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위기 해결을 위해 ‘국제 공조에 적극 나서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주에 이명박이 다녀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는 〈조선일보〉조차 “말잔치에 그쳤다”고 혹평할 정도로 무기력한 회의였다.

주요 언론들은 영국 총리 브라운과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가 제안한 ‘신(新)브레턴우즈’ 체제 건설론과 한중일 주도의 아시아통화기금 창설 계획이 논의될 것이라며 기대를 높였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특히 아시아통화기금과 관련해 결정된 것들은 모두 이미 지난 5월에 합의된 사항들이다.

1970년대 초 무너진 브레턴우즈 체제를 되살려 세계적 금융 혼란을 통제하자는 일부 유럽 지배자들의 선동은 이번 경제 위기로 완전히 체면을 구긴 미국의 위상 변화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사실상 미국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 금융질서의 쌍두마차인 IMF와 세계은행의 영향력을 축소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의 지배자들이 이를 일관되게 들이댈 수는 없을 것 같다. 일시적으로 은행을 국유화하고 지급 보증을 서는 등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는 한목소리를 냈지만, 이보다 훨씬 장기적인 전망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금융감독을 헤지펀드로까지 확장하고 역외 금융센터들을 제거하려 하는 데 대해, 영국은 순순히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월스트리트저널〉)

게다가 한 나라 안에서조차 이런 국제 금융 통제 정책에 대한 자본가들의 입장은 통일돼 있지 않다. 많은 자본가들이 비명을 지르는데 여전히 일부 자본가들은 신자유주의적 금융 체계를 옹호하고 있다.

무엇보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만들어진 제2차세계대전 직후와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당시는 전후 호황이 시작되던 때였고 미국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때라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이를 대체할 뚜렷한 대안이 없다.

따라서 신브레턴우즈 체제 건설 노력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거나 불안정한 미국 주도의 생색내기 식 금융 개혁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비록 미국 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줄긴 했지만 아직 유럽 전체와 비슷하고 중국도 아직은 경쟁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미국 제국주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언제든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선보일 준비가 돼 있는 반면 유럽 지배자들 사이의 결속력은 보잘것없고 아직은 어느 나라도 미국 지배자들과 격렬한 충돌을 감수할 만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듯하다.

미국 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아시아의 경우는 두말할 것도 없다. 대미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이번 회담 자체에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이명박도 회의가 열리기 전에 프랑스의 일간지인 〈르피가로〉와 한 인터뷰에서는 “IMF와 세계은행을 대개혁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만 막상 본회의에서는 부시의 눈치를 살피며 ‘IMF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말을 뒤집었다.

결국 어이없게도 이번 회담의 공동성명에는 “국제금융기구[IMF]가 적극적인 구실을 해[야] 한다”는 문구와 “국제금융기구의 개혁을 가속화”한다는 문구가 모두 실렸다.

말만 꺼내면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을 낳는 능력의 소유자 강만수가 이번 회의 직전에 자랑스럽게 꺼내 놓은 아시아통화기금도 비슷한 난관에 봉착했다.

아시아통화기금 계획은 이미 지난 1998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 때 대안으로 제시됐다가 미국의 반대로 휴지통에 버려진 바 있다. 지금도 미국과 IMF는 이에 반대하고 있고 “부유한 선진국 일본과 신흥 성장국인 중국과 인도, 그리고 빈국인 미얀마와 캄보디아 등이 망라된 아시아에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찾기는 지난한 일[이다.]”(〈파이낸셜타임스〉) 벌써부터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중국과 일본의 갈등도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다.

11월에 개최될 G20에서도 이런 문제들은 여전할 듯하다. 세계적 위기는 앞으로 더 깊어질 것이고 ‘리·만 브라더스’ 호도 계속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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