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이화여대에서 정태인 교수 초청 마르크스주의 포럼 ‘미국발 경제 위기와 한국사회’가 열렸다. 정태인 교수는 최근 금융 위기를 낳은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명쾌하게 논박했다.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도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정태인 교수의 말은 노동자 투쟁을 확대하는 데 힘이 될 수 있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대안에 대한 정태인 교수의 주장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대체할 민주적 계획경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정태인 교수는 “사회주의는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했다” 하고 말했다. 사회주의에서는 수요는 지나치게 많고 생산은 게으르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상교육을 강요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대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계획경제’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정태인 교수가 묘사한 것처럼 구(舊)소련식 관료적 지령경제를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구소련이나 현재 북한 같은 사회는 전혀 민주적이지도 계획적이지도 않았다. 핵무기를 만들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필수품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북한을 봐도 알 수 있듯, 소련식 경제는 서방 자본주의와의 군사적 경쟁 논리가 압도하던 사회였다. 인민의 필요를 위한 계획은 항상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도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한 생산도 아닌 소외된 노동이 능동적일 리가 없다. 먹고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소외된 노동은 구소련식 사회와 마찬가지로 서방 자본주의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구소련 같은 사회가 아니라 ‘파레콘’[참여경제], ‘협상조정모델’, ‘노동시간계산모델’ 등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민주적으로 계획하고 분배하는 경제 모델에 대한 연구는 지난 몇 년간 더욱 발전해 왔다. 사람들의 수요에 맞춰 필요한 생산을 계획하고 분배할 수 있는 기술은 더욱 발달하고 있다.

이미 다국적 기업에서는 전 세계 차원으로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각각의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자본주의에서 얼마나 생산할지 예상하는 것보다 경쟁이 사라진 상황에서 사회적 필요를 예상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다.

민주적 계획경제에서는 노동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무기나 경쟁 때문에 무분별하게 과잉생산되는 낭비를 줄이고 현재 평균 생활수준을 유지할 정도로 일한다면 평균 노동시간이 하루 3시간이 채 안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는 하루 6시간 노동 법안을 제안하고 있다.

정태인 교수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혁명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며 노동자 중심주의를 표방한 마르크스주의는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 1918년 독일 혁명, 1936년 스페인 혁명, 1956년 헝가리 혁명, 1974년 포르투갈 혁명, 68운동 등 모든 체제를 뒤흔든 운동에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1930년대 대공황이 나치를 낳기도 했지만 프랑스와 스페인 노동자들의 투쟁도 낳은 것처럼, 이번 공황 하에서도 자본주의 체제에 근본적 의문을 품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분출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자본주의의 근본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주의는 어느 때보다 더욱 유효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