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이후] 지난 며칠 동안 수천 명의 군중이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의 브라질 대사관 앞에 모여서 시위를 벌였다. 월요일 경찰은 최루탄을 쏘고 허공에 위협사격을 했다.

그러나 ‘국민저항전선’[반쿠데타 대중 단체]은 이런 위협에 굴하지 않고 군부가 쿠데타로 마누엘 셀라야를 축출한 지난 6월 28일 이후 시작한 쿠데타 반대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몇 번의 귀환 시도가 실패한 후 셀랴야는 3일 전[9월 21일]에 온두라스로 돌아 왔고 현재 브라질 대사관 건물에 거주하고 있다.

로베르토 미첼레티 쿠데타 정부의 대변인은 정부가 무력을 동원해 셀레야를 체포하려 한다는 소문을 잠재우려 애쓰고 있다.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쿠데타 정부는 능히 그럴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쿠데타 정부의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셀라야를 몰아낸 쿠데타는 분명히 전 미국 대사 존 네그로폰테와 전 대통령 조지 부시의 사악한 라틴아메리카 자문이었던 오토 라이히가 주도하는 미국 국무부 내 우익들의 승인을 얻었을 것이다.

네그로폰테와 라이히는 과거 온두라스 정치에 개입한 전력이 있고, 이들 주변의 일당 중에는 힐러리 클린턴과 가까운 자들도 있다. 미주기구(OAS)와 버락 오바마는 쿠데타를 비난했지만, 막상 쿠데타 정부를 워싱턴으로 초청해 청중하게 대접했다.

그 뒤로 클린턴 등은 신임 정부가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사실을 무시한 채 셀라야가 신임 정부와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협상은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 오스카르 아리아스의 중재 아래 지난 석 달 동안 별다른 소득없이 진행돼 왔다. 아리아스는 1980년대에도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혁명을 뒤흔들 목적으로 중재자 구실을 한 바 있다.

셀라야의 축출은 곧장 대중적 항의 운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 운동은 혹독한 탄압, 친셀라야 언론에 대한 공격, 야간 통행금지 선포 등 셀라야 지지자들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에너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쿠데타에 반대하는 파업, 고속도로 점거, 거리 집회, 학생 시위, 농민 집회 등이 일어났고, 이 때문에 미국 정부와 온두라스 쿠데타 정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종결지을 수 없었다.

중도 정치인인 셀라야는 축출되기 전 1980년대 미국에 의해 강제로 도입된 옛 온두라스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선언했다. 또, 셀라야는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언론 민영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평범한 온두라스인들에게 셀라야는 변화와 라틴아메리카의 연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반면에, 쿠데타 세력은 온두라스의 소수의 부자 엘리트들을 옹호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쿠데타 정부에 반대해 셀라야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셀라야 본인의 의중이 어떤지는 불명확하다. 셀라야는 쿠데타 정부의 대통령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정부도 쿠데타에 관련된 군부 인사, 판사와 기업 들이 처벌받지 않는 해결책을 바라고 있다.

만약 그런 타협이 성사된다면 새로운 헌법이 상징하는 이상의 포기와 개혁의 중단을 의미할 것이다. 셀라야는 그런 타협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리의 대중 운동은 셀라야를 지지하면서도 그보다 더 멀리 나갔다.

거리의 대중은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았고 지난 석 달 동안의 엄혹한 탄압을 견뎌냈다. 그들은 당장 투쟁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쿠데타 정부가 뒤로 물러서고 셀라야가 귀환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대중 운동이 온두라스의 상황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온두라스 민중은 저항 과정에서 대중 행동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리고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엘리트들은 바로 이 점을 두려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