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독자편지 급식비 못 내던 아이를 떠올리며:
어느 초등학교 행정실장의 눈물

[유범현 독자가 교육행정사이트 upow.org에서 한 초등학교 행정실장이 쓴 글을 글쓴이의 양해를 얻어 보내 왔다.]

여러분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울어보신 적 있나요?

보통은 신규때 막막한 업무 때문에, 혹은 상사로부터 꾸중을 듣고 서러워서 울어보셨을꺼라 생각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진급을 해서 기뻤다거나 친하게 지냈던 누군가가 전근을 갔을 때 정도겠지요.

하지만 저는 위의 경우와는 달리 한 여자아이 때문에 울어본 적이 있어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2008년 9월.

저는 고향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로 발령이 났습니다.

전임자로부터 이런저런 업무 인수인계를 받았는데, 수익자부담경비과목에서 다행히도 미납자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두명의 자매가 3월부터 7월까지 급식비가 장기미납돼 있었습니다.

일을 쌓아 놨다가 나중에 한번에 처리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저는 우선적으로 급식비 미납부터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처음엔 납부를 재촉하는 안내장을 보냈는데,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동명부를 보고 그 학생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없는 번호라고 뜰 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매 중 언니를 행정실로 불러 엄마한테 학교로 전화 좀 해달라고 하면서 독촉장를 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어느정도 예상했지만 행정실로 어떠한 전화도 오지 않았습니다.

일단 10월 중에 종합감사 및 체육관 준공식 등 시급한 행사가 많아 어쩔 수 없이 미납급식비를 해결하는 건 잠시 미루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정이 생겨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게 됐는데 텅빈 버스 안에서 그 자매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집안이 어려운 탓에 어렸을 때부터 받은 상처로 표정이 어둡고 무뚝뚝한 5학년 언니와는 달리, 3학년 동생은 참 표정이 밝고 인사성도 좋았습니다. 텅빈 시골의 마을버스 안에서 맨 뒷자석에 앉아 있는 저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그냥 가볍게 해도 될것을 굳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고사리손으로 좌석손잡이를 꼭 잡은 채로 인사를 했습니다.

언니는 급식비 때문인지 몰라도 한결같이 저를 많이 경계하고 피했습니다.

매일 같이 출근을 하다 보니 동생이랑은 많이 친해졌습니다. 녀석은 학교직원이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는게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많이 물어 보았고 버스를 안 탄 날에는 그 다음날 왜 어제 안 탔냐고 묻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한달이 흘러 학교의 큰 행사가 다 마무리되고 이제 다시 급식비를 걷어야 할 차례였습니다.

전 이번에는 무뚝뚝한 언니 대신 동생을 행정실로 불렀습니다. 무조건 모른다고 발뺌하는 언니와는 달리 동생은 진짜 집 전화번호를 알려줄 것 같았습니다.

집 전화번호를 적어달라는 내 말에 천진난만했던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지며 종이에 전화번호를 힘 없이 한자한자 적기 시작했습니다. 왠지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행정실장이란 자리는 공과 사를 구별해야 하는 직위였습니다.

자매가 4월 초에 전학을 오게 된 탓에 3월 중에 선정하는 저소득층 급식지원자에 포함이 안되어서 급식비 징수대상에 포함되었던 것인데 내년부터는 당연히 지원대상에 포함될테니 어떻게든 올해 미납분은 해결해야 했습니다.

동생을 교실로 보내고 저는 적힌 전화번호를 보았습니다. 아동명부에 적힌 번호랑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긴장을 한 채 수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를 눌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없는 국번이라는 안내멘트가 나왔습니다. 순간 저는 ‘이 녀석도 나를 속이고 있구나’ 하는 짜증이 솟구쳤습니다. 가끔 과자를 사 먹는것도 봤는데 어머니한테 급식비를 받고 엉뚱한 데 쓰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왜 우리학교로 전학을 와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지 원망도 했고 심지어는 내가 교사가 아니라 행정실직원이라 우습게 보는건가 하는 자격지심도 생겼습니다.

전 일단 담당선생님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담임은 꽤 엄격하신 남자선생님이어서 학교에서 아이들이 유일하게 겁을 먹는 분이었습니다. 제 얘기를 다 들은 선생님은 원래 그 아이가 거짓말도 잘하고 문제가 많다면서 자기가 확실히 캐물어 준다고 했습니다.

그날 점심시간.

식사를 하고 일어서는 도중에 3학년 급식자리에서 선생님 앞에 홀로 서있는 녀석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들 앉아서 밥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녀석만은 홀로 서서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습니다. 호되게 꾸중을 들었던 탓인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글씨를 쓰는 손은 많이 떨었습니다. 선생님은 다 쓴 종이를 내게 주면서 이 번호는 확실할 꺼라고 말했습니다. 전 행정실로 오면서 역시 애들은 잘해주는 것보다는 윽박질러야 말을 잘 듣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하기 위해 수화기를 들고 접힌 종이를 폈을때 이번에는 제 손이 떨렸습니다.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고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전화번호는 아까 녀석이 적어준 번호랑 똑같았습니다.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히 같은 소재 면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는 집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그 아이가 사는 아파트 이름을 알려주면서 뭐 아는거 있냐고 물었습니다.

말이 아파트이지 무허가 건축물인데다가 주민 대부분이 신용불량자거나 빚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전기나 전화가 끊기는 게 예사인 곳이라고 집사람은 대답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뭔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녀석은 저를 속이려고 그랬던 것도 아니고, 행정실 직원이라서 만만히 본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전화번호를 있는 그대로 저에게 알려준 거뿐이었습니다. 집 전화번호가 연체로 끊겼든 안 끊겼든 그냥 알고 있는 그대로말입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제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깟 급식비 하나 때문에 저는 한 아이를 의심했고 원망했으며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준 것입니다.

저의 경솔한 행동으로 집 형편이 어려워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녀석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그녀석은 감추고 싶은 집전화번호를 하루에 두 번이나 적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행정실에 들락날락 하는 사람들 때문에 태연한 척 일을 하려고 했지만 점심 때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삐쩍마른 손으로 전화번호를 적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한방울 한방울 떨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퇴근할 때까지 두 시간을 학교운동장 한켠의 벤치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11월의 가을 바람은 꽤 찼지만 제 마음만큼 차갑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