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양대 국책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국유화된 후 세계 주요 증시가 일시적으로 안정되면서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이번 위기가 바닥을 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추석 연휴를 전후해 미국의 월스트리트에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사상 최악의 금융 쓰나미가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이고 1백5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역시 5대 투자은행에 속하는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전격 매각된 데 이어서, 부도 직전에 몰린 세계 최대 보험회사 AIG에 대해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제공한 사태가 그것이다.

미국 정부는 리먼브러더스의 경우 구제하지 않고 파산보호 신청을 하도록 내버려 둔 반면, AIG에 대해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가 8백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79.9퍼센트의 지분을 인수해 사실상 국유화했다. 미국 정부는 AIG의 경우, 리먼브러더스와 달리, 실물 경제·소비자·연기금 등과 더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파산의 충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번 월가의 금융 쓰나미는 전 세계 증시 폭락세로 이어졌는데, 9월 15일 영국 증시가 3.92퍼센트, 16일 일본·중국 증시가 각각 4.95퍼센트, 4.47퍼센트 하락했으며, 우리 나라 증시는 무려 6.1퍼센트 폭락해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주가 폭락과 동시에 환율도 50.9원 폭등해서 “9월 위기설”의 위기 시나리오가 언제라도 현실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위기의 배경과 원인

이제 서브프라임 위기는 단지 유동성의 위기가 아니라 연이은 투자은행의 부도 위기에서 보듯이, 지급불능의 위기이며, 또 단지 금융 위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용 감소와 민간소비 감소에서 입증되듯이 실물경제의 불황으로 번지고 있고, 지난 2/4분기 EU·독일·프랑스와 일본이 전분기 대비 GDP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서 보듯이, 미국 경제 위기를 넘어 세계경제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위기를 촉발한 직접적 원인은 2001년 미국의 주가거품 붕괴에 따른 불황을 연준이 연속적인 금리 인하와 저금리 정책으로 대처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주택 가격 거품의 팽창과 붕괴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반노동 공세에서 노동으로부터 자본으로 가치 이전과 양극화가 초래한 사상 유례없는 분배의 불평등, 즉 대내적 불균형의 심화와, 〈그림 1〉에서 보듯이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동아시아 수출국·산유국으로부터 달러 환류에 기반을 둔 이른바 “2기 브레튼우즈 체제”의 불안정성의 심화라는 글로벌 불균형을 배경으로 한다.

더 근본적·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위기는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의 장기 저하에 따른 장기불황의 연장선에서 발발한 것이다. 이번 위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위기의 불가측성인데 이는 무엇보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부채의 증권화”와 파생금융상품의 확산에 따른 금융 불안정성과 불투명성의 증대에 기인한다.

이번에 AIG의 경우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이나 부채담보부증권(CDO)과 같은 채권을 사들인 뒤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증권인 “신용디폴트스와프”(CDS)라는 신용파생상품 거래에서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CDS는 현재 계약 액수가 약 62조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다가, 대부분 확인이나 해지가 어려운 당사자들 간의 계약 형태여서 향후 새로운 위기의 화약고로 간주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과 공통점·차이점

일부 경제사가와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갈 정도로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루비니(N. Roubini)는 이번에 미국 경제의 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금융 위기이자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실물경제의 불황이 될 것이며 약 18개월 정도 지속되는 ‘U’자형 불황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아리기(G. Arrighi)는 이번 위기의 과정에서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는 “최종적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번 위기가 몇 가지 측면에서 1930년대 대공황과 닮은 점이 있다고 본다. 우선 이번 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자기조절적 시장”,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과도한 맹신이 초래한 반동이라는 점에서, 1930년대 대공황 직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사상 유례없는 분배의 불평등과 그 결과로서 대중의 극심한 과소소비를 주요 요인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1930년대 대공황 시기처럼 세계적 헤게모니 국가가 부재하거나 결정적으로 약화된 조건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 〈그림2〉 미국에서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  : 1917~2006

〈그림 2〉에서 보듯이 미국 소득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이 소득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50퍼센트에 달했는데 이는 불길하게도 1930년대 대공황 직전인 1928년과 같은 수준이다. 물론 오늘날은 미국 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의 기민한 대응 등이 1930년대와 달리 거시적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나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1년 넘게 계속된 극도의 신용경색과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 위기의 정도가 아직 이전의 주기적 불황 수준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이번 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번 위기는 본질적으로 이윤율 저하의 위기라는 점에서 이윤율이 안정한 조건에서 발발했던 1930년대 대공황보다 오히려 더 심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1930년대 대공황의 경우 케인스주의적 국가주의 처방(비록 제한적이고 임시변통적인 처방이라 할지라도)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반면, 이번 위기는 그러한 케인스주의적 국가주의 처방의 약효가 다 되면서 현재화된 1970년대 이후 장기불황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대응이 최종적 한계에 봉착하면서 발발한 위기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위기에 대한 국가주의적 대응과 시장주의적 대응이 모두 실패한 조건에서 발발한 위기라는 점에서 더 심각할 수 있다.

