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록 동지의 의견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서술 방식이 다소 일면적이고, 이데올로기 비판 측면에 치우친 나머지 초좌파적으로 보일 부분이 있던 것 같다. 특히 현실에서 운동이 종종 입헌적 근거에 호소한다는 점, 급진 공화주의에 공명하는 청중과 대화하는 방식에 대한 지적에 감사한다.

그럼에도 몇 가지 단서를 달고자 한다.

천경록 동지는 내가 “장은주 교수의 주장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나는 장은주 교수의 주장이 애국주의 일반을 좌파가 독점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서술하지 않았다. 

장은주 교수는 우파의 애국주의를 침식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헌법 애국주의’를 제시했고, 나는 그 ‘헌법 애국주의’가 언제나 좌파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천경록 동지가 나의 민주공화주의에 대한 서술이 “공화주의 이념 자체를 지나치게 문제 삼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한 지적에 동의한다. 다만, 현재 민주공화주의 논의들 중 일부가 북한 문제, 자본주의의 적극 승인, 사적 소유권의 적극 승인 등과 연관된 ‘대한민국 정체성’ 긍정 문제와 연결된 측면들이 있어서 양상은 좀더 복잡한 듯하다. 물론 내가 민주공화주의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이 점을 충분히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경록 동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천경록 동지가 주장하듯이 “우파가 생각하는 애국과 촛불시위자가 생각할 법한 애국은 그 내용이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천경록 동지가 주장하듯이 어떨 때는 우파의 애국주의와 충돌하면서 그들의 모순을 드러내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예를 들어 민중의 반일 민족주의를 탄압한 중국 지배자들의 민족주의 사례, 박정희의 애국(민족)주의와 충돌한 민중 민족주의 등 수많은 사례들이 그렇다.

그러나 “‘국익’이라고 했을 때 한 국가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바로 그 점이 마찬가지로 어떨 때는 동시에 결정적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마치 좌파 민족주의, 또는 민중적 민족주의가 결정적 국면에서 개혁주의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장은주 교수는 “민주공화국의 헌정질서의 틀 안에서 그 헌법적 가치와 기본권을 수호하고 그것이 정한 수단과 절차를 따라 그렇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진보적 애국주의의 실천”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이명박식 ‘법치’를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저항 운동에 체제내적 한계를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좌파가 애국주의나 민족주의를 차용한 저항 운동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 이데올로기 자체를 추수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 점이 천경록 동지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 주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좌파 애국주의의 모순을 언급하지 않은 채, “필요하다면 ‘애국’의 언어를 차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혼란을 자아내거나, ‘애국주의에 너무 타협적인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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