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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 <맞불> 논설:
‘물밑접촉’, 되풀이하지 말아야

아이러니이게도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촛불시위가 정점에 오른 직후 난점을 드러내곤 했다. 6월 10일 1백만 시위 직후에 그랬고, 공안탄압을 뚫고 50만 명 규모의 촛불이 모인 7월 5일 직후인 지금도 그렇다.

6월 10일 직후에는, “정권 퇴진 운동 불사” 입장을 밝혔던 국민대책회의가 경고 시한인 6월 20일 뒤에도 정권 퇴진 운동을 결정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국민대책회의가 경고대로 이행할 태세가 돼 있지 않음을 확인한 이명박 정부는 기만적 반성문 제출→추가협상 발표→고시 강행→공안탄압으로 숨가쁘게 몰아쳤다.

7월 5일을 전후해서는, 촛불 운동의 기조 변화가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촛불집회 횟수를 주 1회로 줄이고 대신 불매운동이나 국민투표 요구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온건 시민단체들은 애초 7월 5일 집회가 이런 기조 변화의 선포장이 되기를 바랐던 듯하다.

그러나 촛불 운동이 무슨 스포츠 스타도 아닌데 왜 절정에 달했을 때 ‘은퇴’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공안탄압 속에서도 7월 5일 촛불대행진에 수십만 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견됐었는데 말이다.

국민대책회의는 상당한 내부 이견에 부딪혀, 7월 5일 집회를 앞두고 이런 기조 전환을 결정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7월 5일 촛불대행진을 향후 촛불 확대의 발판으로 삼기보다 그동안의 성과를 일단락짓는 장으로 모색하는 기류가 일각에 암묵적으로 존재했다. ‘국민승리선언’이라는 집회 명칭에서 힐끗 드러나듯이 말이다.

청와대의 책임있는 사람을 통한 국민요구사항 전달이 성사됐다면 그나마 그동안의 성과를 일단락짓는 계기로 평가됐을 수 있다. 이런 구상 속에서 몇몇 주요 시민사회단체 책임자들이 청와대의 책임 있는 사람을 통해 국민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물밑접촉’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청와대와의 ‘물밑접촉’을 통한 사전협의는 청와대로부터는 뒤통수를 맞고 촛불 운동 내에서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당혹스런 결과만을 낳았다. 말할 것도 없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청와대가 ‘촛불 끄기를 조건으로 한 대화’ 운운하며 비열한 언론 플레이를 통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명예를 실추시키려 한 데 있다.

공개적

그럼에도 국민의 요구를 전하는 대책회의의 선의를 이처럼 야비하고 간교한 청와대가 악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했어야 했다. 그래서 촛불 지지자에게는, 대책회의에서 합의된 공식 절차에 따라 공개적 방식으로 요구 사항 전달이 이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 국민대책회의 운영위원들은 대부분 언론을 통해서야 비로소 청와대와의 ‘물밑접촉’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공안탄압을 휘몰아치고 촛불 운동의 방향을 둘러싸고 민감한 내부 논의가 한창인 상황에서, 촛불 운동에 파장을 미칠 수 있는 청와대와의 협의가 물밑으로 진행된 것은 부적절했다.

국민대책회의 소속 주요 시민·사회단체 간부 3명과 만나 사전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임삼진은 얼마 전까지 유명 시민단체 지도자였고 전태일 열사의 매제다. 그가 시민사회 진영 인사들과 두루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점은 익히 예상할 수 있다. 바로 이 점, 시민사회 진영 인사들의 생리를 꿰뚫고 회유할 능력이 이명박이 그를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발탁한 이유가 아니겠는가.(6면에 실린 관련기사 ‘촛불항쟁과 NGO’를 참조하시오.)

국민대책회의는 ‘국민요구사항’을 집회에서 발표하고 ‘이 요구를 전달하려 하니 청와대의 책임 있는 인사가 나와서 접수하라’고 공개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 요구를 무시한다면 청와대는 거리에 나와 있는 수십만 대중의 분노에 직면할 것이다. 만약 청와대의 책임 있는 인사가 나온다면 그 만남에서 오가는 대화는 방송을 통해 전부 공개돼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대표는 수십만 대중의 든든한 지지를 등에 업고 대화에 임할 것이고, 개인적 친분이나 압력이 작용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 공방의 여지 자체가 없을 것이다. 공개적 방식이 필요한 까닭이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이번 경험을 교훈 삼아, 청와대에 우리의 요구를 전달할 필요가 있을 때 대책회의 내에서 합의된 공식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또, 청와대가 요구 전달조차 촛불집회 중단을 조건으로 제시했으므로 대통령 면담 요구가 더는 의미 없어졌음을 공개 표명해야 한다.

지금 촛불 운동은 성과를 거두며 ‘화려하게 은퇴’하는 모양새를 고민할 때가 아니다. 몇몇 성과가 있지만 두 달 넘도록 마음고생, 몸고생 한 촛불 지지자들은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둘 자격이 있거니와, 기왕의 성과도 이명박의 반격으로 그나마 매우 불안정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혹심한 탄압 속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원하는 한 촛불을 이어가도록 노력하면서 다시 촛불이 확대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심각한 경제 위기와 기만적 개각 같은 이명박의 실수 덕분에 이런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