나아가 1930년대 대공황의 경우 주로 자본 그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 위기라면, 오늘의 위기는 자본 그 자체의 한계에 더하여 피크오일과 같은 자본 외부의 한계가 중첩돼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할 수 있다.

금융화가 위기의 원인인가?

이번 위기에서 “부채의 증권화”라든가 신용파생상품과 같은 금융적 측면을 중시하면서, 이번 위기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보다는 민스키의 금융적 불안정성 명제와 같은 케인스주의 경제학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필자는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저하 경향 명제, 가공자본 개념, 실물자본 축적과 화폐자본 축적의 모순에 관한 이론, 로자 룩셈부르크의 과소소비론과 토니 클리프의 영구군비경제론 등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핵심 개념과 이론들은 이번 위기를 설명하고 대안을 강구하는 데서 여전히 유효하고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이번 위기가 무엇보다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 경향, 1980년대 이후 이윤율을 회복하려는 자본의 반노동 공세와 그에 따른 노동으로부터 자본으로 가치 이전의 결과로서 심화되는 과소소비 경향, 1990년대 이후 탈냉전에 따른 영구군비경제 효과의 약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따른 “부채의 증권화”, 신용파생상품 등 가공자본의 팽창에 따른 금융적 불안정성의 증대와 거품의 팽창과 폭발이 중층결정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민스키를 따르는 일부 케인스주의자들은 금융화에 따른 금융적 불안정성의 심화가 이번 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본말전도이다. 금융화는 1970년대 이후 진행돼 온 이윤율 저하에 기인한 장기불황에 대한 자본의 대응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화는 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 1970년대 이후 장기불황 속의 자본주의를 그럭저럭 지탱해 온 메커니즘이며, 이번 서브프라임 위기는 금융화에 의존한 자본주의의 재생산 방식이 근본적이고 최종적인 한계에 봉착했음을 입증한 것이다.

금융화에 의존한 자본주의의 재생산 방식, 혹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모델은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대두해 1990년대 이후 ‘글로벌스탠다드’로 행세해 왔지만, 이번 서브프라임 위기 속에서 그 근본적 결함과 한계가 드러나면서 이제 최종적 붕괴 국면으로 들어갔다.

시장근본주의, 자유시장 만능주의, 금융주도 축적체제의 수립을 표방하는 신자유주의 모델 혹은 워싱턴컨센서스는 세계 지배계급 내에서도 문제시되면서 21세기 들어 시장에 대한 일정한 정도의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포스트워싱턴컨센서스 혹은 베이징컨센서스로 변형되기 시작했는데, 이번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의 몰락과 국유화, 금융 규제 강화와 함께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

만약 일부 케인스주의자들의 주장하듯이 신자유주의 금융화 모델이 21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축적체제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면 그 모델은 불과 20년도 지속되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붕괴한 셈이 된다. 실제로 지난해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미국에서 금융화가 아니라 도리어 “탈금융화”라고 할 만한 금융화의 역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예컨대 미국 증시의 시가총액이 2007년 10월 9일 19.1조 달러에서 2008년 9월 12일 15.1조 달러로 격감했고, 그 중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4퍼센트에서 16.9퍼센트로 감소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종언과 좌파의 과제

지난 1년 사이에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세 개가 사라지고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만 남게 된 것(이들 역시 중장기적으로 독자적 생존은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패니메이·프레디맥과 AIG 같은 미국 금융의 핵심부를 국유화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세계자본주의를 주도해 온 미국의 월스트리트 자본주의 모델, 즉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국가주의로 결정적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매체인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조차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 “국가의 복귀”를 선언하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국가주의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국유화 사례에서 보듯이, 이윤은 철저하게 사적으로 독점하면서 손실이 나면 이를 구제금융이나 국유화 방식으로 국가에 떠넘기는,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케인스주의자들은 투자은행 규제, 신용파생상품 등 금융 규제를 이번 위기에 대한 진보적 대안으로 주장한다. 좌파는 금융 규제를 비롯한 케인스주의자들의 자본주의 규제 요구에 대해서 그러한 요구가 비록 혁명적 반자본주의 요구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노동자 대중의 생활수준과 투쟁 조건을 개선하는 데 기여한다면 지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위기의 근원인 자본주의를 제거하지 않고 위기의 출구 구실을 해 온 금융만을 규제한다면, 케인스주의자들의 희망과는 달리, 자본주의에서 위기는 도리어 더 격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신용파생상품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일종의 조절자 구실을 해 왔는데, 이를 제거할 경우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은 더욱 격화할 것이다.

좌파는 금융 규제 요구를 반자본주의 이행기강령의 문제의식에 기초해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때 금융 규제의 초점은 물론 금융의 반노동적 측면에 제거에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70년 전인 1938년 대공황의 막바지 국면에서 트로츠키가 제안한 〈이행기강령〉의 문제의식은 적절하게 보완될 경우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 국면에서도 탈자본주의 전략의 구체화 작업에서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다.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물가-임금 연동제”, “기업 비밀의 공개”, “은행 국유화와 신용제도의 국가 관리”, “노동자 통제” 등과 같은 요구들이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 국면에서 이행기강령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과 조건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성진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마르크스와 한국경제》,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저자이고, 《반자본주의 선언》,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 등의 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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