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 사회변혁가는 세계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 계급은 세계적 계급이며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 모든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본가 계급도 마찬가지로 세계적 계급인데, 그들의 거대한 다국적 기업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경제 통합 때문에 전 세계 노동자들은 점점 더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TV 방송을 보고, 같은 고용주 밑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나 세계가 하나로 수렴되고 있는 동시에, 세계는 경제적으로 국민 국가로 나뉘어 있기도 하다. 지구상의 각 나라들은 저마다 독자적인 정부와 법, 국기와 국가, 군대와 국경선, 출입국 규제와 노동법을 가지고 있다.

만약 모든 국가들이 평등하고 경제 규모가 같고 군사력이 동등하다면 국제주의는 쉬울 것이다.

근본적 사회변혁가는 그저 노동자들에게 국제 지배계급에 맞선 공동 투쟁을 위해 국경을 넘어 단결하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사실, 많은 경우에 이것이 바로 근본적 사회변혁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독일의 금속 노동자들이나 미국의 광부들이나 호주의 부두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근본적 사회변혁가들은 국제적 연대 파업, 보이콧, 모금과 격려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본주의는 처음엔 유럽과 미국에서, 그리고 점차 전 세계로 불균등하게 발전했다. 초기 자본주의 열강은 자신들의 새로운 권력을 이용해 제국을 건설했다. 그들은 산업과 금융의 힘과 그 힘을 바탕으로 만든 육군과 해군을 이용해 경제적으로 덜 발전한 나라들을 침략·정복해서 식민지로 만들었다. 제국을 건설한 나라들은 자신들이 침략한 나라에서 엄청난 부를 약탈했고 이는 식민지의 경제 발전을 더욱 제약했다. 가장 강력한 지배자들이던 영국·스페인·네덜란드·프랑스·독일·미국·러시아·일본·이탈리아의 지배자들은 인도·아시아·아일랜드·극동·중동·아프리카·카리브해 연안·남미를 식민지와 종속국으로 만들며 개척해 나갔다.

오늘날 형태상의 식민지는 이미 사라졌지만 강대국은 여전히 작은 나라들을 지배하고 있다. 약한 나라들은 강대국의 말을 듣지 않으면 차관이 보류되고, 해외 원조가 끊기고, 관세 장벽이 높아지고, 외교 협력을 거부당하고, 무역 제재를 받는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실패하면 강대국은 자신이 보유한 거대한 군사력을 이용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강대국은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가난한 나라들에 강요할 수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제도와 기구들을 갖고 있다. 이들은 세계은행(WB 또는 IBRD),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을 통해 경제력을 행사한다. 여기에 덧붙여 국제연합(UN)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기구를 통해 외교적·군사적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이것이 제국주의 체제다.

자연히 작은 나라와 피억압 민족들은 이런 제국주의 질서에 저항해 왔다. 몇 백 년 동안 계속된 아일랜드의 독립 운동, 인도의 독립 운동,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의 투쟁까지 제국주의 열강은 항상 저항에 직면했다.

이런 투쟁들은 대개 근본적 사회변혁을 위한 노동 계급의 투쟁이 아니다. 이런 투쟁들은 민족 해방 투쟁들이며 토착민들의 자주적 통치를 위한 투쟁이다. 오늘날 이런 투쟁들은 이미 국민 국가를 형성한 국가들이 자국의 정책에 간섭하는 강대국에 대항하는 투쟁인 경우가 흔하다. 흔히 노동자들이 이런 투쟁에 참여하지만 이런 투쟁들을 지도하는 세력은 대개 노동자들보다는 중간 계급이거나 최소한 지배 계급 일부의 지원을 받는 기성 정치인들이다. 예컨대, 1991년 제2차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그런 경우였다.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 사회변혁가들은 무엇을 주장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양편 모두 저주 있으라’ 하고 말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이들은 제국주의 열강이 하는 짓을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한편 강대국이 이미 성취한 것의 축소형을 확보하고 싶어하는 자들을, 특히 이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가 포악한 독재자일 경우 왜 그들을 지지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양편 모두 저주 있으라’ 하는 태도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양편은 서로 평등하지 않다. 한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그것을 지탱해 주는 가장 강력한 경제가 있다. 다른 한편에는, 부유한 나라들로 인해 가난해진 나라들이 있다. 중동의 석유처럼 이들의 천연자원들은 약탈당하고 재정은 서방 은행 빚 갚느라 파탄난다. 예컨대, 미국과 니카라과, 미국과 쿠바의 분쟁은 제1차세계대전 때 독일과 영국의 대결처럼 서로 대등한 두 세력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주 강력한 억압 국가와 훨씬 더 약한 피억압 국가를 보고 있다.

근본적 사회변혁가들은 무조건 억압자에 맞서 피억압자 편에 서야 한다. 비록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족을 핍박하고 카스트로가 동성애자를 핍박하는 것처럼 피억압 국가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비민주적이고 소수를 핍박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만약 영국과 미국 같은 제국주의 강대국이 이런 분쟁에서 이긴다면 전체 제국주의 체제가 강화될 것이며 이와 함께 자국의 노동 계급을 공격하는 제국주의 나라 지배 계급의 힘도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1970년대에 베트남이 미국을 이긴 것처럼 피억압 국가가 제국주의 강대국을 이긴다면 전체 제국주의 체제와 강대국 내에서 지배 계급의 힘이 약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베트남 전쟁 뒤 미국 지배 계급이 겪은 일이다. 이것이 바로 국제적으로 좌파가 대부분 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과 매우 커다란 정치적 차이가 있었음에도 NLF의 승리를 주장한 것이 옳은 이유다.

그러면 근본적 사회변혁가들은 민족 해방 투쟁을 지도하는 자들과의 정치적 차이에 대해 조용히 있어야 하는가? 예컨대, 우리가 노무현을 지지하는 NL계열의 전략은 이 나라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 뿐 아니라 근본적 사회 변혁은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NL이 근본적 사회변혁가들이 아니라 좌익 포퓰리스트들이라는 것과 그들이 노동 계급의 계급 투쟁에 의존한다면 한층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비판적인 글을 쓰거나 연설을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NL보다 더 효과적으로 미국과 이 나라의 사장들에 맞서 싸우는 근본 사회변혁적 대안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와 똑같은 관점이 그 밖의 경우에도 적용되는데, 이는 민족 해방 운동이 그 정의상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사장들과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NL이 미국에 반대할 때 이들과 같은 편에 서는 문제에서 그들에게 우리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조직에 가입해야 한다는 따위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의 비판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를 편들지 않고 피억압자들을 편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지는 비판적이지만 무조건적이다.

이같이 우리는 제국주의 국가들을 반대하는 피억압 민족과 함께하는 동시에 피억압 민족 안에서 제국주의자들과 자기 나라의 지배 계급 또는 미래의 지배 계급에 맞서 싸우는 근본적 사회 변혁 운동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계급 투쟁과 반제국주의 투쟁을 결합시키는 것, 즉 민족 해방 투쟁을 근본적 사회 변혁을 위한 투쟁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뜻한다.

제국주의 나라에 살고 있는 근본적 사회변혁가들은 반제국주의 투쟁을 벌임으로써, 지배 계급이 흑인 노동자들과 백인 노동자들을 대립시키고 “우리 나라를 지원”하기를 요구하거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쟁을 위해 희생하라”며 저임금과 더 열악한 노동 조건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가난한 나라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그와 동시에 그들 나라 안의 국가주의적·인종차별적 생각들과 싸우는 것이며 따라서 노동 계급의 단결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선을 베푸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는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