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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이명박 퇴진 선언은 여전히 옳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6월 말 정책당대회에서 원내 정당 중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정권 퇴진을 선언”했다. 당시 필자도 정권 퇴진 요구를 적극 지지했다.

이런 급진적 입장이 아무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민경우 〈통일뉴스〉 전문 기자에 이어(필자는 당대회 평가 글을 쓰면서 민경우 기자의 견해를 비판한 바 있다) 이승환 새세대네트워크 기획위원(이하 존칭 생략)이 민주노동당의 정권 퇴진 선언을 비판하고 나섰다(‘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서 제기된 몇 가지 쟁점’).

이승환의 주장은 부분적 통찰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런 통찰의 정치적·실천적 함의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명박 퇴진 요구는 “정세 오판”인가?

이승환은 민주노동당의 정권 퇴진 선언이 “정세에 대한 오판”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추모 정국을 전민항쟁 직전의, 일종의 준혁명적 정세라고 본 듯하다. 하지만 5월 29일 영결식과 노제를 정점으로 대중의 거리 진출은 오히려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기본계급인 노동계급과 중서민 대중은 움직이고 있지 않다.”

6월 국면은 물론 “전민항쟁 직전의, 일종의 준혁명적 정세”는 아니었다. 노무현에 대한 추모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강한 반감과 결합돼 거리 시위로 이어졌지만 지난해 촛불항쟁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대중의 거리 진출”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일차적으로 국가 탄압 때문이다. 확실히 국가 탄압은 지난해 촛불항쟁 때 나타났던 대중의 자발성을 억누르는 효과를 냈다. 지난해 6월 10일은 아래로부터의 자발성이 충만했다. 당시 누구나 6월 10일 대규모 행동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반면, 올해 6월 10일은 강경한 국가 탄압 속에서 치러졌다. (경찰의 집회 원천봉쇄 협박에 불구하고)10만여 명이 시청에 모였지만, 대중의 자발성보다는 조직된 정치 집단의 구실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국가 탄압은 대중 행동의 분출을 지체시킬 수는 있지만, 무한정 봉쇄할 수는 없다. 1980년대 군부독재조차 대중 행동의 분출을 원천 봉쇄할 수는 없었다. 이승환이 옳게 지적했듯이, 이명박 정부는 1970~80년대 식 권위주의 정부(“독재 정권”)가 아니기 때문에 물리력 행사를 통한 위기 돌파에는 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게다가 국가 탄압이 대중의 분노와 불만과 반감마저 없앨 수는 없다. 단적인 예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30퍼센트를 밑돈다. 반면,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여론조사에서 25퍼센트가 이명박 퇴진을 지지했다. 이명박 퇴진을 투쟁으로 강제할 정도에는 못 미치지만 이명박 퇴진 운동 건설을 위한 사회적·정치적 토양은 이미 대규모로 형성돼 있음을 가리킨다.

이를 위해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조직 노동계급의 투쟁이다. 그러나, 이승환이 지적한 것처럼, 조직 노동계급이 아직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 조직 노동계급의 ‘신중함’은 경제 위기 초기 국면에서 노동계급이 느끼는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 탓이 크다.

경제 위기는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일자리를 공격하게 만든다. 경제 위기의 정도만큼 노동자들의 고통도 커진다.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하고 실업수당을 타기 위해 줄지어 늘어서면, 전에는 정치·경제 체제에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던 노동자들도 체제에 대해 심한 혐오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위기는 또 다른 측면을 발전시킨다. 위기는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이 투쟁에 참가하는 것을 경계하게 만든다. 자칫하면 그들의 일자리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 위기가 자동으로 그리고 즉각 노동자 대중의 행동에 반영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런 경제적 변화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응은 현존 제도들과 실천들 속에서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활동에 참가함으로써 형성된다. 한국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제도들 중 하나는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적 개혁주의 조직이다. 현 위기에 대해 노동자들이 다소 굼뜨게 반응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과 이런 조직들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자 운동 내에서 확실히 보수층으로 기능하는 노동조합 상근 간부층의 특별한 비중을 살펴봐야 한다.

이들은 지난해 촛불항쟁에서 기회를 유실했고(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파업을 조직할 기회를 내팽개쳤다), 노무현의 죽음 이후 형성된 국면에서는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의 결합을 애써 회피했다.

요컨대, 조직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감과 노조 지도자들의 보수성이 결합돼 아직 대규모 산업 투쟁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화된 투쟁이 아직 부활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가 존재한다. 쌍용차 노동자 투쟁의 경험은 이미 일부 노동자들이 위기에 저항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쌍용차 투쟁 사례는 한국에서 아직 일반화된 패턴이 아니다.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겨울은 지나갔으며 동면은 때에 맞지 않음을 가리킨다.

