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아는 경제학자 하나 내게 찾아 주실 분 없습니까?"

 ― 인도네시아 외무장관 알리 아틀라스

 

십 년이 아니라 일 년 사이에도 강산이 변할 수 있는 모양이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국제적 투자를 하는 자들과 소위 경제 전문가들은 "아시아의 호랑이들"을 입버릇처럼 찬양했다. 세계은행이 1993년에 발표한 보고서 〈아시아의 기적〉을 보면 세계은행이 당시 상황에 얼마나 도취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전세계의 지배 계급들은 시장 개방과 자본 자유 이동이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증거라며 "아시아 모델"을 칭송했다.

아시아에 혹독한 경제 위기가 닥친 지 1년 남짓이 된 지금 세계은행은 새로운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 보고서의 제목은 〈아시아의 기적에 대한 재고〉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들로서는 당연히 재고해야 되겠지. 한국에서는 하루에도 1만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있는데, 이는 한 달에 자그마치 30만 명이 해고되고 있는 셈이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거의 완전한 파산 상태에 이르렀는데, 자카르타 증권거래소 상장기업 282개 가운데 겨우 22개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일본은 25년 만에 최악의 경기 침체에 빠졌다. 전체적으로 아시아 증시에서 6천억 달러 이상의 시가총액이 날라가 버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국가 예산과 공공 정책을 지시하는 일이 흔해지면서 동아시아는 세계 시장에 더 깊숙이 통합되고 있고 이로 인해 마치 새로운 형태의 종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상당수 좌파의 경제 분석에서조차 득세하던 "세계화"에 대한 과장이 이제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참말이지, 자본의 냉혹한 구조조정 추진 ― 다운사이징, "린" 생산, 아웃소싱, 많은 업무의 비정규직화, 새로운 자본시장의 창설, 새로운 무역 협정과 투자 협정의 체결 ― 덕분에 투쟁과 저항의 지형이 변모했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제 위기는 자본의 본질적인 동력들과 모순들을 바꾸기보다는 그러한 모순들의 폭발력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보여 줬다. 사실, 아시아의 위기는 "세계화" 시대 자본주의의 두 가지 근본적인 모순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첫째로, 아시아의 위기는 오늘날 세계화하고 있는 자본이 과잉 축적과 과잉 생산능력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둘째로, 아시아의 위기는 가속된 자본 축적이 자본의 지시에 맞서 반격할 수 있는 강력한 신흥 노동자 계급을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시험대에 오른 세계화

 

세계화에 대한 권력 집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시험적 사례가 있다면 동아시아, 특히 그 지역 신흥공업국들인 한국·타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대만일 것이다. 세계 다른 지역을 둘러보면 경제의 세계화에 관한 주장들이 얼마나 웃기는지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이동하는 자본에 대한 과장에도 불구하고 따지고 보면 국제 자본은 생산과 무역을 산업 선진국들에 집중하고 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아시아의 일부만이 세계적 자본 순환에 체계적으로 통합됐다. 예를 들어, 1980년에서 1991년 사이에 아시아(일본을 제외한)가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에서 15%로 증가한 반면, 선진국의 경우는 72%에서 63%로 감소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나머지 지역 ― 아프리카의 "상대적 후진국들"과 중남미, 특히 카리브해 연안의 나라들 ― 이 국제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에서 13%로 대폭 감소했다(United Nations, World Economic Survey, 1993). 1994년에 개발도상국들에 투자된 자본 총액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동아시아에 투자됐다.

