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민중 항쟁이 발생한 후 국제 좌파의 반응은 분열됐다. 베네수엘라의 좌파 대통령 우고 차베스, 좌파 지식인 제임스 페트라스, 마오주의 조직 세계노동자당(WWP) 등은 시위를 반대했다. 반면에 노엄 촘스키,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NPA)의 올리비에 브장스노, 국제사회주의경향(IS) 등은 시위를 지지했다. 국내에서도 단체와 개인들의 입장이 나뉘고 있다. <레프트21>은 최근 국제 좌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던 이란 민중 항쟁에 대한 찬반 논쟁을 게재한다. [글 싣는 순서] ● 반대 의견: 임지훈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학생위원장 ● 찬성 의견: 김용욱 <레프트21> 기자

이란시위 반대 입장

이란 사태, 누구의 이익인가?

임지훈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학생위원장


이란 사태를 다룬 지난 호 〈레프트21〉의 기사 ─ ‘이란 민중 항쟁, 위기에 빠진 이란 정부’ ─ 에서는 이란 사태를 마치 천안문 사태와 같은 성격의 민중 항쟁이라 규정한 듯 하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노동계급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이는 대단히 일면적인 사태 규정이라 할 수 있다.

현 이란 사태는 일면적으로 규정하기 대단히 복잡한 문제이다.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일부 부정선거가 있었음은 확인된 사실이며, 현재 아마디네자드 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시위대에 대한 폭력적 탄압에 찬성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하지만 현재 서방 정부와 언론, 한국의 〈조선일보〉 등이 주장하고 있듯이 이번 사태가 이란의 전체 민중이 ‘자유화’를 요구하며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라 보는 것은 더욱 큰 오류이다.

오히려 현 이란 사태를 보는 진보적 입장은 일부에서의 선거 부정을 계기로 이란의 ‘서구화’‘ 신자유주의화’를 요구하는 일부 특권층과 대학생들이 서방진영의 지원 아래 일으키고 있는 시위라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이 사태를 바라볼 때 유의할 점은 다음의 3가지 논점이다.

첫째, 실제로 이란 민중은 아마디네자드 정부의 전복을 원하는가? 이란 선거의 공식 집계 결과는 아마디네자드가 63퍼센트, 무사비가 34퍼센트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사비측은 이런 압도적인 선거 결과 자체가 선거 부정이 개입했다는 증거로 거론한다.

물론 아마디네자드가 집권한 현 이란 정부가 충분히 민주적이라고 볼 수는 없기에 부정 선거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무사비측이나 그의 주장을 호의적으로 보도하는 서방 언론들이 이번 선거가 결과 자체를 뒤집을 정도의 부정이 있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 결과에서 드러나듯이 서방 언론들에 의해 ‘개혁’의 상징으로 추켜세워지는 무사비라는 인물은 이란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무사비가 말하는 소위 ‘개혁’은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진 층이나 협소한 사회적 토대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한 ‘개혁’은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를 피하고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마디네자드가 대외적으로 취한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자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서방의 지원 아래 벌어진 시위

동시에 이들은 ‘자유 시장과 신자유주의”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이들은 노동자층과 지방 빈민들에 대한 사회 원조 프로그램을 반대한다. 이러한 정책은 당연히 이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과 지방 빈민들로터 아무런 반향을 얻을 수 없었다. 현재 이란의 시위가 지방 노동자, 빈민들로 확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무사비 개인의 ‘개혁성’이라는 것도 의문의 여지가 많다. 그가 이란 총리로 재직시 그는 좌파들이 대다수였던 이란의 정치적 반대파들에 대한 대량 처형을 주도했다. 그를 지지하는 진영의 면모를 봐도 그의 ‘개혁성’에 의문을 던지게 하는데, 대표적으로 현재 무사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지자는 이란 최고의 부자이자, 가장 부패한 인물로 악명이 높은 전 이란 대통령 라프산자니이다.

