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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10,000일의 전쟁》(마이클 매클리어, 을유문화사)

지난 세기 미국이 가장 오래 그리고 잔인하게 전쟁을 수행한 곳은 베트남이다. 그리고 BC 7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강대국에 맞서 독립 투쟁을 벌인 민족도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은 베트남 민족이 제국주의와 조직적 내전을 벌이기 시작한 1945년부터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1975년까지 30년 동안 베트남 땅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의 첫 장면은 1945년 4월 미국 OSS(CIA의 전신 기구) 요원 패티 소령이 중국 남부 국경의 한 찻집에서 호치민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국은 일본을 패배시키기 위해 게릴라들을 지원했다.

일본이 항복하자 호치민은 항일 투쟁 게릴라를 기반으로 베트남민주공화국을 건설하고 9월 2일을 독립기념일로 선포했다. 그러나 독립은 오래 가지 않았다. 미국과 열강은 베트남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급기야 프랑스는 1946년에 인도차이나 반도를 재점령했다. 이 때부터 1954년까지 베트남은 프랑스와 전쟁을 치렀다.

1953년 프랑스 군대는 베트남 북서쪽에 자리잡은 디엔비엔푸 지역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병력을 집중했다. 보 구엔 지압 장군이 이끄는 베트남 게릴라들은 프랑스 군대를 포위하고 이듬해 봄 전폭적인 공세를 개시했다. 결과는 프랑스 군대의 완패였다. 이 충격적인 패배로 프랑스는 항복을 선언했고 그 해 베트남 땅에서 철수했다. 이 책은 베트남 인민들이 게릴라들을 지원하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활동했는지 생생하게 기록했다. 중국이 지원한 대포를 몸에 묶고 중국 국경에서 디엔비엔푸까지 6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맨발로 운반했다는 일화가 그 예다. 이런 인민들의 지원이야말로 베트남 게릴라들이 군사적 성공을 거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미국은 ‘도미노 현상’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베트남에 진주해, 남베트남에 고 딘 디엠을 수반으로 하는 꼭두각시 정부를 세웠다. 1956년부터 남베트남을 통치한 디엠은 민중들에게 원성을 샀으며 사회는 혼란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불교도들의 저항이 거셌다. 농민은 게릴라 활동을 하며 저항했다. 그 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이 결성됐다. 남베트남 군부는 동요했고 결국 1963년 말 쿠데타로 디엠 정권을 몰아냈다.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이 쿠데타를 지원했다. 이 때부터 남베트남이 항복하는 1975년까지 군부는 계속 쿠데타를 일으켰고 혼란은 멈추지 않았다. 케네디가 암살된 뒤 대통령이 된 린든 B 존슨은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전면적인 북베트남 공격에 돌입했다. 그러나 북베트남은 미국의 폭격을 잘 버텨냈다.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자 백악관은 조급해졌고 1968년까지 병력을 계속 증파했다. 급기야 베트남 주둔 병력을 50만까지 늘렸지만, 끝내 미국은 승리할 수 없었다.

북베트남 군대와 달리 미군의 사기는 나날이 꺾였다. 1968년 1월 21일, 북베트남군이 케산 지역에 주둔한 미군을 포위해 공습을 감행하자 미국인들은 디엔비엔푸 전투를 떠올리며 긴장했다. 또, 열흘 뒤 일어난 구정 공세는 반전 운동을 촉진했고 미국 지배자들이 승리를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본토는 분열했다. 전선은 미국으로 옮겨졌다. 거대한 반전 운동이 분출한 것이다. 지배계급도 분열했다. 미군 합참의장 웨스트모어랜드는 해임됐고 국방장관 맥나마라는 전쟁 중단을 촉구하다 쫓겨났다. 대통령 존슨은 옛 친구 맥나마라를 세계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이 때 존슨은 비아냥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맥나마라는 이제 세계은행에서 군사적 우위가 왜 필요한가를 스스로 느끼게 될 것이다.” 존슨은 은연중에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말해 버렸다. 이렇듯 이 책에는 미국 지배자들이 내뱉은 위선적인 언행들이 많이 실려 있다. 1969년부터 전쟁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폭격은 지속됐고 전선은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확대됐지만 그것은 미국이 북베트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따내기 위한 협박일 뿐이었다. 그러나 북베트남은 굽히지 않고 계속 강경하게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결국 1972년 말 백악관은 마지막 협박을 감행했다. 닉슨은 12월 18일부터 그 해 말까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폭격을 감행했다. 이른바 ‘크리스마스 폭격’이다. 폭격 11일째인 12월 29일 하노이와 하이퐁에는 폭탄 10만 발이 투하됐다. 북베트남 지도자 하 반 라우의 표현대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5개에 해당하는 위력이었다.”북베트남은 그래도 항복하지 않았다. 지친 미국은 1973년 1월 27일 평화 협정에 조인했다. 미국이 패배한 것이다. 미군이 철수한 뒤 북베트남은 아무런 저항 없이 2년 만에 남베트남을 점령했다. 북베트남 군사 지도자 반 디엔 퉁의 생일이자 메이데이 85주년인 1975년 5월 1일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함락시켰고 독립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이 책의 저자는 베트남전을 이렇게 평가했다. “인류 역사는 베트남 민족의 용기와 불굴의 정신을 높이 평가할 것이다. 아시아의 작은 국가가 스스로의 힘으로 민족 재통일을 이룩한 것보다 더 위대한 본보기가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1만일 간의 전쟁은 독립을 위한 베트남 민중들의 투쟁 역사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 현장을 증언해 준다. 저자 매클리어는 CBC(캐나다의 방송사) 종군 기자로 베트남전을 직접 경험했다. 저자는 ‘베트남전쟁 대하 시리즈’라는 TV 다큐멘터리를 직접 제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그래서 이 책은 다큐멘터리 대본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준다. 베트남전에 관한 생생한 현장 묘사와 증언은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몇몇 장면은 지루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린든 존슨이 겪은 인간적 고뇌를 증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또 기록 형식에 머무르기 때문에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이 부족한 것도 흠이다. 따라서 베트남전쟁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리영희 교수의 《베트남전쟁 : 30년 베트남전쟁의 전개와 종결》(두레)을 먼저 읽어보고, 그 뒤 구체적인 증언과 장면 묘사가 담긴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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