그러므로 아시아를 제외하면 세계화 테제는 성립할 수 없었다. 아시아가 유일한 성공 사례였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현재 위기는 세계화 테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게다가 아시아의 사태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 전체에 〈비즈니스 위크〉 지가 1970년대 이후로 "세계의 번영에 대한 가장 커다란 위협"(1998년 1월 26일)이라고 부른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

각종 경제 신문의 피상적인 묘사와는 반대로 동아시아의 붕괴는 근본적으로 부패나 정실 자본주의 또는 과도하게 규제되는 시장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붕괴는 자본주의의 과잉 축적(그리고 그에 따른 이윤 압박)이라는 고전적 문제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동아시아로 자본이 대거 유입된 덕분에 생산 설비가 크게 증설되긴 했지만, 대부분 수익성 높게 사용되지 못한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적 생산력 발전은 자본주의의 본질에 내재한 한계들과 충돌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므로 기업은 생산 능력 ― 새로운 공장과 광산 그리고 거대 농장, 새 사회기반시설과 서비스업들 ― 을 훨씬 더 확장하는 것으로 대응해 왔다.

전반적으로 생산 능력이 과잉인 상황에서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실제로 체제 전체로 봐서는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시장 경쟁의 논리에 사로잡힌 개별 자본주의 기업에게는 그것만이 합리적인 진로다. 결국 그 목적은 시장 점유율 쟁탈전에서 경쟁 상대를 꺾는 것이다. "린" 생산, 신기술, 노동 규율, 상대적 저임금, 신속한 시장 진입 등의 요소를 제대로 결합시킨 기업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과잉 축적 문제가 있음에도 이런 일들을 이룩하고 가장 효율적인 자본주의 기업을 건설하기 위해서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아시아는 최근 자본 축적의 시험대였다. 값싼 노동, 손쉬운 자금 조달, 엄격한 노동 법규들을 이용하여 기업을 비호하는 정부 등과 같은 요인들을 통해서 짭짤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자동차, 철강, 전자, 반도체, 광통신 설비들이 무턱대고 증설됐다. 일단 경기가 정점에 이르자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 즉, 생산 능력이 막대한 과잉 상태인 데다 수익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세계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 보자. 오늘날 자동차 산업의 세계적인 과잉 생산 능력은 대략 2100∼2200만 대다. 이 수치는 세계 시장에 비해 대략 36%의 과잉 생산 능력, 즉 80개의 효율적인 최신식 공장의 제조 능력을 합친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 사실상 자본주의의 논리로는 이러한 현실 때문에 ― 자동차 기업들은 아시아 전체에서 생산 능력을 무분별하게 확장했다. 위기가 발발하기 전에 자동차 기업들은 한국과 일본을 빼고 아시아 자동차 생산 능력을 두 배로 증대시키는 투자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은 이미 설비 과잉 문제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비슷한 과잉 축적 문제 ― 수익성 있게 사용되지 못하는 생산력의 창조라는 ― 들이 컴퓨터 칩, 반도체, 광케이블, 화학 제품, 철강 같은 산업들을 괴롭히고 있다. 세계 디램 시장도 이 점을 보여 준다. 분석가들은 디램의 공급 과잉이 1995년에 0%였던 것과 달리 올해[1998년]에는 18%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그 결과 디램 가격이 크게 폭락했다.(세계 디램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 특히 파괴적이었다.) 64메가디램 가격은 1997년 초 개당 60달러에서 그 해 말 개당 20달러로 추락했다. 올해 64메가디램 가격은 8달러까지 떨어졌다(〈월 스트리트 저널〉 1998년 6월 4일치). 아시아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은 이처럼 과잉 생산이 초래한 가격과 이윤 하락 압력이다. 그래서 일부 투자가들은 이런 업종들에 더 투자하면 적정 수익을 얻기가 어려울 것임을 깨닫고 도망칠 자세를 취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그들은 아시아 주식의 비중을 줄임으로써 자신들의 판돈을 줄이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동아시아와 같은 지역에서 발을 빼는 일이 벌어졌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동아시아와 같은 지역에서는 투기적 자본의 막대한 유입으로 가속된 열광적인 축적이 시류였다. 달리 말하면, "시장력"이 자본의 실제 과잉 축적 문제에 반응했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위기는 사회의 불충분한 시장화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 시장에 내재한 모순들 때문이었다. 요컨대 아시아의 위기는 자본주의 세계화의 산물로, 세계적 규모로 자본주의 모순이 확대되고 격화된 결과다.

