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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파업을 다시 돌아보며:
철도노조 지도부가 불필요한 타협과 후퇴로 패배를 자초했다는 평가는 옳다

〈레프트21〉 20호에 내가 쓴 철도 파업 평가 기사에 대해 여러 동지들이 의견을 줬다.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내가 만나 본 일부 독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내가 쓴 평가에서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과도하다’는 것이었다. 김문성 동지의 독자편지가 대표적이다(하지만 그가 처음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철도 파업 중단 소동과 〈레프트21〉 평가 기사 유감’이 훨씬 더 선명하고 논쟁적으로 이런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나도 내 글의 일부 구절들이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부분일 뿐이며 나는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과하다’는 평가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여러 논점들에 답하는 형식으로 철도 파업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정세가 파업 노동자들에게 불리했나?

〈민중의 소리〉, 〈프레시안〉 등의 진보 언론들은 대체로 철도노조 지도부에게 관대하다. 정부의 탄압이 너무 가혹했기 때문에 파업을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핵심 이유다. 김문성 동지도 “지지 여론은 멀고 정부의 주먹은 가[까웠]”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지난 글에서도 말했듯이, 이명박이 직접 진두 지휘한 막무가내식 탄압은 철도 파업 무력화가 저들에게 얼마나 사활적 과제였는지를 명백히 보여 준다.

그럼에도 상황이 진정 우리 편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 기간산업인 철도 운행에 차질을 주는 파업은 2003년에도, 2006년에도 언제나 거듭거듭 지배자들의 총공세에 시달려 왔고, ‘불법’으로 낙인찍혀 왔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국민의 발을 볼모로 삼는다”는 비난 속에서 파업을 중단하라는 여론의 압력은 거셌고, 그래서 ‘철도 파업은 3일 이상 가기 힘들다’는 얘기가 많았다. 3일 이내에 어느 쪽으로든 판가름이 나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지배자들의 레퍼토리는 반복됐지만 그러나 우리 쪽의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 광범한 지지 여론 속에서 철도 파업은 결코 고립돼 있지 않았다. “귀족노조”, “철밥통” 비난을 받는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처럼 강력한 지지를 받은 일이 또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여론은 노동자들의 편이었다 (구체적 사례는 내 지난 글에서 언급했다). 이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대목이다.

더구나 한상률 게이트, 세종시와 4대강,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 이명박이 안고 있는 첩첩산중의 악재 속에서 객관적인 정치 상황도 우리 편에 불리하지 않았다.

8일을 넘겼지만 파업 대오도 비교적 단단하게 유지됐다. 파업을 끝내기 바로 전날 열린 서울지역 결의대회에는 간부들의 예상보다 1천여 명이나 많은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일부 이탈이 시작됐지만, “파업대오 자체가 흔들릴 정도는 절대 아니었고, 기관사들이나 차량 분야에서 빠져나간 파업 대오는 거의 없는 상태”(철도노조 백성곤 정책실장)였다.

물론, 공공부문 노조들과 민주노총이 연대 투쟁 건설에 늑장을 부리고 있던 상황에서 철도노조가 느끼는 부담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 고충을 모르는 바가 아니고, 나 자신도 여러 차례 시급한 연대가 조직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상황이 암울하지만은 않았다. 연대 확산 조짐은 커지고 있었다. 각계의 지지선언 준비뿐 아니라, 반MB공투본, 한국진보연대 등이 철도노조와 상의하며 연대 건설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틀 뒤인 5일 공공부문 노조들이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가 예고돼 있었고, 이날 각 단체들도 힘을 집중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철도노조 지도부는 파업을 중단했다. 대화 재개나 징계 철회를 포함해서 어느 것 하나 손에 쥔 것이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조합원들의 반발이 없었으니 지도부에게 책임을 물어선 안 되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은 “조합원들이 대체로 집행부 결정을 수용”했기 때문에, 지도부의 파업 중단이 “결정적 실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김문성 동지의 블로그).