요컨대, 거대한 대중적 분노와 행동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 사기저하까지는 아니지만 대중 행동을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다는 정치적 자신감과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노동자 진보 정당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태도를 분명하게 표명함으로써 대중적 분노의 초점을 형성할 운동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 정치적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민주노동당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사과’, ‘심판’, ‘불신임’ 등의 구호 내세우기)를 취한다면 대중의 분노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이명박 퇴진 선언은 돈키호테적인 외침(이승환은 “현재를 정권 퇴진의 정세라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이 아니라 대중의 불만 가득한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자 운동의 전략적 목표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하에서 “권력 창출”의 문제

이승환은 한국 자본주의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에 더는 “대중 집회와 총파업 등으로 권력을 교체하겠다는” 전략은 “현실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이승환의 지적대로 “이명박 정부가 1970~80년대 존재했던 독재 정부는 아니”며 “군부 파시즘”은 더더욱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민주적 권리의 일부를 공격하고 있지만, 의회 민주주의 자체를 공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사회적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노동계급 대중조직, 즉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을 불법화하는 것은 노동계급 투쟁을 결정적으로 패퇴시키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독재”나 “파시즘” 개념을 느슨하게 쓰는 것은 계급투쟁의 동역학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역진 시도는 한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의 전환 과정이 불안정함을 보여 준다. 따라서 한국 정치가 앞으로도 계속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높은 단계 또는 고차원을 향해 순탄하게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볼 수는 없다.

이런 현실과 맞지 않게 이승환은 “남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안정화”, 즉 “수립된 민주주의 ‘제도가 대중에게 얻고 있는 신뢰’”를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에게로 정치 권력 이행은 의회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두 시위나 대중 운동이 선거를 비롯한 권력 창출의 기본적 형식 자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전민항쟁 류의 환상은 버”리고 “선거나 다당제와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정치의 기본적 조건으로 사고해야 한다.”

필자는 이승환과 전혀 다른 이유로 전민항쟁 전략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수준과 그에 따른 계급 분열, 노동계급의 형성과 성장에 비춰봤을 때 민중 내 압도적 역량을 갖고 있는 노동계급의 투쟁 방식과 전략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부르주아 자유주의 야당마저 정치적 탄압을 받던 권위주의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꽤 급진적 강령을 갖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사회적 ‘평온기’에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몽상이다(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이 강령을 완화한다면 부르주아 자유주의 야당과 차별성이 없어질 것이다). 당장 민주노동당이 2004년에 원내에 입성한 것도 노무현 탄핵 반대 운동이 일어나 사회 전반의 이데올로기가 왼쪽으로 이동한 덕분이다.

1997년에 37년 만에 이뤄진 자본가 정당들 간의 “수평적 정권 교체”조차 1997년 1월 노동자 파업과 IMF 경제 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 속에서 가능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마저 “좌파” 정권이라고 비난하는 남한 지배계급이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압력 없이 과연 민주노동당의 권력 접근을 쉽게 용납하겠는가. 남한처럼 주류 정치의 보수성이 강한 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 같은 노동자 정당이 집권하는 것은 (준)혁명적 위기 상황에서 가능할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대개 거대한 규모의 정치적·경제적 위기와 대중 투쟁 속에서 집권할 수 있었다.

따라서 대중의 아래로부터 이니셔티브에 근거하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 같은 노동자 진보 정당의 선거를 통한 권력 창출은 용이하지 않다.

이승환이 제안한 “창조적인 정치 연합”, 즉 “영국의 RESPECT의 경험처럼 기존 정당의 존재를 인정하는 가운데 상위의 전선적 정당을 구성하는 것과 같은 훨씬 개방적인 조직 형식”을 갖춘 “정치 연합”은 바로 이런 운동에 근거할 때 훨씬 더 효과적으로 건설할 수 있다.

물론 이승환이 “대중운동 무용론이나 진보정당 원내 정당화”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운동은 집권 전과 집권 후에도 진보정치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선거를 “정치의 기본적 조건”으로 삼는다는 것은 대중 운동을 선거의 보충물쯤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한편, 이승환의 “선거를 통한 권력 창출”론은 자본주의 하에서 의회 체제의 성격을 제기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는 기본으로 경제와 정치의 분리를 수반한다. 대의제도는 경제적 근거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배치된다. 의회의 기능은 계급에 우선하는 ‘보편적 이해’를 보장해 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중의 정부 참여는 효과적으로 거부당한다. 단지 4~5년에 한 번씩 여러 자본가 정당들 중 하나에 투표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선출된 의회 자체는 입법 책임이 있다. 법을 집행하거나 해석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공무원과 판사의 권한이다. 역사적으로 의회가 권력에 근접해 무언가를 했던 때는 영국에서 1846년과 1867년 사이였다. 이때는 투표권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었고 의회는 대개 대토지 소유자들로부터 지명된 사람들로 구성됐다. 1867년 투표권이 확대되자 의회가 약화되기 시작했다. 내각, 공무원, 대기업으로 권력이 이동했다. 그래서 의회를 통한 사회 변화는 반동적 공상에 가깝다.

게다가 1973년 칠레의 경험은 노동자 운동이 자본가 권력에 실질적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일수록, 노골적인 노동자 조직 파괴 경향이 지배계급 내에서도 강화된다는 점을 비극적으로 보여 줬다. 칠레에서는 좌파 연합인 국민연합 정권이 집권하자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 장군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수천 명을 학살하고 그 정권을 무너뜨렸다.

물론 지배계급이 현존하는 민주적 권리를 공격할 때 이 권리들을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투쟁은 필요하다. 현존 의회 체제는 노동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는 민주적 권리의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진정한 쟁점은 이런 권리들을 의회 체제의 틀 내에서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운동은 거리에서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즉, 민주적 권리의 효과적인 방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1936년 스페인에서 프랑코의 쿠데타를 처음에 좌절시켰던 것은 대중의 혁명적 이니셔티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