이 모든 일은 단기 금융자본의 이동에 의해 악화됐다. 중남미 시장이 불안정하고 일본의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고 있던 상황에서 국제 은행들과 금융 기관들은 동아시아에서 큰 이윤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들은 공장이 새로 들어서고 신기술이 도입되고 고속도로, 공항, 통신 시스템, 고급 호텔 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면서 호황에 동참하고 싶어했다. 금융 자본이 동아시아 지역에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면서 비교적 손쉽게 저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지자, 제조 기업들과 건설 기업들은 계속 신규 사업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경제 호황은 투기적 호황의 고전적 특징들을 모두 갖고 있었다. 거창한 신규 사업 계획들이 장밋빛 전망 하에서 발표될 때마다 거품은 커져만 갔다.

불가피하게 일부 투자가들은 위험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들은 세계적 과잉 생산 능력 상황에서 공장, 농업 관련 기업, 광산, 호텔, 고속도로 따위가 너무 많이 건설되고 있다고 느꼈다. 처음에 그들은 아시아의 신규 투자 사업에서 조용히 발을 뺐다. 그들은 주식시장에서 현금을 빼고 아시아 통화들을 손해를 보면서까지 내다팔았다. 일단 시동이 걸리자 그 과정은 봇물 터지는 듯한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1990년에서 1996년까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한국·타이로 유입된 민간 자본은 연간 2백억 달러에서 9백50억 달러로 거의 다섯 배가 증가했던 반면, 1997년에는 이 나라들로부터 무려 2백억 달러에 달하는 민간 자본의 순유출이 있었다. 지난해 여름 타이의 바트 화 폭락과 함께 추락이 시작됐다.

별안간 재계는 동아시아의 부채 ― 세계 자본의 제공으로 생겨난 부채 ―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해 여름 바트 화의 폭락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조차 세계은행과 IMF와 많은 외국 은행들의 경제학자들은 모두 인도네시아 경제의 펀더멘틀스(기초)가 건전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들은 타이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문제가 인도네시아에서는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몇 달 뒤에 자본 도피가 시작됐고, 세계 시장은 인도네시아의 외채가 8백억 달러라고 발표했다. 자본 유출이 너무 심각해져 세계 자본에 의해 통화 가치의 평가절하를 강요당한 나머지 마침내 인도네시아는 경제가 붕괴 일보직전 상태에 이르렀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국 은행에 갚아야 할 부채 비율이 35%에서 140%로 급증했다(〈이코노미스트〉, 1998년 3월 7일).

그 다음에는 한국으로 이목이 집중됐다. 동아시아에서 일본 다음 가는 주요 공업국인 한국은 이제 매우 허약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일본의 위기에 의해 초래된 일본 엔화 가치의 장기적 하락이 직접적 요인이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특히 허약해 보였다. 한국은 자동차, 철강, 전자 산업 등에서 일본과 직접 경쟁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일본 수출품 가격 하락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가질 만하다. 그래서 한국은 해결하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고 있었다. 수출이 호황을 누렸는데도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가격 하락 압력 때문에 지지부진했다. 예를 들어, 1996∼1997년에 한국은 수출량이 37% 증가했지만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겨우 5%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낮은 수출 소득 증가로는 한국의 기업들이 새로 공장을 건설하거나 설비를 교체하기 위해 차입한 돈의 원리금을 갚기에 부족했다. 1996년 말 30대 재벌의 평균 부채 비율은 400%대였다. 위기가 닥치고 수출과 수출 소득이 폭락하자 그러한 부채를 갚을 전망이 희미해졌다. 재벌 중 4분의 1 이상이 무너졌으며, 그 가운데는 자동차 그룹인 기아 그룹, 조선·기계·자동차부품 관련 그룹인 한라그룹도 포함돼 있다.

