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는 잘못 짚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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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침략 전쟁이라는 지배자들의 보편화된 공세에 힘겹게 저항하는 처지에선 주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을 구별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금산분리는 노동계급과 평범한 대중이 간절히 요구하는 사항도 아니거니와, 그것을 통해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는 근거도 없다.
자본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라면 딱히 금융자본을 문제거리로 보지 않을 것이다. 금융자본이 획득하는 이윤의 원천이 주로 산업자본의 이윤에 있고, 자본주의 위기의 근원은 산업 이윤율의 감소 경향 때문이다. 경제 위기의 원인을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서 찾지 않고 자본의 특정 조직 형태
또한 현실에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서로 긴밀히 결합돼 있다. 완전한 분리가 비현실적이리만큼 유착해 있다. 그래서 한국의 주요 재벌은 모두 금융회사들을 계열사로 포함하고 있고
그래서, 금산분리를 현실화하고자 개혁주의자들은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IMF를 불러들인 1997년 금융공황 이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포퓰리즘에 기대어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 개혁에 훨씬 못 미치는 종류의 재벌 개혁을 추진했지만, 그 표피적인 ‘개혁’조차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지난 십여 년 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강화됐고, 재벌 총수의 제왕적 경영은 교묘히 은폐돼 있을 뿐이다. 이것은 개혁주의자들이 집권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진정한 권력이 재벌 총수들과 그 계열사 CEO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금산분리론은 이러한 이론적 문제도 문제지만, 정치적 문제가 더 심각하다. 금산분리를 역설하는 각종 개혁주의자들
특히 현실에서 중소기업은 실제로 중소 규모인 기업일지라도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과 원·하청 관계를 맺고 있어, 노동계급의 투쟁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 오히려 지불 능력 부족 때문에 중소기업이 노동자에게 더 못되게 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부패와 비리는 재벌과 은행의 관계에서 비롯하기보다는 서로 협력하면서도 긴장이 있는, 국가와 자본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패는 모든 자본주의 나라에 편재하는 현상인 동시에 한국처럼 국가자본주의의 유산이 강력한 나라에서는 특히 심각한 현상인 것이다.
재벌의 은행 소유가 경제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김 연구부장의 주장도 간단히 반박될 수 있다. 물론 일반으로 여신제도의 발달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것은 1백 년도 더 전에 로자 룩셈부르크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과 논쟁하면서 지적한 점이다. 하지만 룩셈부르크는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따위의 문제와 흡사하게 지엽말단적인 자본 편제 방식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재벌의 은행 소유 문제는 경제 위기 논의에서 매우 부차적인 문제다. 지금 세계 동시 불황에 휩쓸린 모든 주요 경제들에는 각각 서로 다른 그 나름의 금융제도가 있다. 이 수많은 변형태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묶을 수도 있다. 미국식, 일본식, 독일식, 중국식…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금융제도상의 이 특수 유형들이 왜 한결같이 심각한 금융 위기와 실물경제
이 모든 비판에도 나는 김 연구부장이 재벌의 은행 소유의 대안으로 주장한 은행 국유화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가 은행 국유화를 주장하기 위해 개혁주의자들의 금산분리론을 자신의 논거로 차용한 것은 부자연스럽다.
물론 은행이 국유화된다 해도 부패·비리와 경제 위기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행 국유화는 2001년 아르헨티나 사태 같은 황당한 금융 패닉을 어느 정도 제어해 서민의 피해를 다소 줄이는 데는 일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