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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 열풍 기사를 읽고

〈레프트 21〉 11호의 정진희 동지의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최근 성형수술·다이어트 열풍이 미를 추구하는 여성의 본성이나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 때문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면서 왜 이런 매커니즘이 작동하는지 덧붙이고 싶다.

정진희 동지의 주장대로 다이어트에 성공한다고 여성들이 삶에서 겪는 모든 고통이 해소되는 것도,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차별 받는 여성 모두의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수많은 여성들이 외모를 가꾸려고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여성들이 외모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좌절이 ‘부러움’ 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실질적인 차별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실제 다이어트를 하는 적지 않은 여성들은 신데렐라가 되고 싶다는 ‘큰 꿈’보다는 ‘취업하고 싶어서’ 또는 ‘사랑받고 싶어서’라는 훨씬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올해 2월 한국젠더법학회 학술대회에서 인하대학교 법대 이유정 교수는 여성 변호사·사법연수원생들을 면접조사한 결과 취업시 남성보다 여성들에게 외모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고위직 여성들조차 취업할 때 외모차별 관행에 시달린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난 6월 〈문화저널21〉의 보도를 보면, 기업 인사 담당자 5백84명 중 94퍼센트가 채용시 외모를 반영한다고 답했다. 2004년 한 중견기업의 인사담당자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뚱뚱하거나 키가 160센티미터 이하인 여성은 면접에서 감점 처리한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언론은 “이미 외모가 채용 기준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라”(여성신문)고 충고하기까지 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외모 등 직무수행상 필요하지 않은 조건을 부과해서 채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권고 수준에 그칠 뿐 제대로 된 구실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용모단정’을 요구하지 못할 뿐이지 실제 면접에서는 외모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대통령이란 작자가 “마사지 걸” 운운하며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의 외모를 빗대어 ‘물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대한 늬우스 - 4대강 살리기’ 홍보영상물을 만드는 정부에서 여성차별 관행을 막으려는 진지한 노력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이런 현실 때문에 우리나라 13~43세 여성의 68퍼센트가 ‘외모가 인생의 성패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고, 78퍼센트는 ‘외모 가꾸기가 생활의 필수요소’라고 말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제일기획 발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구직자 중 40퍼센트가 취업을 위해 성형수술을 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연합뉴스). 실제 2008년 한 해 동안 20~50대 한국 여성의 30퍼센트(약 2백40만 명)가 성형수술을 받았다.

2006년에는 대학 시절 유도를 했던 한 여성이 운동을 그만두고도 살이 잘 빠지지 않아 취업이 안되자 자살을 하기도 했다.

즉 보통의 노동계급 여성들은 ‘인생역전’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범하게’ 취업하고 싶어서 외모를 가꿔야 하는 현실에 내던져진 것이다. 이런 현실이 여성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온갖 상술에 피해를 보면서도 “나를 바꾸기 위해” 돈과 시간과 열정을 바치게 만든다.

결국 문제는 정진희 동지의 지적처럼 “자긍심 없는 여성 개인이 아니라 몸무게와 사이즈로 여성을 평가하는 여성 차별적인 사회에 있다.” 그러므로 여성 차별적인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여성들 개개인이 외모가 아닌 자신의 진정한 가치로 평가받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