그러나 역으로 노조 지도부가 파업 유지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노동자들은 싸움을 지속했을 것이다. 여러 노조 간부들을 포함해서 노동자들은 유례없는 단협 해지와 무자비한 탄압 때문에라도 파업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해 왔다. 일부 노동자들은 파업 장기화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이를 대비해 파업기금을 모으는 지부도 있었다. 이는 그저 뜬소문이 아니라, 철도노조 간부에게서 나온 공식적인 얘기였다. 조합원들이 파업 중단에 박수치고 환호한 것도 아닌 마당에, 이 점이 노조 지도부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유가 돼선 곤란하다.

더구나, 조합원들의 정서가 투쟁 평가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흔히 겪어 왔던 것처럼, 해당 작업장 조합원들의 정서와 운동의 성패나 필요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지난해 촛불운동 당시 대중적 요구와 극명한 필요 속에서도 민주노총 지도부가 고작 2시간 파업 조직에만 머물렀던 것은 비판받아 마땅했다. 당시 민주노총 조합원들 내에서 파업 요구가 크지 않았지만 말이다. 반면 올해 쌍용차 파업에 대해 조합원들은 패배했다고 말했지만 그 파업은 (아쉬움이 크게 남기는 하나) 선방했다고 볼 수 있었다.

철도노조 지도부는 파업이 더한층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바로 그 시점에서 파업을 접었으므로, 그 점 자체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 “지도부가 고생했다”는 조합원들의 발언만을 이유로 지도부를 두둔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가 아니다.

거점 형성이나 필수유지업무를 뛰어넘자는 주장은 과도했는가?

김문성 동지는 철도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충분치 않았다고 말한다. ‘합법 파업’이라는 점 때문에 파업 참가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이미 파업은 불법화됐다. 지도부는 체포영장이 발부돼 발이 묶였고 9백여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직위해제를 당하고 파면 협박을 받았다. 광폭한 탄압 속에서도, 자신들의 힘을 한데 집중하지 못한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8일이나 파업을 유지할 정도의 투지를 보여 줬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대열을 한데 모아 거점을 형성하며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연대의 초점을 제공했다면, 이번 파업은 더한층 발전할 수도 있었다.

김문성 동지가 블로그에서 말한 “(이번 파업의 정치적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고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 길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철도노조의 공식적 요구가 ‘공기업 선진화 중단’으로 표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파업의 성격 자체가 애당초 부문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 자신도 “허준영의 공격이 선진화 정책 때문”이고, “우리는 허준영이 아니라 이명박과 싸우고 있다”고 말해 왔다. 하다 못해 〈한겨레〉와 민주당을 포함한 야4당까지 나서 ‘근로조건을 포함하고 있는 공기업 선진화에 반대하는 것이 어떻게 불법이 될 수 있냐’는 식으로 정치파업 비난 그 자체를 논박했다. 물론 철도노조 지도부는 애써 이런 점을 회피하고 싶어 했지만 말이다.

여러 인터뷰에서 노동자들이 얘기했듯이, 파업 대오의 일부는 “하나의 거점이 필요하다”, “(필수유지업무를 뛰어넘는) 전면 파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런 선진 부위의 목소리에 지도부가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후진 부위를 핑계로 선진 부위를 억누를 게 아니라 말이다.

파업 대오의 집중은 어느 경우에나 힘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고, 이는 시위 조직의 기본이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이를 모를 리 만무하다. 지도부는 애초부터 이번 파업을 발전시킬 의지가 없었던 듯하다. 한번 싸움에 나서면 어떻게든 이기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게 지도부의 책임 있는 자세인데 말이다.

김문성 동지는 “불법 파업 전술을 사용하는 게 관건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지만, 광폭한 탄압 때문에라도 파업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저들이 “법과 원칙”도 없이 몰아붙이는데, 우리 쪽이 필수유지업무제라는 합법 테두리에 손발이 묶여 있어서는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노무현 정부 때 지배자들이 필수유지업무제를 도입한 이유 자체가 파업의 효과를 유명무실하게 만들려는 데 있었다.