그러는 동안 동아시아의 위기는 그 위기의 진원지인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일본의 불황은 1990년대 초에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거대한 붕괴에서 시작됐다. 일본의 산업 생산은 1997년에 대략 1% 정도 감소했고, 올해 1/4분기에는 무려 5.3%나 줄어들었다. 기업 이윤과 자본 투자가 줄고, 기업 부도가 폭증하고, 소비자들의 소비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백화점 매출도 매달 약 15%씩 떨어지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일본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부실 채권은 1조 달러를 넘어서고, 기업의 자기자본 대비 평균 부채 비율은 미국의 1.5배에 달했다(〈비즈니스 위크〉, 1998년 5월 18일). 이러한 일들은 모두 지난 6년 동안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 지출로 1조 달러를 투입했는데도 벌어진 일들이다. 일본에 대한 경기 전망이 너무 비관적이었기 때문에 RBC 도미니언 증권회사 수석 애널리스트인 폴 서머빌은 일본의 불황이 15년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전망은 일본으로의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일본인들의 현지 투자가 매우 중요한 "아시아의 호랑이들"에게 더한층 악재다. 그리고 그것은 위기가 곧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이유다.2)

동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잇달아 일어난 주식시장 붕괴, 공장 폐쇄, 대량 해고, 정부 지출 삭감, 통화 평가절하는 수백만 대중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 대규모 자본 투자와 축적은 이윤을 위한 생산의 논리와 충돌하고 있다. 그 결과 동아시아는 지금 "[자본주의]이전 시대엔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였을 유행병, 즉 과잉 생산이라는 유행병"에 걸려 있다.3) 이 유행병이 지금 말로 다 할 수 없는 시련을 강요하고 있으며, 저항과 반란을 부르고 있다.

 

노동자 대중과 자연 환경 : 위기의 몇 가지 양상

 

지난해 7월 이후 5백만 명 이상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1998년 말에는 인도네시아 실업자는 2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타이의 경우에는 3백만 명에 육박할 것이며, 한국의 경우에는 거의 2백만 명이 될 것 같고, 말레이시아에서는 1백만 명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150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추방당할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대량 해고와 함께 생활 수준의 파괴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8월에서 12월 사이에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 수입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인도네시아의 경우와 비교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일인당 연간 소득이 1천2백 달러에서 3백 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인도네시아의 최대 공업 도시인 수라바야에서 하루 최저임금은 1년 전의 2달러에서 지금은 30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더구나 IMF의 지시로 식료품 보조금과 연료 보조금이 없어지고 물가가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올해 말에 갑절로 돼, 5천8백만 명이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만 그런 게 아니다. 타이에서도 쌀과 밀가루 가격이 2월에 47%나 뛰어올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앙을 가져다 줬다. 동아시아에서 경제 위기는 무역 수치들과 투자 수치들의 변화에서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빈곤·실업·영양실조·사망률의 증가를 동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빈민 구제 활동가들은 많은 산모들이 값이 세 배로 뛴 우유를 살 수 없어서 아기에게 녹차를 먹인다고 보고하고 있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과 학교를 중퇴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젊은 여성들이 특히 심각한 타격을 받았는데, 공장과 가게가 문을 닫고 소녀들이 학교를 못 다니게 됐기 때문이다. 타이에서는 위기로 인한 궁핍 때문에 추가로 수천의 농촌 가정이 자기 딸을 방콕의 사창가로 팔아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에 따르면, 방콕에서 무려 1백만 명의 젊은 여성들이 매매춘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부인하는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 위기에 노출돼 있다.

자연 환경의 파괴도 고통을 크게 가중시키고 있다. 미친 듯한 산업화와 과시성 초대형 프로젝트는 엄청난 환경 파괴를 가져왔다.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동아시아 지역을 전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오염돼 있고 환경이 가장 나쁜" 지역으로 묘사했다. 아시아의 강들은 납 오염도가 서구 강들의 평균 20배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아시아의 대기오염 때문에 해마다 1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또, 50만 명이 상수도 오염과 형편없는 위생시설 때문에 죽는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산업 안전 관리와 공해 방지에 관한 규제를 정부가 폐지함에 따라 경제 위기는 환경 파괴를 가속시킬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대형 산불 사태는 장래에 닥칠 일에 대한 무서운 경고다.

