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 투사보다는 중재자가 되려 하는가?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 투사보다는 중재자가 되려 하는가?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진보 진영과 노무현 대통령을 잇는 다리 구실을 자임”하겠다고 한다.

권 대표 기자 회견은 현 상황의 모순을 압축적으로 보여 줬다. 권 대표는 노무현 정부가 ‘정치 실종, 개혁 표류, 민생 파탄’ 등 3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옳게 비판했다. 노무현은 스스로 ‘여당인지 야당인지 헷갈린다’고 말할 정도로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정부와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 이미 일부 노동자들은 노무현 정부와 한바탕 전투를 치렀다.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불만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해 투쟁하는 당이 맞다면 노동자 투쟁의 승리에 필요한 전술과 방향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권 대표는 노무현의 실정을 비판하면서도,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 사이에서 양쪽을 향해 ‘정지’(이른바 “중재”) 수신호를 보냈다.

“노동자·농민 등의 의견을 수렴해서 정리할 수 있는 민노당이 이들과 노 대통령 사이를 적극 중재할 필요가 있다. …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노동자와 농민들의 궐기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 6월 들어 민노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권 대표의 중재 구실 자임은 지난해 대선에서 권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맥빠지게 한다. 무엇 때문에 대선에서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과 그토록 치열하게 논쟁하고 싸웠던가.

당시 권영길 후보는 커다란 사퇴 압력에 시달렸다. 심지어 선거 출마가 이회창 당선을 돕는다는 모욕적인 비난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노무현이 우파에 맞서 노동자 대중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사퇴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자유주의는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이라고 공격했다. 노무현을 신자유주의 후보라고 비판했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부유세)을 거둬 사회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라고도 했다. 권 대표의 연설을 듣노라면 속이 다 후련했다.

당시 노무현 지지자들은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이 민주당에 투표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은 신주류든 구주류든 기성 권력자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당이었다.

비록 지금까지는 전체 노동자 가운데 소수만이 민주노동당에 투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의지와 욕구를 반영하려 했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당일 수 있는 까닭이다.

투사냐 중재자냐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보다도 일찍 그리고 빠른 속도로 정치 위기를 겪고 있다. 노무현은 자신이 60-70퍼센트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며칠 뒤 여론 조사 결과에서 지지율이 14퍼센트 포인트나 떨어졌다(〈한겨레〉 5월 26일치).

우리는 우파들과는 다른 맥락에서, 다른 목표를 위해 노무현 정부와 싸우고 있다. 우파들은 노무현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비난한다. 반격의 무기로 지난해 이맘때 일었던 월드컵 신화를 끄집어 내고 있다. ‘그 때 우리는 하나였다.’

우파들이 ‘국론 분열’을 우려할 만큼 계급 양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자신의 지지 기반을 배신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 존재한다. 위기에 직면해, NEIS 재시행에서 보듯이, 노무현은 노동자 운동을 희생시켜 자본가들을 만족시키려 하고 있다. 노무현은 위기 극복을 위해 갈수록 노동자 계급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이 때문에 권 대표 말마따나 “양쪽[양대 계급]의 틈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권 대표가 대선에서 주장했던 반신자유주의, 반보수 투쟁이 실로 중요할 때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 말들을 실천에 옮겨야 할 때다. 이것이 당의 대선 공약이 헛된 약속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대선에서 당이 주장했던 것이 옳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권 대표의 기자 회견은 민주노동당이 투쟁하는 노동자 정당이라기보다는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주요 사회 세력 간의 중재자 구실(현존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에 결박돼 있는 개량주의)을 하는 당으로 성큼 나아가고 있다는 의심이 들게 했다.

계급 양극화가 촉진되는 시기에 “양쪽의 틈새”를 메우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모순에 부딪히게 된다. 예를 들어, 집권한 브라질 노동자당(PT) 지도부는 최근에 연금과 세제 개혁에 반대하는 당내 좌파를 제명하려 하고 있다. PT 지도부는 기업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왼쪽의 비판을 잠재우고 싶어한다.

사회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양대 사회 세력을 중재하려는 시도는 현실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와 체제 지배자들을 옹호하게 된다.

노동자와 농민이 노무현에 맞서 투쟁을 준비하는 이 마당에, 당의 “중재” 구실 자청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