무사 비의 주요 지지층이자, 이번 시위의 주요 세력인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매우 서구 지향적이며 이들은 실제로 이란 체제의 ‘자유화’를 원하는데, 이들은 영어를 할 줄 알고, 인터넷 등의 첨단기기 활용능력이 크다. 따라서 여행객과 외국 외교관, 전문가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주로 서구 언론에서 등장하여 이란의 내부 사정을 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바로 이들이다. 이 때문에 서방 언론을 통해 이란의 사태 전개를 보려들면, 마치 이란 체제의 ‘자유화’가 목전에 닥친 것 같다는 인상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이들은 이란 민중을 대변하고 있지 않다. 사실 무사비의 선거 운동과 시위 조직 과정에서 무사비 지지자들이 사용했다는 각종 첨단 통신 장비들의 경우만 해도, 그런 장비를 가질 정도의 사람은 이란 전체 인구에서 소수의 특권층에 그친다 

시위대를 공격하는 바시지 민병대와 이를 말리는 시위대

둘째, 미국과 서방진영의 개입은 없었는가?

이번 이란 사태에 대한 미국과 서방진영의 개입은 실로 발빠르다.

이란과 관계 개선을 주장하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의외로 이번 사태에 곧바로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 뒤를 따라 독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부정 선거 의혹에 대한 진상 조사와 평화로운 시위에 대한 탄압을 중단할 것을 이란에 요구하며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물론, 평화로운 시위에 대한 이란 정부의 진압을 두둔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가지 상기해야 할 것이 있다.

과거 미국이 지지하는 독재 정부였던 이란 샤 왕정은 지난 1978년 벌어진 이란 국민들의 평화적 반독재 시위에 발포하여 수천명을 살상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정부는 이번과 같은 우려를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란 샤 왕정의 학살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당시 카터 정부의 국가안보 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이란 샤에게 미국은 “끝까지 샤를 지지한다”고 말하며 학살을 옹호했다.

이란 사태에 대한 미국의 부조리는 과거에만 그치는 것일까? 사실 미국이 이란 선거에 이보다 더 깊숙이 개입해 온 정황은 많다.

이미 미국이 이란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라는 보도들은 대단히 풍부하다.

파키스탄의 전 육군 최고 책임자는 언론에 나와 “우리가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란 선거 직후 ‘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이란 내에 무려 4억 달러를 지출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 의회는 부시 정부가 이란에 대한 주요 비밀 작전 확대를 위해 제출한 재정지원안을 승인했으며, 〈뉴요커〉에 따르면, 이란에서의 정권 교체를 위해 미국은 이란의 반대파 그룹들과의 협력 및 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부시 전 대통령은 미 중앙정보국이 이란 정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이란 내에서 벌일 역공작과 선전 등의 다양한 작전들을 승인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실제 미국이 그루지야나 우크라이나 등 전 소련 연방 소속 국가들 내에서의 정권 교체를 배후에서 조직했다는 보도들이 끊이지 않았다. 사실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 ‘혁명’도 선거 결과에 대한 문제제기와 젊은이들의 거리 시위, 미국 정부기관으로부터의 풍부한 자금 지원을 특징으로 한다. 민중의 지지가 두터워 정치적 변화가 쉽지 않은 이란의 경우엔, 오래 전부터 무사비의 선거 패배를 염두에 둔 행동계획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셋째, 그렇다면 이란 사태에 진보 진영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전술하였듯이, 현 이란사태는 일부 선거 부정을 계기로 이란의 ‘서구화’ ‘신자유주의화’를 요구하는 일부 특권층과 대학생들이 서방진영의 지원 아래 일으키고 있는 시위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이란 사태에서 되려 필요한 것은 이란 정부에 대한 규탄이 아니라 이 사태를 배후 공작하고 있는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행태에 대한 규탄일 것이다.

물론 〈레프트21〉과 이란 사태에 항의하는 진보단체들의 논점도 이런 점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다. 지난 6월 25일 이란 대사관에서 열린 이란 사태에 대한 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다함께 김덕엽 활동가는 한국 민중의 연대가 서방 정부의 ‘악어의 눈물’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며 이란 정부의 수백 배에 달하는 민중을 학살한 서방 정부가 이란사태에 대해 민주와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정말 역겨운 짓이다.

따라서 현재 진정 필요한 것은 미국을 필두로 한 제국주의 진영의 반미국가 전복 움직임을 폭로, 규탄하는 국제적 행동일 것이다.

이란시위 지지 입장

이란 민중 항쟁,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김용욱 기자 │ ohotonge@wspaper.org


2주 전 이란 민중이 부정선거 의혹을 계기로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시작했을 때 국제적으로 좌파의 반응은 분열됐다. 한편에는 이 운동의 진보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이 운동을 환영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후자 쪽이다.

