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금지 논란- 어떻게 봐야하는가?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 라는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3월 7일 서울 중구구민회관에서 ‘다함께’가 주최하는 3·8 여성의 날 기념 토론회 ‘낙태금지 논란, 어떻게 봐야 하는가’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약 2백 명이 참가했다. 

연사로 나선 한국여성의전화 란희 인권정책국장과 정진희 다함께 활동가는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주최측은 토론 시작 전에 낙태 문제를 다룬 유명한 영화 〈더 월〉을 일부 상영했다. 미국에서 낙태가 불법이었던 시대에 무허가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이 피 흘리며 신음하는 장면은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진희 다함께 활동가

 정진희 다함께 활동가는 현재 모자보건법은 무척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데 “여성이 원하면 이유가 어떻든 낙태를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가 무상 시술을 제공하고 여성 노동자들이 낙태 시술 후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 금지가 특히 노동계급 여성에게 큰 위협이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 활동가는 낙태반대운동 진영이 내세우는 여러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생명권’ 논리가 대표적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7만 명이 불법 낙태 시술을 받다가 목숨을 잃는다. 정 활동가는 여성들을 이렇게 위험한 불법 시술로 내몰 낙태근절캠페인이 ‘생명권’을 거론하는 것은 “속임수”라고 지적했다. 

또, 우익이 한국 사회를 더 보수화시키고 여성을 경제 위기의 속죄양 삼으려는 공격의 발판으로 낙태 문제를 활용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도 낙태 처벌 반대 주장에 공감하며 발표를 했다. 

란희 국장은 “애들을 낳아서 청와대 앞에 갖다 놓으면 키워 주냐”며, 정부가 내놓은 낙태 방지 대책을 어이없는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또, 수십년 전에는 일요일이면 골목골목 차가 돌며 ‘무료 임신중절수술을 하니 나오라, 아파트 분양권을 준다’고 광고했는데 지금은 넷째 아이 낳으면 아파트 분양권을 준다고 하는데, 이는 여성을 “임신 가능한 신체”로만 취급되는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 

한국여성의전화에는 성폭력 상담이 많이 들어오는데, 이전과 달리 성폭력으로 임신을 해도 산부인과들이 ‘고소장을 갖고 오라’며 낙태 시술을 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란희 국장은 제도를 바꾼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며 “일상생활까지 바꿀 수 있는 운동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사들의 발표가 끝나고 주최측은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에게 특별 발언을 청했다. 

현직 의사인 우석균 실장은 “당연히 낙태를 합법화하고 건강보험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 실장은 낙태를 합법화하면 낙태가 늘어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프로라이프의사회 소속 의사 심상덕이 정부가 산전 진찰에 보험을 적용하려 할 때 크게 반발한 과거를 소개하며 “[그가] 생명권 운운하는 건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청중이 참가하는 자유토론 시간에는 10여 명이 나와 질문하고 주장을 펼치며 토론시간을 꽉 채웠다. 이들은 대체로 낙태 선택권 보장을 지지하는 의견을 밝혔다. 

공무원 노동자인 한 중년 남성은 “수도꼭지처럼 틀면 아이가 나오는 것처럼 사람을 도구로 생각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한 남성 대학생은 우파들이 낙태 권리를 공격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질문했다. 이에 다함께 최미진 활동가는 낙태 처벌 시도가 경제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기도 하다며 여성에게 집에서 애를 낳고 돌보는 데 헌신하도록 강요하고 이런 주장을 우익이 결집할 발판으로 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또 “미국 크리스챤 중 우익들은 낙태 시술 의사를 총으로 죽이는 테러를 하기도 하지만,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여성들이 안전한 낙태를 할 수 있게 도왔다”면서 낙태가 추상적 도덕?종교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5월에 딸을 낳는 예비 엄마라는 한 여성은 ‘출산 강국 코리아’라는 공익광고가 출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 엄청난 욕을 먹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출산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인데, “낳으려는 여성의 선택과 낳지 않으려는 여성의 선택을 모두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 활동가라는 한 간호사는 병원 노동자들은 임신 계획도 조절하라는 주문을 받는다며, “임신하면 축복이 아니라 동료 노동자에게 짐이 되는” 현실을 전했다. 이 여성은 여성들이 죄책감 없이 낙태 유급 휴가를 쓸 수 있도록, 조직 노동자들이 공세적·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원에서 의료 윤리를 공부한다는 한 의사는 낙태 문제가 미국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주요 기준이 된다며, 여성의 자기 결정은 중요한 정치 문제라고 말했다. 

최일붕 다함께 운영위원은 서구 우파는 30년 동안 낙태 문제를 핵심 의제로 내세워 ‘대장정’을 했다며 한국 우파도 이 문제를 길게 물고 늘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미국 주류 페미니스트들이 민주당에 의존하다 낙태권 옹호를 포기한 사례를 들며, 아래로부터 운동으로 낙태권을 옹호하는 ‘대장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 발언 시간에 란희 국장은 낙태 시술 후 자살을 시도한 한 여성을 사례로 들어 ‘여성이 혼자 다 책임져야 하는 현실’을 설명했다.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인데도 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가혹하고 끔찍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진희 활동가는 제도적 개선은 일상의 성 관념을 바꾸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며 란희 국장의 의견에 공감을 표했고 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중적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정부가 단지 여성의 권리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 공격, 대량해고를 자행하고 교육권도 공격하는데, 우리 투쟁이 이런 공격들에 맞선 투쟁의 일부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고 강조했다.  

사회자는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이 낙태반대운동 때문에 절박한 심정을 느끼는 상황에서 여성운동과 진보운동이 낙태반대운동에 맞서 운동을 벌이는 것이 무척 다행이라고 평가했고, 토론회 참가자들에게도 낙태 단속·처벌 반대 운동에 함께해 달라고 당부하며 토론회를 마쳤다. 

한국에서 낙태 선택권을 옹호하는 진영이 낙태 문제를 이렇게 공개적인 대중 토론에 부치는 것은 거의 처음이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낙태반대운동 때문에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이때, 많은 사람들이 낙태 선택권에 지지를 보내며 의견을 모은 것은 무척 뜻 깊은 일이다. 

 

7일 오후 3시에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2백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여성의 임신, 출산, 낙태권에 대해 열띈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회에는 활동가들 뿐만 아니라 청소년, 대학생들도 많이 참여하여 낙태논란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토론회 참가자들의 소감

이날 토론회에는 대학생 참가자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대학 언론사도 몇 군데 취재를 하러 왔다. 

한국외대에 다닌다는 09학번 여학생 이나래 씨는 “이전에도 낙태 선택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좀더 구체적으로 배우게 됐다”며 주최 단체에서 발간한 여성 문제 관련 소책자도 샀다고 했다.

이나래 씨와 같이 온 09학번 남학생 김기정 씨는 “왜 낙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궁금했는데, 사회 분위기를 이끄는 한 수단으로 삼는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미국에서는 낙태 문제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키워드라는 걸 알게 됐는데, 개인 의지에 달린 문제를 정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밤에는 학교에 다니고 낮에는 직장에 다닌다는 한 임철희(23·남) 씨는 “크리스천이지만 낙태 합법화에 공감이 간다”고 했다. “낙태 문제를 평소 깊이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더 월〉 영상을 보며 마음이 아팠고, 정부 정책이 여성의 의견은 빠진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가장 와 닿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