순전히 규모만으로도 상업적 벌목은 세계 열대우림의 10%가 있는 인도네시아의 다른 모든 산업 활동을 능가한다. 약 6천만 명의 사람들이 열대우림에서 살고 일하며, 그들 중 3분의 1 이상이 수천 년 동안 고갈되지 않고 이용할 수 있었던 화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수백만 명이 상업적 벌목과 광업 등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고 있다. 벌목 회사들은 인도네시아 국토 면적의 3분의 1 ― 거의 64만 제곱킬로미터 ― 을 소유하고 있으며 벌목과 식수 조림 활동의 일부로서 숲을 정기적으로 태우고 있다. 토지와 숲의 사유화와 파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 칼리만탄 주에서 250만 명 이상의 토착민들이 강제 이주당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약 1천만 명이 자바에서 다른 섬으로 "재정착"당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수마트라와 칼리만탄의 저지대 열대우림에서 거의 2만 제곱킬로미터가 불에 탔다. 그리하여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 커피와 코코아 농업과 어업에 대한 악영향과 같은 생태계 파괴를 겪고 있다. 인도네시아·싱가포르·타이 남부·브루나이·말레이시아·필리핀 남부의 7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아 왔으며, 많은 사람들이 호흡기 질환, 천식, 각종 피부 질환과 눈 질환에 대한 치료를 받아야 했다.4)

또한 거대 광산 프로젝트의 영향도 파괴적이었다. 뉴올리언즈에 본사가 있는 프리포트 맥모란이 운영하는 구리 광산과 금광보다 더한 사례는 없다. 토착민들에 대한 유괴·고문·살인을 저질러 온 이 회사는 서파푸아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매장량이 많은 광산을 경영하고 있다. 이 회사가 푼쿡 자야 산에서 막대한 양의 광석을 채취하는 바람에 선광 부스러기가 아콰 강을 오염시켰으며, 어류를 죽이고 산림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 회사는 지금 광산의 산출량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으며, 빚에 쪼들린 정부가 IMF와 세계적 투자를 하는 자들에게 돈을 지급하기 위해 자연 자원을 매각함에 따라 앞으로도 이러한 끔찍한 상황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5)

자연 환경 파괴의 증가는 동아시아 전체에서 시장의 요구가 강화됨에 따라 발생하는 직접적 결과다. 금융 자본의 이동과 함께 산업의 과잉 축적은 노동 대중과 환경에 대한 고전적인 자본주의적 공격을 불렀고, 마르크스의 말처럼 "동시에 모든 부의 원천 ― 토지와 노동자 ― 을 약화시킨다."6)

 

저항과 반란 : 아시아의 새로운 노동자 운동

 

그러나 이러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저항이 있었다. 지난 15년에서 20년새 저 유명한"아시아의 기적"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취업 노동자 계급의 규모가 크게 증가했고 노동자 계급의 자체 조직과 투쟁이 상당히 진보했다. 경제적 남반구, 즉 소위 "개발도상국" 전체에서 산업 노동자들의 수만 해도 1980년 2억 8천5백만 명에서 1994년 4억 명으로 증가했는데, 주로 아시아에서 증가했다. 게다가 이 기간에 매우 많은 동아시아 여성이 임금 노동자로 편입됐다.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여성은 전체 임금 노동자의 42%를 차지하며, 의류, 전기 제품, 전자 산업 같은 주요 산업에서는 흔히 압도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뿐 아니라 1980년대 후반에는 노조 조직률이 크게 증가했다. 예컨대 1987년에서 1989년 사이에 조직 노동자의 수는 방글라데시에서 27% 증가했고, 필리핀에서 38%, 한국에서는 100% 증가했다. 1986년에서 1989년 사이에 대만의 조직 노동자는 50% 이상 증가했다.7)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숫자만이 아니다. 동아시아 노동자 계급은 전투성과 자체 조직의 형태들을 발전시켰으며, 그 전투성은 흔히 서구의 노동 운동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흔히 젊은 여성들이 이러한 투쟁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이러한 운동은 독립적인 노조나 노조 연맹을 새로 탄생시켰다. 그러한 노조나 노조 연맹은 국가로부터 용인되고 국가의 규제를 받는 기존 노조의 노사 협조주의를 배격했다. 1988년에 대만에서는 독립적 노동조합 연맹체가 새로 등장했으며, 1995년에는 한국에서 또 다른 연맹체[민주노총]가 결성됐다. 한편, 방글라데시의 전국의류노동조합과 법외 노동단체인 인도네시아 노동자 투쟁 센터가 이들 나라에서 주요 투쟁의 선두에 섰다.

