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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 칼럼:
차라리 국민을 해산하고 새로 선출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일 라디오 연설에서 “소수지만 정부가 하는 일을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대통령 말처럼 ‘소수’가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라는 게 문제다.

지난해 촛불 항쟁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경제도 살리겠다고 했다. 대운하, 수도·전기·가스·의료 민영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명박 정부는 어떠한가?

대통령 임기를 채우냐 마냐하는 기로에서 마지못해 낸 그 사과문 중 어느 하나도 지킨 것이 없다. 역시 립서비스였던 것이다. 이제는 경찰을 동원해 사람들을 죽이고도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라고 한다. 도대체 이 정부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어떻게 국민 대다수가 이 정부가 하는 일에 ‘무조건 반대’하지 않을 수 있는가?

급기야 이명박 정부는 촛불 운동의 강력한 요구로 그 “없다” 목록에 들어간 의료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만수 후임으로 기획재정부장관이 된 윤증현은 지난 5일 대형 영리병원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의료민영화를 아예 대놓고 시작하겠다는 거다. 지난해에 제주도부터 국내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겠다고 했다가 촛불 운동에 밀려 안 한다 했던 영리병원을 아예 전국 동시로 그것도 ‘대형’으로 허용하겠단다. 조중동은 기다렸다는 듯 영리병원 찬가를 부르고 나섰다.

정부는 해외로 나가 진료받는 환자를 끌어들여 연 6천만 달러에 이르는 ‘의료서비스 적자’를 흑자로 바꿀 수 있고, 고용이 늘어나고 의료서비스가 좋아진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영리병원 허용은 재벌 돈벌이 위한 것

우선 해외로 나가 병원 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대다수는 바로 원정출산족들이다. 이 사람들을 국내로 끌어온다? 국내영리병원에서 애 낳으면 미국시민권을 주겠다는 건가? 외환·주식시장에서 국민세금과 연금을 하루에 몇억 달러씩 날려 먹는 정부가 해외서비스 지출액 19조 원의 0.3퍼센트밖에 안되는 ‘의료서비스 적자’ 운운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이 경제 위기 상황에 의료비마저 폭등한다. 영리병원은 주식투자를 한 사람에게 이윤을 남겨 줘야 한다. 의료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3백24개 병원을 비교한 논문을 보면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1인당 의료비가 19퍼센트 높다. 정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지 않으므로 의료비 증가는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미국 노인건강보험(메디케어) 환자들도 영리병원 의료비가 16.5퍼센트 높았다. 한국에서 공립병원을 민간병원에 위탁한 후 1인당 의료비는 2~3배 늘었다. 건강보험이 있건 없건 영리병원의 ‘합법적인’ 목적은 환자 진료가 아니라 돈을 벌어 주주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다. 당연히 의료비는 폭등하고 부당청구와 과잉진료가 판을 친다.

서비스 질이 높아진다고? 돈을 벌기 위해 영리병원들은 의료인력을 줄인다. 미국에서 영리병원 환자가 비영리병원으로 갔다면 연 1만 4천 명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고용이 는다고?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에서 어려운 M&A를 쉽게 할 수 있어, 정리해고가 판을 칠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병원은 주로 비정규직을 고용한다. 병상당 고용인력이 많고 정규직을 채용하는 곳은 스웨덴처럼 공공병원이 대부분인 나라들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유지한다고? 눈가리고 아웅이다.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결국 당연지정제도 버티지 못한다. 의료비가 폭등하면 건강보험재정이 파산한다. 또 영리병원들이 당연지정제가 돈벌이에 방해된다고 헌법재판소에 제소하면 지금 헌재가 어떤 판단을 할까? 영리병원을 전면 허용하기만 해도 당연지정제 폐지는 필연적이다.

결국 ‘영리병원 허용’은 영화 〈식코〉가 제대로 보여 주는 미국식 의료제도를 한국에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경제 위기로 가뜩이나 병원 갈 돈도 없는 국민들에게 이 정부는 의료 지원을 늘리기는커녕 삼성이나 현대 재벌병원의 돈벌이를 위해 의료비 폭등과 건강보험 붕괴를 초래할 의료민영화를 추진한다. 어떻게 이런 정부에 ‘무조건 반대’하지 않을 수 있는가?

1953년 동베를린에서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동독 정부는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정부에 ‘무조건 반대’하는 ‘인민의 어리석음’을 성토했다. 당시 브레히트는 ‘해결 방법’이라는 시를 써서 제안했다.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산해 버리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