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파업을 평가하며 〈한겨레〉, 〈경향신문〉, ‘창비주간논평’ 등 자유주의 개혁 진영에서 ‘강성 파업’을 비판한데 이어서 파업에 관여한 일부 활동가들도 비슷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정책적 대안” 제시가 부족한 채 공장에 국한 된 점거 파업 같은 ‘과거 방식의 되풀이’가 문제(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였고, “양보를 통해 시민사회와 여론의 지지를 얻었어야 했다”(조건준 금속노조 정책국장)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주장은 쌍용차 투쟁 결과에 대한 패배적 평가와 연결돼 있다. 그러나 전체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그리 높지 않은 상황과, 쌍용차 노동자들이 처했던 불리한 환경을 고려할 때 이번 투쟁 결과를 단지 패배로 평가할 일은 아니다.

1998년 현대차 파업 결과에 비하면 해고자 비율이 더 많지만, 당시 현대차의 경영 상태는 쌍용차보다 훨씬 괜찮았다. 이에 비해 사실상 부도 상태로 내몰려 시종일관 청산 협박에 시달렸던 쌍용차 노동자들은 훨씬 어려운 조건에서 싸워야 했다. 똑같이 부도와 해외매각을 겪었던 2001년 대우차 파업과 쌍용차 투쟁을 견줘 보면 월등히 좋은 성과라 할 수 있다. 대우차 노동자들은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1천7백50명 해고를 당하고 말았지만 쌍용차 노동자들은 77일간의 점거파업 끝에 해고자의 거의 절반을 지켜냈다(물론 지금 이 결과는 정부와 사측의 야비한 보복과 뒤통수치기로 불확실해지고 있다).

다른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에 비해 투쟁 경험이 적었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영웅적인 투지를 과시한 것은, 노동자들의 불만이 얼마든지 투쟁으로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쌍용차 파업은 이런 잠재력과 함께, 앞으로 정부와 기업주들의 구조조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선제적 양보가 필요했는가

금속노조 조건준 정책국장은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을 움직일 ‘유인 효과’가 필요”했다며, 이를 위해 양보교섭안을 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 국장이 주도해서 쌍용차지부가 6월 초에 발표한 양보교섭안은 파업 노동자들의 반발로 나중에 폐기됐다.

자유주의 개혁 언론들이 이 양보안에 호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정부와 사측은 노조의 양보 의사에 더 기세를 올려 정리해고를 관철하려고 했다.

정부와 사측이 정리해고 계획을 온전히 관철하지 못한 것은 점거파업의 힘이었지 ‘선제적 양보’가 아니었다 ⓒ사진 임수현

조 국장은 “회사의 수용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여론의 힘을 얻음으로써 연대와 지원을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론의 지지와 연대 확산은 단호한 점거 파업 속에 노조의 양보교섭안이 폐기되고, 이 투쟁이 역동적인 정치 정세와 결합하기 시작한 6월 중순 전후부터 시작됐다.

더욱이, 정책 대안에 대한 여론 지지도만으로 싸움의 승패가 결정되지도 않는다. 쌍용차 파업에서도 정부와 사측보다는 노조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았지만 중요한 것은 요구를 관철할 힘, 즉 실질적인 연대 파업과 투쟁의 확산 여부였다.

한편 “고용안정 투쟁에서 양보하고 대신 안전망 확충을 요구했어야 했다”(‘창비주간논평’)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당장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서 물러선 다음에 기약도 없는 사회안전망 확대를 기다리자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사회복지 확충을 위해서라도 조직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과 파업이 필요하다. 그런 투쟁력으로 정리해고 저지 투쟁에서 승리하는 게 이후 사회안전망 확충 투쟁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과도한 파업 전술’을 문제 삼으며 선제적 양보가 필요했다는 평가와 주장은 2001년 대우차 파업 평가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양보를 통한 실익 쟁취” 추구는 실익도 가져다주지 못한 채 운동의 혼란만 초래했다. 쌍용차 파업에서도 사측의 정리해고 1백 퍼센트 관철 입장을 무너뜨린 것은 점거 파업의 힘이었지, 번번이 무시당한 ‘선제적 양보’가 아니었다.

정책 대안 제시와 점거 파업은 대립하는가

평택공장에 한정된 점거 파업 때문에 정치 투쟁이 곤란했다는 평가도 있다. “투쟁의 거점을 평택으로 한정하고 옥쇄파업을 선택하면서 대정부 사회 투쟁의 동력은 급격하게 떨어졌다”(이종탁)며 “문제는 구조조정 정책인데 단순히 고용 문제로 환원돼 아쉽다”(금속노조 공계진 정책실장)는 것이다.

대안적 요구를 제시하며 정치 투쟁을 했어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히 옳다. 그러나 그것을 점거 파업과 분리시켜 대립시키는 것은 틀렸다.

이 부소장은 “한 사업장의 투쟁과 그것에 대한 연대를 통해 자본과 정권에 맞서는 총 노동의 대자본 전선을 형성하려는 발상은 매우 순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특정 상황에서는 단위 작업장 투쟁일지라도 정부 정책 전반에 도전하는 대리전 양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1998년 현대차 파업은 ‘IMF식 구조조정’에 대한 본격적 반발로 간주됐다. 이 투쟁을 계기로 김대중 정부 구조조정 정책에 일정한 수정이 가해지기도 했다. 2002년 발전 파업도 김대중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효과를 냈다. 2007년 이랜드 노동자들의 매장 점거 파업도 비정규직 악법의 문제점을 정치 쟁점화시켰다.