먼저 이란 민중 항쟁을 지지하지 않는 좌파들은 흔히 선거 부정이 발생했거나, 선거 부정이 결과를 뒤집을 정도로 광범했는지 확증해주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한다. 당연하다. 하메네이와 아마디네자드가 제대로 된 조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임지훈 씨도 “일부 부정선거가 있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만약 2007년 12월 대선 후 한국 민중이 ‘전과 14범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리 없다’고 재검표를 요구하며 시위를 시작하고, 이것이 사회의 더 큰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확산된다면 우린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선거 부정이 일어났을 리 없으니 대중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것인가? 

이란 항쟁을 지지하지 않는 쪽은 이명박과 아마디네자드를 비교하는 데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무사비는 대규모 민영화와 서민 복지 삭감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이자 친미 제국주의 정치인이고 아마디네자드는 국유재산과 복지를 유지하려는 포퓰리스트이자 반미제국주의자다. 그러나 무사비에게 적용되는 죄목은 아마디네자드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예컨대, 아마디네자드 정부는 2005년 국영기업 80퍼센트 민영화안을 내놨다. 또, 2006년에 비정규직 사용을 대폭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결정적으로, 그는 ‘석유에서 나온 과실을 여러분의 식탁 위에 올려드리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2005년 이후 국제 유가가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상승하기 시작했음에도 2005년~2007년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는 계속 증가했다. 또, 2005년~2006년 부유층과 빈곤층 간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했다. 그래서 2009년 5월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0퍼센트가 아마디네자드가 “석유에서 나온 부를 빈민의 식탁에 올려 놓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그는 생활 개선을 요구하는 민중을 강력히 탄압했다. 예컨대, 2005년과 2006년에 테헤란 버스 운전사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어용노조에서 탈퇴해 독립 노조를 건설하려 하자 무력으로 진압해 노조 지도자를 불구로 만들고 국가반역죄로 감옥에 수감했다.

또, 아마디네자드는 반민주적 보수 정책을 대거 도입했다. 그는 시위 탄압에 덧붙여 주로 바시지 민병대로 구성된 ‘도덕 경찰’들이 이른바 ‘비도덕적 행위’를 검사하고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그럼 무엇이 비도덕적 행위일까? 청춘 남녀가 손을 잡고 걷기, 여성이 청바지를 착용하기, 화려한 색의 히잡을 착용하기 등등. 2008년 상반기에만 1백만 명이 통행중 제지·검문을 받았고 4만 명이 체포됐다.

동시에, 바시지 민병대는 이란에서 진보 정치의 중심인 대학 캠퍼스에서 보수적 학생 단체의 영향력을 넓히려 시도했고 학생 운동의 반격을 받았다. 2005년 테헤란대학교 학생들은 아마디네자드가 사상의 자유를 무시하는 보수파 성직자를 총장으로 임명하려는 시도에 맞서 싸워 이겼고, 2006년과 2007년에는 아마디네자드가 대학에서 연설하려는 시도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며 “독재자에게 죽음을!” 하고 외쳐 연설을 중단시켰으며 2008년 12월에는 ‘학생의 날’을 맞아 전국 주요 캠퍼스에서 수만 명의 학생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흔히 무사비의 사회 자유화 공약이 단지 중간계급과 부유층을 위한 것이라고 폄하하는데, 사실은 정부의 반민주적 정책에 불만을 품은 ‘진보적’ 청년층의 표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였다. 1999년 하타미 개혁파 정부는 보수파들이 개혁파 신문을 강제 폐간하는 데 반대해 대학생 운동이 나섰을 때 학생들을 지지하지 않았고 보수파 민병대들이 학생들을 두들겨 패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2003년 반보수파 시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대학생 조직들은 개혁파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했고, 2005년 대선을 보이콧했다.

무사비는 개혁파에 실망한 사람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사회 자유화 확대를 공약에 포함시켰다. 상당수의 무사비 지지자들은 처음부터 무사비보다 왼쪽에 있었고, 무사비는 이들의 요구를 쫓아가기 바빴던 것이다.

