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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88만 원 세대에게 어떤 “혁명”이 필요한가?

《88만원세대 새판짜기 ─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우석훈 지음, 레디앙, 244쪽, 12,000원

‘88만 원 세대’론을 크게 유행시키며 한국 사회에서 20대의 어려움을 드러낸 우석훈 씨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라는 후속편을 2년 만에 냈다.

이 책에서는 전편과 달리 우석훈식 대안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88만 원 세대 새판짜기”라는 부제를 단 것도 그 때문이다. 책 말미에 실린, 대학생들이 20대의 처지에 대해 직접 쓴 내용들도 흥미를 끈다.

저자는 “육화[肉化]된 신자유주의”인 한국의 20대들이 유럽이나 일본의 20대와 달리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쫄아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20대가 자신들만의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우선 20대에 맞는 “진[陣]”을 짜야 한다고 제안한다.

20대의 문제를 풀어갈 시민단체를 만들고 사회운동가가 되고, “매달 1만 원 정도 후원할 수 있는 1만 명의 20대”를 모아 이들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또, 민주당이나 진보 정당에 들어가 기초의원 선거부터 출마해 자치단체장과 광역단체장으로 성장하는 지역에 기반을 두는 정치인의 길을 개척하고, 대학 근처의 편의점·주유소에서부터 알바 노동조합도 조직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사회운동의 참여는 정치적 요구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한데, 저자는 19세기 영국에서 보통선거권 쟁취를 위해 싸웠던 차티스트 운동의 사례를 따라 노동권·주거권·보건권·교육권이 중심이 된 “20대의 권리선언문”을 작성하자고도 제안한다.

이런 대안은 사실 새롭지 않다. 20대가 직접 자신의 문제를 내걸자는 “당사자 운동”을 저자가 제시하더라도 그렇다. 복지 확대 등의 요구를 내걸고, 더 많이 투표에 참가하고, 사회운동이나 정치활동에 참여하라는 제안은 20대의 변화를 촉구하는 일반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상적 사회주의

우석훈식 대안의 특징은 권리의 내용에 있다. 예를 들어 노동권에 대한 설명을 보면, 저자는 “지식경제”나 “창의경제” 시스템에 맞게 노동 형태가 유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유연 노동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사회 보장 체제를 통해서 ‘사회임금’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2006년 프랑스 최초고용계약법(CPE) 반대 시위 국가와 자본을 패배시키지 못하면 개혁을 성취할 수 없다

권리선언의 내용을 이렇게 제안하는 것은 저자가 “생협과 사회적 기업 혹은 ‘소셜 벤처’” 같은 ‘제3부문’ 경제의 확대를 “밑에서부터 조용히 그러나 매우 빠르게 우리 삶을 바꾸”는 “조용한 혁명”의 실내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제3부문 확대를 지원할 수 있는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저자의 대안은 복지의 확대와 국가·자본을 우회한 경제(‘제3부문’)라는 두 가지 대안의 접합이다. 그리고 이 대안의 화신(化身)은 19세기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로버트 오웬이다.

“요즘 생협이라고 부르는 대안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공동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들도 대부분 오웬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타났다. … 오웬은 노동조합의 기틀을 닦았을 뿐만 아니라 비밀선거와 보통선거가 만들어지는 데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이는 최근 진보진영의 일부가 신자유주의 파산의 대안으로 로버트 오웬이나 칼 폴라니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아무튼 내가 보기에 이런 제안은 전편에 비해 일보전진이다. “스타벅스보다 20대가 운영하는 커피숍에 가겠다고 선언”하는 ‘상징적 반항’을 말하던 전편보다 더 분명하게 사회운동에 참여하자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모순도 나타나는 것 같다.

우선, 저자는 20대의 특징을 ‘공포’와 ‘불안’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시민단체를 조직하는 일을 설명할 때는 “20대 문제의 시급성을 생각해 볼 때 1만 명 정도는 정말 빠른 시간 안에 모일 것 같긴 하다”며 손쉽게 낙관주의로 이동한다. 물론 20대를 고무하고, “혁명의 파토스”를 전해 주려는 저자의 좋은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불만이 쌓였다고 쉽게 조직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널뛰기 같은 상황 인식은 20대의 모순적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20대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는 저자의 분석은 이들이 보수화했다는 주장에 대한 올바른 반박이지만, ‘공포’와 ‘불안’으로 주저하고 있는 현실은 몇몇의 “영웅”이 나선다고 20대가 손쉽게 조직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음을 뜻한다. 오히려 20대와 대화하고 정치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좀더 꾸준하고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생협과 사회적 기업 혹은 ‘소셜 벤처’”를 통한 조용한 혁명을 말하는 저자는 무엇을 목표로 ‘진’을 짜고 ‘짱돌’을 던져야 하는지를 모호하게 제시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그들[경제관료와 보수적 정치인들]이 최소한 인간으로서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20대의 보건권 정도는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하고 쓰고 있다. ‘진’을 짜고, 20대의 요구를 제시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지배자들을 패배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지배자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촉구하는 것인 셈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심화할수록 조그마한 양보는커녕 오히려 사활적으로 노동자·서민 ─ 20대 대다수가 포함될 ─ 에게 위기의 대가를 전가하려는 자본·국가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없다면 양보를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20대의 권리선언”의 요구가 달성돼 충분한 ‘사회임금’ 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20대가 적극적으로 사회적 기업 등 “창의경제”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이런 한계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저자가 88만 원 세대의 문제를 계급문제로 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맞불〉 58호에 실린 《88만 원 세대》 서평 기사 ‘누구에게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던져야” 하나?’를 참조하시오).

물론 전편에 비해 ‘세대 간 착취’라는 논쟁적인 틀은 훨씬 약해졌고 반면 개혁주의적 주장이 강해졌다. 따라서 읽는 내내 노동자·서민을 분열시키는 결론을 내릴까 봐 아슬아슬했던 전편에 비해 훨씬 ‘편안하게’ 읽을 수 있지만, 그만큼 더 밋밋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