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건설해야 할 당

크리스 하먼(《오늘의 세계 경제: 위기와 전망》(갈무리),

《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책갈피),

《민족 문제의 재등장》(책갈피)의 저자)

 

운동에서 정당을 배제하는 것은 기성 정당들만을 이롭게 할 뿐이라고 크리스 하먼은 주장한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유럽사회포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흥미진진한 모임 가운데 하나는 ‘당과 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축구장만한 홀에 5천 명이 빼곡히 들어찼다. 그것은 여러 모로 ‘당과 계급’에 대한 아주 오래된 논쟁이 되풀이된 것이었다.  

이런 논쟁은 새로운 대중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견고한 정치 조직들이 운동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느끼는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비롯한다. 이런 우려는 사회민주당이나 스탈린주의 정당의 손에 운동이 이용당한 오랜 경험 때문에 더욱 커졌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진정한 대중 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매우 다른 견해를 지닌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한다.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 방침을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먼저 시위나 파업을 제안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행동에 나서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제3의 인물은 권력자들을 믿으며 아무 행동도 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운동은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자생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운동을 안에서 보면 거기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운동을 이끌려는 수많은 개인들의 시도가 들어 있다.  

게다가, 운동이 발전하면서 운동의 진로에 대한 특정 견해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그런 사상을 표현하는 비공식적 조직들에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자생적으로’ 시작한 많은 위대한 대중 봉기는 조만간 서로 경쟁하는 경향들로 양극화했다: 프랑스 혁명에서 지롱드 파와 자코뱅 파, 챠티스트 운동에서 ‘물리력파’와 ‘도덕파’, 제1차세계대전 말의 혁명기에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운동에서 ‘유러코뮤니스트’, ‘게바라주의자’, ‘마오주의자’, 다양한 종류의 트로츠키주의자. 설사 운동 내에서 사람들의 분열이 분명한 목적·계획 없이 되는 대로일지라도, 사실상 ‘정당’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운동 내의 분열은 결코 임의적이지 않다. 기성 사회의 압력 때문에 그 속에서 발생하는 운동에는 분열이 구조화된다.

우리는 모두 기성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에 대한 관념이 우리의 의식에 뿌리 깊이 배어 있다. 그람시도 지적했듯이, 흔히 말하는 ‘상식’은 이런 관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투쟁을 통해 사람들은 이런 가정 가운데 일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가정 전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훨씬 더 흔하게는, 일부에 대해서만 의심하고 그 나머지는 고스란히 받아들이거나, 체제의 일부에 맞서 싸울 수 있지만 체제 전체에 맞서 싸울 수는 없다고 믿는다. 개량주의 정치 ― 기성 체제의 제도를 이용해 체제를 개혁할 수 있다는 믿음 ― 는 이런 ‘모순적’ 의식의 논리적 결론이다.

시애틀 시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 온 운동도 이런 전반적 패턴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 운동에는 자본주의를 증오하는 배짱 두둑한 혁명가들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개혁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많은 계획들에 이끌린다 ― 생산의 ‘현지화’, 자유무역 원칙에 따른 유럽의 식료품 시장 개방, IMF의 개혁, IMF를 유엔개발위원회(UNCD)로 대체하기, 기성 국가에 압력을 넣어 세계의 빈곤을 해결하고 금융 거래에 ‘토빈세’를 부과해 위기를 막기, 일부 다국적 기업과 동맹을 맺어 다른 다국적 기업을 반대하기,  30년 전처럼 국가가 자본주의 발전을 직접 지도하는 형태로 신자유주의를 되돌려놓기 등.

공식적으로 인정받든 그렇지 않든 간에, 비공식적이고 조직돼 있지 않은 다양한 개량주의 ‘정당들’이 운동 안에서 출현했다. 그리고 공식적이고 고도로 조직돼 있는 다양한 개량주의 정당들이 그 옆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 정당들은 자신들의 강력한 기구와 광범한 지지망을 통해 운동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운동에서 ‘정당들’을 막는다고 해서 개량주의 정당들이 운동을 이용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새로운 개혁 프로그램에 열의를 보이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기성 정치 제도들에 영향을 미쳐 그런 프로그램을 실행하려 할 것이다. 토빈세를 바라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프랑스 대선에서 좌파 드골주의자인 슈벤느망에게 투표하거나(아탁의 지도자 베르나르 카상이 그랬듯이), 적어도 ‘복수 좌파’ 정당들에 투표할 것이다(대부분의 운동 지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당 배제 때문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정당은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과 그 개량주의적 산물에 맞서 가장 강력하게 투쟁하는 정당들이다 ― 혁명 정당. 1918년 독일 혁명 때 ‘정치인들’은 노동자 평의회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좌파 지도자인 로자 룩셈부르크는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정치인’ 배제는 군부와 협력해 노동자 평의회 권력을 파괴하고 있던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의 영향력을 배제하지는 못했다.

1월에 있을 포르투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은 정당들의 공식 대표단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브라질 노동자당의 개량주의 지도자들에게는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특히 새 대통령 룰라가 연설함으로써, 이 행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지도’와 ‘지배’라는 말은 종종 혼동되곤 한다. 진정한 혁명가들은 기성 사회는 오직 대중의 자주적 행동을 통해서만 대체될 수 있다고 믿는다. 혁명가들은 지배에 아무 관심 없다. 우리는 한무더기의 쓰레기를 또 다른 쓰레기로 바꾸려는 게 아니다. 모든 대중 투쟁 때마다 사람들은 놀라운 자발성을 보여 준다. 그들은 스스로 새로운 조직 방식을 만들어 내고 자기 주위의 세계를 바꾼다. 그러나 낡은 찌꺼기는 마술처럼 단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혁명적 대안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는 순간에도 옛 국가 기구와 개량주의 정치인들에게 의지한다. 우리는 투쟁을 한층 밀고 나가기 위해 자발성을 일반화하려 한다. 그러나 여전히 눌어붙어 있는 찌꺼기 ― 여성 차별, 유색인종 차별, 권위주의에 굴종하기 ― 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의 관심사는 다양한 개량주의 세력들이 제시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운동을 고무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설득한다는 의미에서 지도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첩함과 규율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배 계급과 그들의 중앙 집권화한 국가를 패퇴시키기 위해서는 민첩함과 규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상을 공공연하게 주장함으로써만 그렇게 할 수 있다 ― 개량주의 계획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당 반대’ 구호 뒤에 숨지 말고 공공연하게 자신의 사상을 설파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우리는 운동을 지배할 생각이 없다. 그것은 운동 안에서 상이한 사상의 상호 작용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우리는 조직하고 싶고 사람들을 우리 주장 쪽으로 끌어당기고 싶다. 그리하여 새로운 활동가들에게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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