인도네시아는 매우 중요한 사례인데, 정치적 불만이 증대하면서 학생들이 이끈 항쟁이 독재자 수하르토(1965년의 유혈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는데, 이 쿠데타 때 적어도 50만 명의 좌파들이 살해됐다)를 타도했다. 수하르토를 타도한 거리 시위에서 결정적인 역할은 비합법 조직이었던 민중민주당(PRD)과 그 당의 학생 단체인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를 위해 연대하는 학생들'(SSDI)이 수행했다. 젊은 급진 민주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 PRD는 수하르토가 1975년에 침공한(미국의 지원을 받아) 동티모르의 독립을 옹호한다. 그리고 수하르토에 반대하는 항쟁중에 PRD는 "우리의 중국인 형제 자매들을 공격하는 것은 우리의 투쟁을 약화시키고 수하르토를 도울 뿐"이라고 주장하며 두각을 나타냈다(PRD의 1998년 5월 14일자 성명). 이와 같은 급진 민주주의적 관점은 운동에 활력을 줬으며, 이로부터 나오는 용기는 참말이지 고무적이었다. 학생들은 곤봉을 휘두르고 최루탄을 쏘아 대는 군대에 맞서서 몇 달 동안 날마다 시위, 정부 건물 점거, 단식 투쟁 등의 항의 투쟁을 했다. 수하르토가 퇴진하기 직전의 마지막 며칠 동안에는 군대가 총까지 쏴서 많은 학생들이 죽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사태에 대해 논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년과 대학교에 기반한 반대 행동과 함께 비록 작지만 전투적인 노동자 운동이 최근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예컨대 1995년 7월 비합법 단체인 인도네시아 노동자 투쟁 센터(PBBI)가 PRD와 연계해 보고르에서 1만 3천 의류 노동자들의 파업을 이끌었다. 지난 7월 이 노조는 수라바야에서 2만 명이 참가한 파업이자 지역사회 항의 운동을 주도했다. 지난해 10월 경제 위기로 인해 IMF의 지시에 따라 대량 해고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 때 PBBI는 반둥의 국영 항공사에서 1만 6천 명의 노동자가 참가하는 파업을 주도했다.

