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기업들이 지구를 망치고 있다. 그들은 엄청난 양의 화석 연료를 사용하고 이윤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면서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한다. 

셸 오일이 니제르 삼각주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고,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이 캐나다 앨버타 주에서 공해 산업 ─ 독성 폐기물로 원주민의 땅을 오염시키고 잉글랜드 섬보다 더 넓은 숲을 파괴했다 ─ 으로 돈을 버는 등, 기업의 세계는 기후 파괴범들의 세계다.  

이런 사례를 접했을 때 경제 성장, 개발과 진보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기후 문제의 근원은 18세기 말 산업혁명이 촉발한 사회 변화에 있는 것이다. 

2005년 미국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앙 - 기후변화 재앙은 세계 지도자들이 아니라 세계 민중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지구상의 자원으로 모든 사람이 서구의 생활수준을 누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개발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지난 2백 년 동안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기술 발달 덕분에 사상 최초로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 ─ 식량, 쉴 곳, 난방, 의약품 등등 ─ 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예컨대, 지구상의 모든 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의 식량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것의 분배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자본주의가 대단히 모순적 체제라는 것을 보여 준다. 자본주의는 매우 역동적이다. 그 이전 사회와 비교해 물건과 식량을 엄청난 규모로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는 극소수에게 자원과 부를 집중시키며, 그들은 자기 맘대로 지구를 파괴한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자본주의는] 이전 모든 세대를 합한 것보다 더 크고 막강한 생산력 ─ 기계, 산업과 농업에 대한 화학 기술의 적용, 증기기관, 철도, 전신(電信) ─ 을 창조했다.” 

이런 발전은 많고 좋은 혜택을 가져 왔다. 산업혁명 전의 삶과 오늘날의 삶을 비교해 보라. 산업혁명 전에는 질병과 식량 부족 때문에 평균 수명도 더 짧았다. 또, 당시에 사람들은 자기 주변 환경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기술 발전으로 우리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찾았고 자연의 힘에 무방비로 노출되지 않게 됐다. 

진정한 문제는 발전이 취하는 형태였다. 자본주의는 잔인한 체제다. 돈을 벌기 위해 모든 것 ─ 노동계급뿐 아니라 자연도 ─ 을 착취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대지와 노동자라는 모든 부의 원천을 파괴하면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자본주의는 엄청난 낭비를 유발한다. 

영국의 슈퍼마켓은 매해 6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의 음식물을 버린다. 슈퍼마켓들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면, 관리자들은 식품 위에 할인 표시를 붙이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비용이 덜 든다고 답한다. 

그런데 세계 인구의 절반은 하루 2달러 미만을 벌고 살며 굶주리고 있다. 그들이 굶주리는 것은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가 혼란스런 체제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들이 서구보다 늦게 지금 산업화하고 있다고 그들보고 기후변화에 책임지라고 말하는 것은 황당하다.  

중국이 미국보다 더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인당 배출양은 여전히 미국이 훨씬 더 많다.  

또, 중국의 오염 배출 중 상당량은 서구 다국적 기업들의 중국 공장에서 나온다. 이들 기업의 생산품들 중에는 사회를 위해 생산할 필요가 없거나 해로운 것들이 꽤 많다.

설상가상으로, 지금까지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남반구다. 코펜하겐 기후 정상회담을 앞두고 가난한 나라에게 개발 속도를 늦추라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위선적인 서구 정부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 위기의 대가를 치르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구의 노동계급 대중도 속죄양이 되고 있다. 주류 언론들은 저가 항공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럭셔리’한 비즈니스 여행자들이 공해물질을 가장 많이 내뿜는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데 말이다. 

물론, 비행기 여행을 줄이지 말자는 주장은 아니다. 비행장을 늘리는 것보다 고속철도를 확충하는 것이 더 적은 탄소를 배출하는 더 나은 대안이 될 것이다. 

내 말의 핵심은 보통 사람에게 그들의 잘못이 아닌 것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나라 안을 이동하는 데 기차보다 비행기가 더 싼 경우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많다. 그러나 해결 과정에서 이윤 논리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의 해답은 기술을 멀리하거나 비행기 금지 캠페인을 벌이는 데 있지 않다. 사실, 다른 체제에서는 오히려 기술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은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킬 생산 방식의 도입에 반대한다. 값비싸고 이윤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 논리 때문에 기후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기업 권력의 방해가 없었더라면 생산은 공해물질을 내뿜고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인류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수 있었을 것이다.

생산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재편해야 한다. 

매해 무기와 전쟁에 낭비되는 돈이면 세계 빈곤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세계에는 모든 사람에게 쾌적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부가 존재한다.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면 된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세울 때 기업들과 해괴한 ‘럭셔리’ 생활을 누리는 부자들을 일차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혼란스런 자본주의 체제를 제거하고 사회를 재조직해야 한다. 

해답은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기후변화 위기를 영원히 종식시킬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회주의 사회를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번역 김용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