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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온라인:
‘물가-임금 연동제’와 ‘기업 비밀 공개’에 대한 나의 생각

지난 번 정성진 교수님의 기사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입장에서 미국발 금융 위기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위기에 대한 케인스주의적 설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 글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좌파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토론을 자극하는 기여를 했다. 나는 글 후미에 밝힌, “트로츠키가 제안한 〈이행기 강령〉의 문제의식은 적절하게 보완될 경우” 현 시점에서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 적극 공감하면서 ‘물가-임금 연동제’와 ‘기업 비밀의 공개’와 같은 요구들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물가-임금 연동제’가 특정 상황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의 이익을 방어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일 것이다. 예컨대, 이탈리아에서는 1975년에 정부가 너무 취약한 나머지 노조에게 ‘물가-임금 연동제’를 양보했고, 그럼으로써 위기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 생활수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물가-임금 연동제’는 계급 세력 관계에 따라 상당 정도 변화하는 임금수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이 물가인상률을 웃도는 임금 인상을 주장하며 싸울 수 있는 자신감과 조건을 갖추고 있는 데도 이 제도 때문이 발목이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높은 물가로 고통을 받지만, 많은 기업들이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 있다. 예컨대, 모두가 힘들다는 요즘에도 ‘SK에너지’와 같은 대형 정유회사는 2분기 영업이익만 무려 약 5천3백억 원에 달했다. 이러한 사실은 물가인상률을 넘는 임금인상 주장의 설득력을 강화해 주는 충분한 재원이 존재함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물가-임금 연동제’는 인플레이션 상황만을 염두에 둔 요구일 텐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디플레이션 상황이 도래한다면 이 제도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임금을 하락시키는 구실을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수준을 물가에 따라 조정해 줘도 기업주들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므로, 물가인상률에 개의치 않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것이 인금 인상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 비밀의 공개’도 현실에서 기업들이 회계장부 조작, 이중장부 작성을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이런 요구를 성취하더라도 기업은 가짜 장부를 공개할 수 있으니 별로 실효성이 없다. 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뒷돈은 숨기고 경영 악화를 드러내는 가짜 장부를 공개해 노동자들이 싸워서 얻어낼 만한 재원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