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에 관한 나의 글에 이견을 제시한 Zizeker의 독자편지는 폴라니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연구하도록 독려한다는 점에서 매우 반가웠다.

Zizeker가 지적한 대로 폴라니는 시장경제가 아닌 계획경제를 대안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폴라니가 사회주의자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점은 시장경제가 아닌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데 그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시장경제가 아닌 대안이 있는지를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폴라니가 시장과 시장경제(또는 시장사회)를 구분하는 것의 함의에 대해서는 제쳐두더라도 그는 시장경제가 존재하지 않거나 사회에 ‘묻어 들어’ 있을 경우에 사회가 잘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원시사회나 고대사회의 사례를 통해 보여 주고자 했다. 그런데 시장경제는 한번 확립되면 자기확장하는 속성을 지녔는데, 어떻게 사회에 종속된 채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런 생각은 폴라니가 시장경제와 더 나아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본질을 일면적으로 이해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폴라니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본 반면 시장경제는 사회 공동체를 와해시키기 때문에 지탱하기 힘들다고 보았다. 폴라니가 제시한 대안(지역적 계획경제)의 모호함 때문에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한다. Zizeker가 주장한 바처럼 폴라니의 주장을 참여계획경제에 기초를 둔 민주적 사회주의로 해석한다면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리고 “사회에서 경제의 탈착근(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확립)과 거대한 변환(사회의 자기조정)을 통한 사회의 안정성 회복의 논리는 너무 기계적이고 단선적”이라는 내 지적은, 거대한 전환에 대한 폴라니의 묘사에서 잘 드러난다.

폴라니는 자기조정적 시장의 힘이 강력해질수록 그에 비례해 사회의 여러 집단의 반발도 강화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폴라니가 이중운동이라고 불렀던 자기조정적 시장의 진전과 공동체의 반격이 19세기 이후 자유주의 시대의 역사라는 점이다.

물리학에서 작용과 반작용 법칙을 연상시키는 그의 이중운동은 전후 자본주의 체제를 설명하는 이론틀로서는 유효성이 떨어진다. 그는 1930년대의 거대한 변환은 사회가 다시 자기조정적 시장경제로 되돌아가기 힘들게 하는 불가역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자유무역과 시장경제가 확대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제기구 같은 제도들이 확립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 때 국가는 시장경제를 위한 의식적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자유무역이나 세계화때문에 국가가 하는 구실이 축소된다는 주장의 허구를 잘 폭로한다)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파괴적 성격에 맞선 정책(대표적으로는 뉴딜정책)을 펼치는 이중적 구실을 했다.

국내적으로는 복지국가를 표방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확대하는 국가 구실의 이중성이나, 자기조정적 시장을 확립하고 지탱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파괴에 맞서 이를 저지하는 사회제도들의 이중적 구실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관련 독자편지 : 이정구 교수님의 폴라니 비판에 이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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