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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속의 섹스》

《동맹속의 섹스》, 캐서린 문, 삼인

2000년 3월, 68세의 기지촌 여성 서정만 씨가 온몸이 멍이 들고 갈비뼈가 모두 부서진 시체로 발견됐다. 당시 상황을 회고한 한 활동가는 “죽음보다 끔찍한 것은 화려하게 매니큐어가 칠해진 그의 긴 손톱”이었다며, “칠십이 다 되어 가도록 매춘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그녀의 삶은 누구의 책임인가” 하고 애통해 했다.

캐서린 문의 《동맹속의 섹스》는 한미행정협정 합동 회의록·미국 국무부 문서·주한 미군의 각종 파일 등을 근거로 서정만 씨와 같은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을 희생시켜 주한 미군, 남한 정부, 지역 기지촌 권력자들이 어떻게 각자의 이익을 도모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저자는 성매매가 캠페인으로 근절할 수 있는 ‘문화’라기보다는 특정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창출되는 결과라고 주장한다. “(매매춘을 필요악이라 간주하는) 문화보다는 … 국가 안보, 경제 발전을 여성의 사회복지 … 보다 우선시하는 남한 정부의 우선 순위가 매매춘과 관련한 정책들을 결정했다.”

1백만 명의 한국 여성들은 전후 빈곤 때문에 미군에게 성을 팔았다. 서울에 사는 18세∼40세 여성의 60퍼센트가 실업 상태이던 1965년, 용산 미8군을 대상으로 성을 판 여성 1백5명 모두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다. 이들은 부모의 치료비나 형제의 교육비가 절실했다. “그들에게 기지촌은 생계를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1971년 출범한 ‘기지촌정화위원회’는 그들의 성매매를 ‘민간외교관’의 ‘애국적 서비스’라 부르며, 더욱 ‘청결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인종 문제와 성병 증가 때문에 출범하게 된 ‘기지촌정화위원회’는 ‘미군이 주둔하기에 안전한 한국’을 증명하기 위해 성매매 여성들을 ‘정화’했다.

저자는 닉슨 독트린(1969년,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에게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선언)이 실현돼 미군이 축소될 것을 두려워 한 남한 정부가 기지촌 여성들의 통제를 강화했음을 밝힌다. 박정희는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며 안보의 위험을 강조했지만, “국가안보가 위기 상태에 있다고 강조하게 된 것은 바로 자신의 정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저자가 “인터뷰한 (기지촌) 여성들 모두 정부에게 가장 절실히 바라는 것은 ‘북한의 위협’에 대한 보호가 아니라 클럽 업주, 지역 한국 경찰 … 미군 기지의 착취와 학대로부터의 보호라고 말했다.” 당시 경찰은 매춘에서 벗어나려고 달아난 여성을 감금하곤 업주에게 연락해 ‘되돌려주었다.’

주한 미군과 한국 정부가 성매매 여성들을 어떻게 희생시켜 왔는지에 대한 저자의 폭로는 생생하다. 그러나 저자의 폭로는 일관되지 않다. 저자는 박정희가 당시 “(최소한) 어린 소녀들을 매매춘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진정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박정희가 직접 깊숙이 개입했던 시기에도, 등록된 여성 3만 6천9백24명 중 7천6백69명이 15∼19세의 소녀들이었다. 게다가 성매매의 원인인 저임금·가난에 맞서 싸우는 여성 노동자들을 잔혹하게 탄압한 자가 바로 박정희다.

“한때 극렬한 좌파적 시각으로 비판받던 반미주의가 지금 한국 운동의 주류가 아닌가 우려된다”(〈주간한국〉, 2001년 5월 15일치) 하고 말한 저자 캐서린 문은 주한 미군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듯하다. 그는 주한 미군이 “남한의 안보와 경제적 번영을 방위하고 증진시키는 문제를 타협할 수 없는 우선 순위로 여겼”으며, “한국인들을 많이 좋아하고 존경”해서 한국 주둔을 유지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수만 건의 미군 범죄마다 한국인들의 피해를 일관되게 무시한 주체는 주한 미군이다.

올해 한국 정부가 부담한 주한 미군 분담금은 4억 4천만 달러(약 5천7백억 원)이다. 이 돈이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복지 기금으로 쓰이면 서정만 씨와 같은 불행한 사건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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