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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파업은 패배했는가?

조흥은행 파업은 패배했는가?

최일붕

조흥은행 노동자들은 신한은행으로 매각·합병에 반대해, 독자 생존을 요구하며 나흘 동안 연좌(점거) 파업을 감행했다.

작업장 점거는 전투성을 자부하는 일부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도 몇 년 전부터는 기피해 온 방법이다. 하지만 경제 침체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사용자들과 정부가 귀기울이게 만드는 방법은 직장 점거밖에 없다.

이 파업은 노동자들이 마지막에 투표를 통해 파업 지속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한결같이 결속을 유지했다. 정부와 상급단체 노조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가해 온 압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합의안을 전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치는 등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지킨 덕택이었다.

이 투쟁을 ‘다함께’와 전교조, 민주노동당, 일부 학생 단체만이 행동으로 지지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투쟁이 고용을 지키기 위한 많은 투쟁 중 하나일 뿐이라며 그 의의를 평가절하했다. 그들과 기타 일부 사람들은 은행 노동자들의 낮은 계급 의식을 이유로 들었다.

어떤 투쟁의 참가자 다수가 ‘정부의 경제 정책에까지 시야가 미치지 못하고 자기 일자리 지키기에 급급’할지라도 참가자의 의식을 투쟁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주된 잣대로 삼는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정세 분석을 위한 출발점이 아니다. 투쟁의 정치적 중요성은 그것의 효과와 정치적 파장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조지 W 부시 정부의 압력을 받아들여 사실상의 국유 은행인 조흥은행을 사유화(“민영화”)하기 위해 신한은행에 매각·합병시키겠다는 방침이었다. 이 방침은 신자유주의적 금융 “구조조정” 정책의 일환이다.

IMF

비록 조흥은행 노동자들이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 자체에 반대하지 않았다 해도 정부와 전체 고용주 계급과 미국 정부와 자본가들, IMF, 그리고 〈조·중·동〉 등이 조흥은행 노동자들과 적대적 위치에서 마주하고 있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반면에, 금융산업노조 조흥은행 지부의 파업 동안 다른 산업의 노조들은 잠시 제쳐 두더라도 금융노조의 다른 지부들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조흥은행이 순탄하게 매각·합병된다면 남은 은행들(외환·제일·한미)도 은행 대형화를 위한 합병을 더 쉽게 당할 것이었다.

이런 압도적으로 불리한 힘의 열세 속에서 조흥은행 노동자들만의 힘으로 매각 철회를 관철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매우 어려웠다.

금융노조 조흥은행 지부의 점거 파업이 “패배”로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구체적인 세력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조흥은행 매각·합병이 국내외 자본가들과 정부들의 정책적 관심사인 상황에서 ‘매각 반대’나 ‘합병 반대’ 또는 ‘독자 생존’ 같은 경제적 요구는 순전한 경제적 요구가 아니라 정치적인 경제적 요구이고 그 투쟁도 정치적인 경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투쟁에서 조흥은행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 부문들의 실질적 연대 없이 단신으로 저항했다.

조흥 파업 패배론자들은 만일 노동자들이 합의안을 거부하고 점거를 더 연장하기로 했다면 매각 철회를 얻어 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우익이 노무현이 지나치게 노동자들에게 양보한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마당에 ― 민주당 신주류 소속 의원 김경재는 “과거 같으면 쿠데타가 일어나도 몇 번은 일어났을 것”이라는 우익측의 견해도 전한다 ― 그런 시나리오는 그다지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물론 점거를 더 연장했다면 정부가 곧 경찰력을 투입했다 해도 그것은 조흥은행 노동자들과 그 밖의 다른 모든 노동자들의 조직과 의식을 발전시키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특히 노무현의 본질이 더할 나위 없이 밝히 드러났을 터였다.

그러므로 합의안이 거부되고 점거가 다만 몇 시간이라도 연장됐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이 아쉬움을 과장해 “패배”라고까지 주장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중산층”?

첫째, 조흥은행 노동자들은 합병을 3년 뒤로 연기시켰다. 그 때까지는 독자 생존이 보장됐다.

둘째, 합병 때까지 3년 간 고용 보장을 약속받았다.

셋째, 합병 때까지 신한금융지주 임금 수준까지 임금 인상을 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조흥은행 노동자들은 합의 사항 이상의 성과를 이룩했다. 그들은 무엇보다 앞으로도 계속 저항을 해 나아갈 수 있는 수단으로서 갱신된 노조 조직, 자존심, 투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 등을 얻었다. 노무현에 대한 환상도 깨졌다. ‘다함께’ 같은 급진 좌파에 대해서도 전처럼 경원시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사용자들은 이제 더는 그들을 과거의 “중산층”으로 여길 수 없다. 그들의 눈치를 보고 때로 그들과 의논해야 한다. 이것은 계급 투쟁에서 전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음을 뜻한다.

요컨대 조흥은행 연좌 파업은 완승은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으나 선방이었고, 구체적인 계급 세력 관계를 고려한다면 부분적인 승리였다. 물론 경제 침체기의 모든 투쟁이 그렇듯이 이 승리도 잠정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조흥 노동자들은 이를 디딤돌 삼아 전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