쌍용차 파업도 이명박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의 시험대로 간주됐다. 따라서 점거 파업 승리를 위한 연대 투쟁 확산 노력과 함께 공기업화 같은 진정한 대안을 제시하며 대정부 정치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했다.

공기업화 요구와 정치적 투쟁이 중요했다

그 점에서 “단위 작업장 투쟁을 넘어서 사회적 의제로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이 부소장의 주장에 일리가 없지는 않다. 점거 투쟁은 강력했지만 ‘쌍용차 회생’ 문제에 대한 혼란 때문에 투쟁이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부도기업 공기업화를 통한 고용보장 요구를 분명하게 제기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 부소장 등이 제기한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한시적)공기업화’는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할 수 없는 잘못된 요구였다.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정부와 사측이 양보는커녕 파산 협박을 강화하며 강경하게 나오자, 시간이 갈수록 ‘현실론’으로 기울면서, 양보부터 하고 나서 자금을 지원받자는 생각이 강해졌다. 이 때문에 반복적으로 노조가 양보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기하기도 했다. 구조조정 후 자금을 지원하겠다던 정부의 논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공적자금 투입 요구는 추가적인 매각이나 구조조정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문제점 외에도 노동자 양보론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따라서 대안적 요구를 사회적 의제로 확대하려는 노력이 더 있어야 했다는 이 부소장의 지적은 반만 옳다. 진정한 문제는 어떤 대안을 제기하고 어떻게 투쟁할 할 것인가 였다.

관련해서 일부 신디칼리즘 경향 활동가들이 공기업화 요구가 자본주의 정부에 대한 환상을 조장한다며 그저 생존권 투쟁이면 족하다는 태도를 보인 것도 문제였다. 과잉생산 속에 쌍용차를 회생시켜도 팔 시장이 없다며 청산 협박을 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응과 정치적 대안 제시없이 무조건 투쟁하자는 말은 정치적 무능력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윤 논리와 사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쌍용차를 공기업화해서 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했다. 이는 정부에 대한 환상을 조장하기는커녕 대정부 정치투쟁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었다. 공기업화 요구는 쌍용차라는 개별 작업장을 넘어 경제 위기 속에 고용불안을 느끼는 전체 노동자들의 지지를 끌어내며 점거 파업과 연대 파업을 연결시키는 초점 구실을 할 수도 있었다.

정치적 노동조합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정일부 부소장은 쌍용차 파업 평가 논의가 ‘산별노조 무용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며 ‘산별노조가 충분히 안착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경험은 산별노조라는 조직형식이 곧바로 광범한 연대 투쟁과 정치 투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줬다. 쌍용차 투쟁의 승리를 위해 필요했던 제대로 된 연대 투쟁과 정치적 투쟁 건설을 위해서는 조직형식상의 해법을 넘어서 노동조합 운동 자체가 정치화해야 한다.

노동조합 투쟁은 전투성만을 추구하는 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노조운동은 정치를 결합함으로써 훨씬 강해질 수 있다. 쌍용차 파업에서도 국유화를 통한 고용보장이라는 행동강령(국제 노동운동의 경험에서 확립된) 같은 정치적 대안을 분명히 하는 게 필요했다.

실질적인 연대 파업 건설을 위해서도 업종별·부문별 분리,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보수적 압력에 도전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변혁의 관점에서 노조운동의 강점을 이해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정치 전망과 그에 따른 운동이 필요하다.

노동조합 운동은 임금과 일자리를 위한 투쟁뿐만 아니라 피억압 대중이 일상으로 겪는 소외와 차별 문제를 비롯해 민주적 권리 확대를 위한 투쟁 같은 작업장을 넘어선 투쟁 등에도 적극 개입해야 한다. 이런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정치적 시야가 넓어지고 사회적 힘이 증대될 수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경험은 정치 투쟁이 약진하면서 산업 투쟁이 자극받을 수 있음을 되풀이해서 보여 줬다.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도 6월에 절정에 이른 민주항쟁에 힘을 얻은 것이었다.

그런데 일부 좌파 활동가들은 종종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이끈다는 이유로 정치 투쟁과 민주적 권리 옹호 투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예컨대 쌍용차 투쟁 때도 상당수 좌파 활동가들이 “쟁점이 묻”히고, “공장 사수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쌍용차 노조의 6.10 범국민대회 참가에 부정적이었다. 민주노총과 주요 연맹 지도자들도 당시 정치적 시위들에 조합원들을 동원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쌍용차 고위 관리자도 “구조조정을 큰 문제없이 관철할 것으로 봤지만 노무현 사망 정국 이후 불투명해 졌다”고 한 것처럼 쌍용차 투쟁의 가장 큰 우군은 사실 민주주의 후퇴와 민생 파괴에 분노하던 반이명박 정서와 운동이었다.

따라서 노동조합 운동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을 시도해야 한다. 이런 과제를 위한 산업 현장 활동가들의 네크워크는 경제와 정치의 분리가 해로움을 이해하고 둘의 결합을 추구해야 한다. 사회주의 정치조직이 이런 노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처음부터 넓은 지지를 받거나 성공적이기는 쉽지 않겠지만, 다음 기회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화가 필수 불가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