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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노동자연합 탄압이 드러낸 교훈

지난 8월 28일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 활동가 7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판사가 보기에도 “국가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점에 대한 (수사기관의) 소명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명박의 심각한 위기 속에 20만 범불교도 대회까지 예고되고 있던 상황에서 공안당국이 충분한 준비 없이 서둘러 사건을 터뜨렸음을 짐작케 해 준다.

그러나 이번 영장 기각은 “[사노련이 친북 단체도 아니고] 국가 변란을 일으킬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는 설명을 “담당 판사님이 주의 깊게 듣”고(오세철, YTN 라디오 인터뷰) 설득된 결과가 아니다. 〈중앙일보〉는 “경찰의 수사가 불충분하다는 것이지 국보법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하길 바란다”고 못박았다.

영장이 기각된 배경에는 촛불 운동의 여파가 자리잡고 있다. 사노련 정치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촛불에 참가한 단체가 본보기로 국가보안법 탄압을 받는 것에 많은 시민들이 반감을 나타냈다. 사노련 탄압에 반대하는 내용을 주요기사로 실은 〈저항의 촛불〉은 촛불 시위가 활발했을 때만큼 거리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사노련에 대한 방어 운동이 신속하고 광범하게 조직됐다. 바로 이 점이 영장 기각의 핵심 이유다. 체포된 7명을 방어하기 위한 대책위가 이틀 만에 결성됐고 정치적 경향이 서로 다른 진보단체 활동가 50여 명이 이 회의에 참가했다. 게다가 김수행, 조희연 교수 등 진보적 지식인들도 사노련 탄압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사노련 탄압에 반대해 이렇게 신속하고 광범한 연대가 형성된 이유는 이번 사건이 준 충격 때문인 듯하다. 그동안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됐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우리 운동에 칼날을 겨누고 있다는 경각심과 위기의식을 일깨워 줬다.

경각심

특히, 사노련 사건은 북한 체제에 반대하는 좌파도 국가보안법 탄압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줬다. 그 동안 국가보안법 탄압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던 좌파들도 이 사실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북한을 남한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고 북한 정권에 일관되게 반대해 온 국제사회주의자들(IS)도 김대중 정부 때까지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탄압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구속영장 기각 후, 〈조선일보〉는 “과거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문건을 배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재판에서는 유죄로 판결해 왔다”는 선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친북이든 아니든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활동은 모두 처벌 대상”이라며, “친북 아닌 좌파[의] 파괴 활동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진보 운동은 국가보안법 탄압이 과거지사라거나 친북 단체들만의 문제일 뿐이라는 잘못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사노련 사건은 국가보안법 폐지가 왜 여전히 진보진영 전체의 주요 과제인지 잘 보여 줬다.

국가보안법의 직접적인 대상이 친북 좌파나 혁명적 좌파라 할지라도, 탄압의 목적은 정부 비판과 반대 운동 전체를 위축시키려 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급진 좌파들은 그 동안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에 개입하지 않았던 관성에서 벗어나 탄압의 주된 표적이었던 친북좌파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단체들과 광범한 연대를 건설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지난 국가보안법 투쟁에서 돌아볼 점

그동안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은 급진 좌파를 포함한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에게 ‘비인기 종목'이었다.

그것은 소위 김대중·노무현 ‘민주화' 정권 10년을 거치며 국가보안법의 실질적 효력이 없어졌다는 안이한 인식 때문이었다.

진보진영 내 많은 사람들이 지난 10년 동안 마치 국가보안법 탄압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불과 2년 전에 민주노동당을 겨냥한 소위 ‘일심회' 사건이 있었다. 노무현 임기말에는 레임덕이 심화하면서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안이한 인식은 국가보안법 문제를 소수 ‘친북'적 개인이나 단체만의 문제인 것처럼 여기는 태도와도 관계 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에 맞선 운동진영의 공동대응은 그동안 큰 어려움을 겪었고, 국가보안법 구속자들도 광범한 방어를 받지 못했다.

상당수 급진 좌파의 경우에는 작업장의 경제적 쟁점과 투쟁만을 강조하고 정치적 쟁점과 투쟁에는 소홀한 경향도 국가보안법 탄압에 맞서 싸울 필요성을 간과하는 데 한몫했다.

개혁주의자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나 그 당에 의존한 것도 심각한 문제였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자유주의 개혁정부와 협력해 국가보안법을 개정·폐지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었던 2004년에 열린우리당에 의존하다가 국가보안법을 한 글자도 고치지 못해 심각한 사기저하를 겪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후보 시절에는 국가보안법 개폐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정작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가보안법을 휘둘렀다. 따라서 앞으로도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투쟁 건설이 중요하다.


탄압은 진행형

사노련 사건에 대한 영장 기각이 탄압의 끝이라고 여겨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저들은 잠깐 주춤한 것일 뿐이다. 사노련 활동가들에 대한 불구속 수사는 계속되고 있고, 검찰은 영장을 재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사노련만 탄압의 대상인 것도 아니다. 사노련 활동가들이 체포된 바로 다음날 윤기진 범청학련 의장이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전교조 최보경 교사도 사노련 사건이 있기 얼마 전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돼 9월 2일 재판을 받았다. 이 밖에도 ‘탈북자 위장 여간첩 사건', ‘군 내부 간첩 용의자 50명 메모', ‘촛불시위 여대생 사망설'을 제기한 대학생에 대한 국가보안법 기소 등 마녀사냥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마녀사냥

이번 영장 기각 때문에 당분간은 주로 북한과의 연계나 친북을 빌미로 한 국가보안법 마녀사냥이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마녀사냥은 언제나 우리 운동 전체를 겨냥하는 것이다.

‘친북'이 아닌 단체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은 이제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교훈을 이끌어내서도 안된다. “한국에서 사회주의자의 ‘공개' 활동에 대한 최소한의 법제도적 가능성이 확인됐다.”(〈참세상〉 유영주 기자)는 결론은 섣부르다. 한때 민중당에서 활동하다 우파로 전향한 한나라당 대변인 차명진은 “좌파정부 10년 동안의 보호 속에서 … 체제전복을 선동했다”며 혁명적 좌파들에 대한 탄압을 별렀다.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는 이명박의 제물이 되지 않으려면 진보진영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 탄압에 반대하는 투쟁을 폭넓게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