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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련의 다함께 비판글 재반박:
사노련의 운동주의와 초좌파적 태도를 비판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이 발행하는 〈가자 노동해방〉 27호에 실린 박준선 동지의 ‘민주대연합 노선과 완전히 단절하지 못하는 다함께’ 기사는 내가 쓴 ‘용산참사 항의투쟁을 돌아다보며’(〈레프트21〉 3월23일자)에 대한 비판 글이다.

나는 한 달 반 이상 용산범대위 상황실에서 박준선 동지와 함께 했기에 그의 전투성과 혁명적 정신을 인정한다.

그러나 박준선 동지는 용산 참사 항의 운동이 처한 객관적 조건을 무시한 채 “열사투쟁을 하면서 평일집회와 주말집회”를 “꾸준하고 완강”하게 하면 “더 큰 투쟁”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왜 그런지 구체적인 분석은 없다. 단지 “당장 용산 투쟁보다 더 규모있고 완강한 반이명박 촛불투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평일집회와 주말집회’ 논점은 더 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용산참사 항의투쟁은 2월 9일 김석기 사퇴를 통해 단일 쟁점 운동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정치적 성과를 얻었다. 이것은 용산이라는 단일 쟁점 운동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쟁이 성장을 거듭할 때, 전략과 전술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운동이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면 전진할 것인지 멈출 것인지 아니면 방향 전환이 필요한지 고민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항의 운동 참가자들은 2월 14일 이후 운동의 진로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는 “운동 내부에서, 심지어 의견 통일을 위해 낡은 논쟁을 잊자고 맹세했던 사람들 사이에서조차도 불가피하게 전술에 관한 논쟁이 일어난다.(크리스 하먼, 《저항의 세계화》)

전략과 전술 문제는 운동의 객관적 조건과 향후 사태 전개를 고려해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당시 사노련 동지를 비롯한 일부 활동가들은 김석기 사퇴를 커다란 성과로 생각지 않았고, 도덕주의(“사람이 죽었는데”)와 의지주의·운동주의(“소수라도 투쟁하면 동력은 되살아날 수 있다”)를 앞세우며 용산 쟁점으로 매일 촛불집회와 주말집회를 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왜 집회 참가자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는지 구체적인 분석조차 없이 ‘그저 투쟁이면 된다’는 사노련의 운동주의는 ‘전투적’이라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운동의 방향을 둘러싼 전략과 전술을 고민해야 할 사회주의자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김석기 사퇴 이후 이명박은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탄압을 강화하고 연대를 파괴하려는 수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운동을 성장시킬지, 시위 참가자들의 자신감을 유지시키며 광범한 연대를 구축할 지 등 당시 국면의 핵심고리를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김석기 사퇴 이후의 핵심고리는 (강호순 사태로 용산 문제를 가리라는) ‘청와대 이메일 지침’ 파문이었다.

이것은 이명박을 궁지에 몰 수 있는 중요한 정치 문제였다. 그런데 용산범대위 내 좌파들은 이 핵심고리를 놓치고 “집회에서 인원이 조금 더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며 소수 행동으로 자위했다. 이것은 정치적 주도권을 개혁주의자들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실제 민주당은 용산참사와 청와대 이메일 파문을 이용해 ‘제도권’내의 이익을 챙겼고, 시민단체들은 2월 24일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시국회의를 주도하며 생색내기에 바빴다. 그러나 용산범대위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폭로하지도, 끌어들이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미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는 용산투쟁의 동력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상황에서, 의지만 앞세우며 계속 용산쟁점으로 집회를 해야 한다는 것은 남아 있는 투쟁 주체들의 사기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향후 다른 대중투쟁이 태어날 순간을 대비하고 그런 투쟁을 고무하기 위한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한편, 박준선 동지는 다함께가 민주당까지 포함한 범국민대회 공동주최를 제안한 것을 두고 “민주대연합 노선”이라고 규정하고 “민주당과의 공조, 민주대연합과는 확실히 손을 끊”으라며 비판하고 있다.

우선, 사회주의자들에게 “민주대연합”은 부르주아 정당까지 포함하는 전략적 동맹(인민전선, 즉 국민연합)을 의미한다. 사회주의자는 부르주아지와의 이런 전략적 동맹에 반대한다. 그래서 다함께 회원인 김인식 동지는 ‘민주대연합’이 제기된 올해 2월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선거연합(민주연합)을 배제하고 진보대연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핵심으로 담은 수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런데 민주당을 포함한 범국민대회 공동주최는 모든 쟁점에서 민주당과 손잡는 전략적 공조가 아니라 반이명박 투쟁의 폭을 넓히는 전술적 공조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민주당의 동참은 언제나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 종속되는 전술적 고려의 대상이고, 또한 결코 비판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2월 중순에는 김석기 사퇴 이후 청와대 이메일 파문, MB악법 강행 처리, 신영철 대법관 촛불 재판 개입 등으로 국민적 공분이 확대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좌파는 이런 분노를 이용해 이명박 정부의 뿌리깊은 부패와 반민주성 문제를 부각시키며 이명박에 맞서는 광범한 운동 건설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내가 이미 ‘용산참사 항의투쟁을 돌아다보며’에서 쓴 것처럼, “김석기 사퇴 이후의 용산 항의운동이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용산범대위의 조직 범위를 넘는 더 폭넓은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했다. 이메일 파문과 MB악법은 바로 이를 위한 핵심 고리였다. 이 고리를 중심으로 시민단체와 심지어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운동에 참가시키려 해야 했다. 2008년 촛불 항쟁이 1백만 명까지 모을 수 있었던 것도 좌파 지지자들의 폭을 뛰어넘는 사람들의 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이들의 지지를 받는 시민단체들과 공동행동 노력을 기울여야 했고, 시민단체가 민주당을 핑계로 집회 공동주최 등 공동 행동을 부담스러워한다면, 심지어 민주당까지도 끌어들여 대열을 늘리고 대중 속에서 주장하고 입증받으려 노력했어야 했다.”

이렇게 운동의 성장과 단결의 고리를 부여 잡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시민단체에 대한 종파적 태도와 민주당에 대한 전술적 경직성에 사로잡혀 고립을 자초한 것은 진정 “전면적인 투쟁으로 전진하는 것을 차단하는 걸림돌”(박준선)이다.

결국 박준선 동지의 주장은 빈약한 초좌파주의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트로츠키는 인민전선을 가장 예리하게 비판하고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가 “궁극적으로 상충하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때때로 노동계급 정당이 단기적 이득을 취하려고 자본가 세력과 “엄격히 실용적인 목적에 바탕을 둔 합의”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했다. 정치적 독립성을 반드시 유지하면서 “부르주아지와 어떤 합의를 하려 할 때는 각 합의마다 별도로 그때그때 실용성과 편의상의 고려에 따라 그렇게 해야”(트로츠키) 한다.

또, 1936년 영국 공산당, 노동당, 성직자들은 물론 부르주아 정치인들도 포함하는 평화협의회에 참가해야 하느냐고 자신의 지지자들이 질문하자 트로츠키는 그저 바깥에서 매도나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오히려 그 안에 들어가 부르주아 정치인들의 영향력과 싸워야 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박준선 동지는 “‘어떠한 타협도 없고, 어떠한 유연한 대응도 없다!’는 성급한 ‘판단’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세력을 강화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좌파’ 공산주의 ― 유아적 혼란》)”는 레닌의 주장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미 나의 글(‘용산참사 항의투쟁을 돌아다보며’)에서 긴 분량을 할애해 이런 주장을 충분히 펼친 바 있다. 박준선 동지가 나의 글을 다시 한 번 진중하게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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