이런 일들은 자그마한 성공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찰과 군대가 탄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보인 투쟁 결심은 실로 고무적인 일이다. 그리고 수하르토를 타도한 민중 운동의 여파로 노동자 단체들은 자신감이 증대했고 자기 주장을 분명히 펴고 있다. 노동자들과 도시 빈민들은 수하르토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는 동안 여러 차례 거리에서 학생들과 함께 싸웠다. 예를 들어, 5월 3일 자카르타 동부의 탕게랑에서 온 3백 명의 공장 노동자들이 학생들의 호소에 응해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게다가 수하르토의 후임 정부가 감옥에 갇힌 노조 지도자 무흐타르 팍파한을 풀어 주기로 결정했음에도 노동자들의 항의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자카르타에 있는 가루다 항공사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으며, 수라바야에 있는 마스피온 회사의 노동자 5만 명도 파업을 했다. 마스피온 회사의 파업 노동자들은 수하르토 몰락 이후 최대 항의 시위를 조직했다. 6월 8일, 1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수라바야에서 집회를 열고 경찰과 충돌했다. 그와 동시에, 자카르타의 운송 노동자들은 공공운송청(PPD)을 공격하고, 파업으로써 73개의 버스 노선을 중단시켰다. 그들의 파업이 절정에 달했을 때 9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PPD 청사 밖에서 시위를 했다. 이와 같은 행동은 노동자 단체가 빈곤, 대량 해고, IMF의 지시에 반대하는 투쟁의 선두에 섬에 따라 청년들의 급진적 반대 운동이 더 계급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한 전망이 한국만큼 큰 곳도 아마 없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된 노동자 계급의 거대한 격동이 한국을 휩쓸어 왔다. 1986년에서 1990년 사이에 노조원 수는 거대한 파업 물결 과정에서 1백만 명에서 2백만 명으로 갑절이 됐다. 연좌 파업[공장 점거]과 같은 전투적인 노동자 계급 투쟁의 고전적 무기가 더욱 흔해졌다. 1987-88년에는 마산과 창원과 같은 공업 도시들에서 노동자 반란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다. 당시 한 회사가 한 무리의 파업 여성 노동자들을 공격하면서 촉발된 연대 파업에 30개의 신생 독립 노조들이 가세했다. 연대 투쟁이 하도 고무적이었고 전투성도 확산됐기 때문에 급진적인 노동자들은 당시의 마산과 창원을 "해방구"라고 불렀다. 1995년 11월, 50만 조합원을 가진 (법외 노조인) 민주노총(KCTU)이 결성된 뒤 1996년 12월 말에 대중 파업이 일어났다. 1라운드는 1996년 12월 26일에 시작됐다. 그 뒤를 이어 1997년 1월 초부터 17만 명의 노동자들이 새로운 규제 조항들이 포함되고 대규모 정리해고를 쉽게 해 주는 노동법 개정에 항의해 열흘이나 지속된 대중 파업에 참가했다. 겨우 10년 사이에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세계에서 가장 전투적인 노동조합 운동 가운데 하나를 건설했다. 이 운동은 지금 최근의 경제 위기로 인해 혹독한 시험을 치르고 있다.

IMF가 [1997년 11월] 57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국 정부가 대량 해고를 단행해야 한다고 했을 때 최대 도전이 제기됐다. 바로 10개월 전에 정리해고와 관련된 문제로 대중 파업이 촉발된 것을 고려해 국가는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1998년 1월] 노사정 위원회를 소집했다. 더 온건한 한국노총 대표자들과 함께 민주노총 대표자들도 초대됐다. 올해 2월 6일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별로 많지 않은 양보들을 얻는 대신 정리해고와 IMF 융자의 모든 기본 조건들을 받아들인다는 협정에 서명해 많은 노조 활동가들을 당혹케 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수백 명의 화난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반란을 일으켜, 협약을 부결시키고, 그 협약에 서명한 지도자들을 제거했으며, 총력 파업 날짜를 잡았다. 그러나 며칠 뒤에 파업 호소는 번복됐다.

지금 한국에서 노동조합 투사들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경제 위기의 규모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을 충격에 빠뜨릴 만큼 심각했다. IMF의 지시를 받아 국가 정책을 수립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국민적 자존심이 크게 상처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외환보유액을 위해 금이나 미국 달러를 기증해 달라는 정부의 호소에 응했다. 사람들이 외제 승용차를 파손하는 일이 잦았다.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이런 애국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 국가와 지배 계급에 대항하는 동원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 급진적 노동자 운동이 직면한 과제다. 그러한 운동은 국제 자본(그리고 IMF 같은 그 대리인들)과 동시에 한국 지배 계급을 표적으로 삼는 정치적 행동강령을 발전시켜야만 한다. 급진주의자들은 한국 정부가 부추기는 애국주의와 노동 계급적 성격을 갖는 반제국주의를 서로 대립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반제국주의는 민족주의와 달리 경제의 사회화와 산업의 노동자 통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운동을 위해서는 새로운 노동 운동과 함께 독립적인 노동자 계급 정치가 발전될 필요가 있다. 이 목표를 이루는 데 왕도는 없다. 대량 해고와 경제의 붕괴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반격할 수 있는 자신감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대중 저항이 어려워진다. 투쟁의 정치적 시야를 넓히는 일로서 IMF와 국내 지배 계급에 대항해 계급에 기반한 정치적 반대를 형성하는 일은 이런 상황에서는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10여 년의 투쟁을 통해서 수만 명의 헌신적인 노조 활동가들과 함께 전투적인 노동자 운동이 생겨났다. 그리고 대량 해고, 경제 위기, 수천 민주노총 투사들의 계속되는 대중 행동 선동이라는 상황에서 노동자 계급 저항을 건설할 수 있다는 전망도 실재한다. 사실, 노조들은 초겨울에 주춤거린 뒤에 지금은 반격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고 있다. 5월 27-28일에 민주노총의 12만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에 반대하는 파업 행동에 참여했다. 지금도 대규모 파업들이 계획돼 있다.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파업을 해 경영진으로부터 양보를 얻어 냈다. 현재 투쟁의 단기적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경제 위기와 IMF의 내핍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의 열기 속에서 전투적인 노동자 계급 지도부가 형성되고 있다.