물론, 노동자들이 각개로 흩어져 있는 조건에서 불법을 감수할 정도로 각오를 다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명박이 그토록 “불법파업 대처”를 강조했지만, 일부 노동자들이 ‘합법파업’이라는 형식에 안도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애초 나의 평가 글에서 전면 파업과 피켓팅을 구사하지 않았던 점에 대한 비판이 다소 과하게 느껴졌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면 충돌을 회피하지 않고 힘을 집중하는 속에서 전면파업 등을 통해 파업효과를 극대화시켜 나갔어야 한다’는 평가의 기조 자체는 전혀 문제라고 볼 수 없다.

3차 파업까지 선언했는데 굳이 강하게 비판해야 하는가?

“지도부가 또 싸운다고 했는데, 너무 비판만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물론, 나도 3차 파업이 신속히 이뤄지길 바라고, 그렇게 싸우려고 한다면 언제든 지도부를 지지하고 응원할 태세가 돼 있다.

그러나 “현장투쟁에 돌입하자”, “다음 파업을 기약하자”는 말은 불필요한 타협으로 파업을 중단하는 노조 지도부들에게서 언제나 들어 왔던 얘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파업을 철회한 노조가 다시 파업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다.

공격이 계속되고 있고, 정황상 힘을 더 키워 볼 수 있는 시점에서 파업을 접은 지금 그것을 재개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실 “당분간은 노조의 운신의 폭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는 〈프레시안〉의 평가가 현실적인 것 아니겠는가.

더구나 노동자들이 ‘단협 해지’ 같은 더한층의 공격에 맞닥쳐 빠르게 파업을 재개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파업 중단이 그런 투쟁 재개에 도움이 되는 부분은 조금도 없을 것이다.

왜 “박수칠 때” 파업을 접은 지도부에 대해 눈을 감아야 하는가?

철도 파업 평가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왜 노조 지도부가 “박수칠 때” 파업을 접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김문성 동지나 많은 동지들이 이 점에 대해 주목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철도 파업에 관심을 가졌던 진지한 청년들과 노동자들이 ‘대체 왜?’라는 물음을 던져 볼 만한 상황인데 말이다. 그런 물음에 답하는 것이 진지한 활동가의 자세일 것이다.

철도노조 지도부는 이명박에 맞선 투쟁의 상징으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 서둘러 파업을 중단했다. 정면 충돌을 회피하려고 하는 노조 지도부의 보수적 속성,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조직 보존주의, 국가 경제와 법 질서 자체를 흔들어선 안 된다는 개혁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압력이 작용했던 것이다. 이런 노조 상층 간부들의 관료주의가 아니고는 이번 파업을 중단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저쪽의 공격에 맞서 이쪽에서도 반격을 가할 때 변화의 조짐이 생길 수 있다. 이번 파업은 바로 그 조짐의 시작이었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철도노조 지도부는 이 기회를 부여잡지 못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불가피한 타협과 후퇴였는지, 불필요한 타협과 후퇴였는지 구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타협과 후퇴가 패배를 낳았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철도노조 지도부는 ‘패배를 자초한 불필요한 타협과 후퇴’를 선택한 것이다.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과하다’고 주장하는 많은 동지들은 바로 이 지점을 놓치고 있고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판단과 주장을 하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 노조들과 민주노총의 지도자들도 세력 관계에서 우리 편의 힘을 확대할 기회를 놓쳐버리는 데 일조했다. 민주노총이 준비해 온 1만 간부상경 집회를 철도파업에 맞춰 앞당겨 조직하려고 애썼다면, 이명박의 노조 탄압에 맞선 투쟁의 힘을 더 키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무원노조나 발전노조 내부의 일각에서 “철도가 싸울 때 같이 싸웠어야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번 철도파업은 이명박의 ‘선진화’ 정책의 정당성에 흠집을 냈고 여론이 누구의 편인지 똑똑히 보여 줬지만, 아쉽게도 패배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명박이 이긴 것도 아니다.

이번 파업은 노동자 투쟁의 가능성을 보여 줬지만, 노조 지도부의 소심함이 사태를 발전시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음번 항의에서는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날카로운 비판과 평가가 중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