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15일 런던에서 열린 ‘공산주의 사상’ 토론회에 거의 1천 명이 몰렸다.

이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런던 시내에서는 많은 좌파 토론회가 열려 왔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매년 여름 여는 토론회 ‘맑시즘’에도 수천 명이 참가한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상’은 두 가지 점에서 특별하다. 첫째, 이 토론회 주최자는 정당이나 정당이 발간하는 잡지가 아니라 [런던대학교] 버벡칼리지 인문학연구소다.

둘째, 이례적으로 많은 언론이 몰려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온건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제목으로 주말판 한 면을 통째로 할애해 슬라보예 지젝 인문학연구소 소장을 인터뷰했다.

아마도 지젝이 좌파 지식인 중 가장 주목받는 존재기 때문에 테리 이글턴이나 피터 홀워드뿐 아니라 유럽의 저명한 철학자들 ― 알랭 바디우, 안토니오 네그리, 조르조 아감벤 ― 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토론회의 초점은 철학이었다. 토론회 홍보 문구는 “플라톤 이후, 공산주의는 철학자들이 주목할 만한 유일한 정치사상이었다”였다.

그러나 지젝의 사상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지젝은 글과 연설에서 고차원적 철학 논의를 정치 평론이나 영화 비평과 곁들여 낸다. 지저분한 농담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론 지젝도 때로는 중요한 정치적 지적을 한다. 오바마 당선 후 쓴 ‘환상을 이용하라’는 탁월한 글이었다. 이 글에서 지젝은 열광적 오바마 지지자들의 말처럼 오바마의 당선은 역사적 사건이지만, 동시에 “오바마의 승리가 결국 무엇을 의미할지 결정할 진정한 전투는 바로 승리가 확정된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고 지적했다.

이론과 실천

또, 지젝은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도 괜찮은 주장을 많이 했다. 그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만개한 자유주의 유토피아는 이번 금융 위기로 몰락했다”고 말했고, “금융 위기를 어떻게 설명할지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아, 그러나 지젝은 스탈린주의 문제에 이르자 흔들리기 시작한다. 공산주의와 이른바 ‘역사적 공산주의’라 불린 존재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받자, 대답을 회피했다. 다행히도, 이 문제에 대해 예전에 했던 황당한 발언들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예컨대, 지젝은 《시차적(視差的) 관점(The Parallax View)》(2006)에서 이렇게 말했다. “‘근성을 가지고’ 불가능에 도전한 정말로 대담한 단 한 가지 행동을 찾는다면, 그것은 1920년대 말 소련에서 스탈린이 밀어붙인 강제집산화일 것이다.”

지젝은 스탈린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과거에 조국 슬로베니아에서 공산당 독재에 저항한 반체제 인사였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책임으로 떠넘기려 한 범죄들을 비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이 자유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이것은 단지 접근 방식이 잘못돼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지젝이 정치 실천과 동떨어진 것과 연관된 오류다. 버벡 인문학연구소 토론회는 ‘공산주의 사상’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지젝이 정말로 우익의 경제 위기 해석에 도전하고 싶다면, 사상의 영역을 뛰어 넘어 마르크스주의 좌파가 어떻게 현실 사회 세력들과 관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버벡 인문학연구소 토론회 조직자들은 정치 실천에 너무나 무관심해서 입장료를 무려 1백 파운드[약 22만 원]나 받았다. 그래서 존 로이드 같은 우익들이 이 토론회를 “학문적 환상”을 팔아먹으려는 노교수들의 수작으로 폄하하기 더 쉬웠다.

이런 폄하는 유감이다. 이 토론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도전하려는 같은 열망을 가진 진지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도전하고픈 모든 사람들은 이미 마르크스가 오래 전에 제기한 문제 ― 어떻게 이론과 실천을 결합할 것인가 ― 를 회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