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이 아버님이세요? ○○이 담임이에요. 급식 지원 때문에 보내신 서류는 잘 받았습니다. 행정실에 접수했더니, 이혼한 것만으로는 지원이 안 된답니다. 이혼한 가정이 하도 많아서요. 의료보험 증명서를 발급해서 보내 주셔요. 어쩌면 선정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죄송해요.”

 담임을 맡고 있는 옆 자리 선생님은 같은 내용의 통화를 세 번 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급식 지원을 받을 학생이 누구인지 조사하려고 이런 통화를 한다.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한 초등학교 급식소 모든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해야 한다.

교사는 가정환경조사서를 바탕으로 한부모 가정이나 조부모 가정 등에 전화를 하고, 서류를 제출하도록 한다. 그런데 담임이 추천하는 학생들이 모두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지원받을 자격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 학급의 3분의 2가 모두 급식을 지원받아야 하는 상황인데도 3~5명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담임들은 누구를 선정해야 할지 고민한다. 매달 말, 학기말이나 학년말이 되면 급식비를 내지 않은 아이들은 급식비를 내라는 독촉을 받는다. 이것을 전달하는 교사도 전달받은 아이도 한숨이 나온다. 

지역이 낙후한 곳에 있는 어느 학교에서는 퇴임을 앞둔 교장이 아이들이 밥이라도 잘 먹어야 한다며 이 조건을 어기고 굶주리는 모든 학생들에게 급식비를 지원했다가 감사에 걸려 징계를 받을 뻔했다고 한다. 

굶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게 한 게 감사에 걸리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몇 년 전 내가 가르친 한 학생은 아버지가 암으로 오랜 투병을 하는 중이라 가정 형편이 몹시 어려웠다. 엄마가 대신 생계를 해결하고 있었다. 

급식비를 지원해 주고, 방과후학교도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 학생의 어머니는 아이가 지원받는 사실을 알면 상처 받을 거라며 지원 사실을 학생에게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가난한 아이로 선별돼 낙인 찍히는 게 좋을 아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대학 시절까지 가난하다는 것을 친구들이 알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때는 대부분이 어렵게 살았는데도 말이다. 

요즘은 모든 아이들이 잘사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그 아이의 가난이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자신을 그 세계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일이 된다. 한참 예민한 아이들은 이것을 감당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빨갱이’

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을 한다’는 정책을 내세우는 후보들이 많아진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무상급식을 주장한 민주노동당이나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을 ‘빨갱이’로 부른 일을 생각하면 발전이다. 

그런데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아직도 무지몽매에 빠져 있다. 그들은 ‘부잣집 아이들만 득을 본다’는 이유로 무상급식에 반대한다. 이는 ‘눈 감고 아웅 하는 꼴’이다. 

정작 부자들이 득을 보는 정책은 1백 조 원에 가까운 부자 감세와 기업에 주는 온갖 혜택이다. 

무상급식으로 득을 볼 부자들은 몇 명 안 된다. 더구나 그 득은 몇 푼 되지도 않는다. 

대통령이여! 진정 부자들이 혜택을 입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 그들을 위해 펼친 모든 정책들을 거두어들여라. 그리고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라. ‘국가를 위해 군대에 가라’, ‘허리띠 졸라매라’, ‘세금 좀더 내라’ 요구하지 말고, 서민들을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좀 생각하고 실천해라. 

4대강만 집어치워도, 파병만 하지 않아도 모든 학생에게 무상급식은 가능하지 않은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혜택을 주고 싶다면 그들을 가난하게 만든 모든 정책을 바꿔야 한다. 가난의 원인이 그들의 게으름에 있지 않고, 부자들을 위한 정책과 사회구조 때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