 

저항의 아시아 모델?

 

동아시아에서 노동자 계급과 빈민들은 국제 자본과 격렬한 전투를 벌여야만 하는 처지에 있다. 식량 폭동,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시위, 대량 해고에 반대하는 노동자 투쟁 등과 같은 매우 중요한 경제적·정치적 투쟁들이 만연돼 있다. 이러한 투쟁들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퇴락하는 "아시아의 기적"이라는 시련 속에서 저항 세력들이 형성되고 있다. 세계화하고 있는 자본이 가져다 주는 참상에 맞서 저항 세력들이 주요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앞으로 몇 년 동안에 판가름날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노동자들의 엄청난 전투성과 자체 조직은 존중을 받을 만하다. 보고르의 의류 공장과 콸라룸푸르의 전자 공장의 젊은 여성들의 파업, IMF가 지시한 대량 해고에 대항해 반둥에서 일어난 항공사 노동자들의 파업, 수라바야에서 일어난 수만 노동자들의 대중 시위, 한국에서 기아차 노동자들이 벌인 파업은 모두 다운사이징, 내핍 정책, 민영화, 실업, 빈곤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보여 주는 것이다. 동아시아는 국제 계급 투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투쟁들에서 새로운 "아시아 모델", 즉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한 노동자 계급 저항의 모델이 등장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투쟁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그리고 우리는 그 투쟁들에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1) 출처 : David McNally, "Globalization on Trial : Crisis and Class Struggle in East Asia", in Monthly Review, Vol. 50, No. 4(1998년 9월), pp.1-14. 데이빗 맥낼리는 캐나다 토론토의 글렌든 대학 정치학과 교수다.

2) 중국 상황 전개의 독특한 동역학을 조사하는 일은 이 논문의 한계를 벗어난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했다는 최근의 발표와 수만 개의 국영 기업들이 문을 닫음에 따라 수백만 명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는 점은 주요한 문제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문제들은 동아시아 전체와 세계경제 전반에 반향을 미칠 것이다.

3) Karl Marx and Friedrich Engels, The Communist Manifesto(p.73)

4) Dianne Feeley, "Who Set the Fires?" Against the Current 72(January-February, 1998), p.17; and Curtis Runyan, "Indonesia's Discontent", World Watch, May-June 1998, pp.12-23.

5) 프리포트 맥모란에 관한 정보는 루냔(Runyan)에게서 입수한 것이다.

6) Karl Marx, Capital, v.1, trans. Ben Fowkes(Harmondsworth: Penguin Books, 1976), p.638.

7) 이 단락에 있는 대부분의 데이타와 한국 노동 상황에 대한 대부분의 데이타는 킴 무디(Kim Moody)의 Workers in a Lean World(London: Verso, 1997), p.202에 빚지고 있다. 무디의 귀중한 책뿐 아니라 제레미 시브룩(Jeremy Seabrook)의 In the Cities of the South(London: Verso, 1993)과 스티븐 프렌켈(Stephen Frenkel)이 편집한 Organized Workers in the Asia-Pacific Region(Ithaca: ILR Press, 1993)도 유용한 자료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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