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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제의 소명과 교회권력의 소명

지난 8월 21일 천주교 서울대교구(교구장 정진석 추기경)는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에게 ‘이례적으로’ 안식년을 통보했다. 10년 정도에 한 번씩 받는 안식년이기 때문에 2002년 안식년을 보낸 전 신부에게 다시 쉬라는 것은 사실상의 징계처분이라는 의혹을 주기 충분하다. 한 번 부임지가 결정되면 3~4년을 활동하는 것에 비추어 지난해 2월 수락산 성당 주임신부로 발령이 났던 전 신부에 대한 안식년 통보는 이례적이어도 보통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교회권력은 이전부터 평택미군기지 반대, 삼성비자금 폭로 등과 같이 굵직굵직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전 신부는 삼성비자금 폭로 직후 정진석 추기경에게 불려 갔고, 이번 촛불집회 중의 시국미사와 관련돼 교구청의 호출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교회 내부에서 공공연하다. 그 이전 정 추기경이 교구장으로 있었던 청주교구에서는 정의구현사제단 공동대표와 소속 신부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해외로 나가야 하는] 교포사목으로 발령받은 적이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실천을 따르고 널리 퍼뜨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소명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 착취, 차별, 가난 등 사회 권력의 횡포들 속에서 조용하던 교회가 그나마 그에 대해 저항하는 활동을 하는 신부에게 이례적인 인사발령을 내린 것은 석연찮다.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던 베드로의 형상이 지금의 교회권력에 오버랩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여러모로 이상한 인사발령을 ‘그저 일상적인 인사발령’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전 신부가 담당했던 소임을 앞으로는 교회권력이 적극적으로 맡아 수행해야 한다. 그 소임에 대해서는 전 신부의 사제관에 걸려있는 뮤리엘 레스터의 글이 대신해서 말해 준다.

“평화운동가의 일이란,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 세계를 정화하는 것, 세계를 가난과 지나친 부에서 건져내는 것, 병든 이를 치료하는 것, 슬픈 이를 위로하는 것,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이를 일깨우는 것, 가는 곳마다 기쁨과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 그리고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한테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