20퍼센트 층이 상위 20퍼센트 층보다 암 발생률이 남성은 1.65배, 여성은 1.43배가 높고, 암 진단 후 3년 이내 사망률은 남성이 2.06배, 여성이 1.49배가 높다.”

“열악한 노동시간과 환경,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돈 없는 사람들은 병에 더 잘 걸리고, 병에 걸리면 더 많이 죽는다. …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은폐하고, 그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해야 한다.”

저자는 같은 질환의 환자들이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끈질기게 항의해 부당 청구된 병원비를 단돈 몇만 원이라도 끝까지 받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아주 구체적인 방법들을 적어놓은 덕분에 나도 유방암 수술을 했던 어머니께 영수증을 챙겨 놓으라고 말씀드렸다. 어쩌면 부당 지출된 수술비를 환급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문제의 근원인 계급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게 근본적 처방일 것이다. 2004년 보건의료노조가 “돈보다 생명”을 내걸고 파업을 할 때, 교섭에 나왔던 한 병원장은 “우리에겐 생명보다 돈이 우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자들에 맞서 가난한 환자와 노동자들이 연대해 의료 공공성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