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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타이어:
노조 지도부의 배신 이후 투쟁 과제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이 노조 지도부의 ‘고통 전담’ 합의에 울분을 토하고 있다.

“지금 현장은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원성이 자자합니다.”

“이번 합의는 한마디로 노예 계약서입니다!”

합의안은 연간 1천7백여 만 원에 이르는 임금·상여금 삭감, 5백97개 직무 도급화 등 대폭적인 양보를 담았다. 1백93명 정리해고는 워크아웃 이후로 ‘유보’됐을 뿐이고, 회사에 잘못 보이면 언제든 잘릴 수 있게 됐다.

‘고통전가’를 합의한 금호타이어 사측과 노조 지도부

더구나 지도부는 ‘노조 동의서’도 제출키로 했다. 채권단의 요구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항복 문서’에 스스로 족쇄를 찬 것이다!

따라서 〈레프트21〉이 인쇄에 들어가는 지금 진행하는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금호타이어 노조 지도부의 배신적 합의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고광석 지도부는 워크아웃 기업에서 양보 말고는 무슨 대안이 있냐고 조합원들을 몰아붙여 왔다. 그러나 양보와 투쟁 회피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는 최악의 카드다.

1999년 대우차 워크아웃 당시에도 노조 지도부가 양보 교섭에 매달렸지만, 채권단은 결국 눈 하나 깜짝 않고 1천7백50명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진정한 대안은 양보가 아니라, ‘공기업화’를 통해 정부가 일자리를 책임지라고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다.

투쟁의 대안

사측과 채권단은 이번 합의안이 부결되면 아웃소싱 대상자를 포함해 1천2백여 명의 고용이 위태로워진다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래서 적잖은 노동자들이 북받치는 분노에도 부결 투표를 주저하고 있다. 이번 합의가 금세 끊어질 썩은 동아줄이라는 점을 노동자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해고 대상자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닐 거예요. 목에 칼을 들이대고 언제 죽일지 시간만 재고 있는 거 아닙니까.”

“3년이 될지 5년이 될지 모르는 워크아웃 기간 동안 해고는 계속 시도될 것입니다. 내년에는 1천5백 명을 해고하겠다고 나올지도 모르죠.”

하지만 노동자들은 ‘부결 이후엔 방법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해고냐 양보냐’ 하는 두가지 악을 모두 거부하고 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 지도부를 뛰어넘는 독립적인 투쟁의 대안이 보이지 않은 탓이다.

그런 점에서, 금호타이어정리해고철폐투쟁위원회(이하 금해투), 현장 공동대책위원회, 민주노동자회 등의 지도부에게 아쉬움이 크다. 이들은 옳게도 양보 교섭을 비판하며 협상안 부결을 주장했지만, 노조 지도부로부터 독립적인 행동을 조직하지는 않았다.

3월 27일 금호타이어 노조가 간부파업에 돌입하고 지역 노동자들과 결의대회를 개최했을 때, 금해투 지도부는 회원들을 동원하지 않았다. 이날 집회에선 양보에 얽매이지 말고 투쟁을 밀어붙이자고 호소하는 세력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광주지역의 쌍용차노조 활동가는 그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금해투나 공대위가 확실히 투쟁을 조직할 생각이 있다면, 오늘같은 집회에 조합원들을 동원했어야죠. 독자적인 깃발도 만들어 갖고 나왔어야 합니다. 가대위도 조직해서 플래카드랑 팻말도 갖고 나와, 싸울 수 있다는 분위기와 활력을 만들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특히, 노조 지도부가 파업을 선언해 놓고도 양보 교섭에 매달리던 4월 1일은 중요한 순간이었다. 금해투 지도부는 노조 지도부가 끝내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싸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줬어야 했다.

그러나 금해투 지도부는 독자적인 행동을 조직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노조 지도부의 교섭만 지켜보고 있었다. 중요한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교활하게도 노조 지도부는 이런 약점을 파고들었다. 노조 지도부는 4월 6일 발표한 대자보에서 “행동하지 못하고 말로만 하는 비겁함이라면 침묵해야 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잠정 합의안 찬반투표를 앞둔 지금, 노동자들은 노조 지도부의 잠정 합의안을 거부하자니 1백93명 해고문제가 걸리고, 찬성하자니 굴욕적 양보를 인정하게 되는 잘못된 딜레마에 빠졌다.

일차적인 책임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노조 지도부에게 있다. 그러나 투쟁을 조직할 때를 놓친 금해투 지도부에게도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노조 지도부가 배신적 합의를 한 지금, “부글부글 끓고” 있는 현장의 불만을 조직할 책임이 이제 금해투 지도부에게 있다.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합의안이 부결되면, 금해투는 머뭇거리지 말고 즉시 실질적인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합의안이 가결되면 상황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사측과 채권단의 공격은 계속될 것이므로, 이에 맞서 투쟁을 건설하해야 한다.

금해투 지도부가 혹여 차기 선거에서 노조 지도권만 바라보고 당장의 과제에 소홀하면, 조합들의 불신과 실망을 사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