물론 무사비는 여전히 시장화 확대를 요구하는 기성 정치인이다. 그는 일부 부자들의 지지를 받는다.(이건 아마디네자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중은 아마디네자드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무사비의 사회 자유화 공약에 호응했다. 그러나 그들은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투쟁 과정에서 무사비를 넘어 급진화했다. “독재자에게 죽음을”이 이제는 거리의 구호가 됐다. 수백만 명이 참가하면서 시위대의 구성도 노동자, 빈민, 차도르를 두른 여성을 포함해 다양화됐다.

따라서 시위가 미국의 “배후공작”의 산물이라든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부유층의 운동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도저히 성립될 수 없다. 오히려 이란 민중 투쟁이 승리하면 이란 사회에서 독립 노조와 좌파가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것이고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도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다만, 이 운동이 승리하려면 무사비와 개혁파 지도부의 틀을 한참 뛰어넘어 노동자의 경제적 요구를 시위대의 요구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것은 실패한 톈안먼 민주화 항쟁에서 꼭 배워야 할 교훈이다.

아마디네자드와 반제국주의

이란 항쟁을 지지하지 않는 좌파는 아마디네자드가 반미제국주의자이기 때문에 그가 무너지면 전 세계 반제국주의 투쟁이 타격을 입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런 입장은 보통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아래로부터의 운동보다 기존 국가들의 행위에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하며, 반제 투쟁을 반미제국주의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먼저, 나는 미국 제국주의가 이란 침략을 위협할 때 그 대통령이 아마디네자드든 누구든 단호히 반대할 것이고, 침략 전쟁이 발발하면 이란 정부의 군사적 승리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마디네자드식 반제국주의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이란에서 미국 제국주의 반대는 지난 30년 동안 지배자들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보수파·개혁파·중도보수파를 막론하고 정권을 잡은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기회만 생기면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와 거래했다. 예컨대, 2001년 부시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을 도왔다. 그러나 2002년 부시 정부가 이란을 ‘악의 축’으로 부르자 이란 지배자들은 반미 발언을 다시 강화했다. 사실, 이런 좌충우돌은 우연이 아니다.

이란 지배자들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최대한 높은 자리를 확보하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중동 지역에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제국주의 열강과 얼마든지 타협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역대 미국 정부, 특히 부시 정부가 그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란 지배자들은 반미로 내몰렸다.

물론 아마디네자드가 반미·반이스라엘 발언을 약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행동을 보자. 아마디네자드는 이란 지배자들의 ‘우연한 반미제국주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정책이다. 아마디네자드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이라크에서 미군 철군을 요구한다. 그러나 막상 2005~2006년 미군 점령이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시아파 성직자인 알사드르를 중심으로 수니파와 시아파 연합 공세의 가능성이 열렸을 때 아마디네자드 정부는 수니파 저항세력을 탄압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은 말리키 정부의 수립을 도왔다.

미군이 베트남 전쟁식으로 쫓겨나지 않고 2007년 이후 이라크를 ‘안정’시키고, 나중에 오바마 정부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대거 증파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린 것은 부분적으로는 이란 정부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것은 분열된 이라크가 이란의 중동 우위 정책에 유리할 것이고, 장래 미국과의 협상에서 내놓을 카드를 확보해 놓자는 냉혹한 계산에서였다. 부시 정부가 이란 침략을 잠시 포기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반점령 투쟁으로 미군이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아마디네자드 정부는 배은망덕하게 이 저항에 보답했다.

이것은 반제국주의 운동이 협소하게 반미제국주의에 머무르거나 정부에 의존하는 방식을 취할 때 어떤 한계에 부딪칠 것인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이 방식을 고수하면 미국과 현재 경쟁 관계에 있는 국가, 즉, 이란, 중국, 러시아 등에서 민주화 투쟁이나 계급 투쟁이 벌어졌을 때 이 나라 정부들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 막상 이 나라 지배자들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면서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주변 약소국을 위협하는 등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거나, 심지어 기회만 오면 미국 제국주의와 타협해 왔는데 말이다.

반제국주의 투쟁은 구조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노동자와 민중의 기층 투쟁을 고무하는 방식을 전략으로 택할 때 가장 강력해질 수 있다.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이란 민중이 자국 정부에서 독립적일 때 미국 제국주의뿐 아니라 자국 정부의 제국주의도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국제 좌파들이 이들의 투쟁을 서방의 음모로 치부하고, 거꾸로 서방 정부들만이 역겹게도 민주화 옹호자로 나선다면, 그것이 과연 이란 민중의 반제국주의 의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