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 사이 타이에서는 ‘붉은 셔츠’ 시위대 수십만 명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거리 시위는 붉은 셔츠 운동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 줬다.

붉은 셔츠 운동이 인구 대다수를 대변하지 않는다던 왕당파 정부와 언론의 주장도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4월 14일 방콕 시내를 점거한 붉은 셔츠

경찰과 군대는 이 운동을 공격해 왔다. 지난 주말 타이 수도인 방콕에서는 시위대와 국가 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월요일(4월 12일) 오전까지 시위자 17명과 경찰관 네 명이 사망했다.

붉은 셔츠는 3월 중순 이래 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하며 방콕에서 평화로운 시위를 벌여왔다.

타이에서는 2006년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로 백만장자이자 포퓰리스트 정치인인 탁신 치나왓 총리가 축출됐다.

좌파의 공백 때문에 탁신은 수많은 평범한 타이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붉은 셔츠도 탁신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이 단지 탁신에게 이용당하고 있거나 탁신의 복귀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붉은 셔츠는 진정한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바라고 있다.

탁신과 그의 우익 정적들은 자본가들의 지배 체제를 유지하는 데 왕정을 이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모두 왕당파들이다.

탁신과 왕당파 우익 중 어느 누구도 자기들 사이의 갈등이 계급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타이의 대중적 민주주의 운동은 왕정까지 포함해서 엘리트들의 지배 구조 전체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붉은 셔츠 시위대는 전국 주요 도시에서 도로를 점거했고 이들을 해산시키려는 정부의 시도를 물리쳤다.

정부는 지난주 목요일에 붉은 셔츠에 친화적인 언론 매체를 폐쇄했다가 항의 시위에 밀려 폐쇄 조처를 철회해야 했다.

“계급 투쟁”

월요일 오전에는 시위대가 경찰과 군대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관을 메고 거리를 행진했다.

많은 관들이 비어 있었지만 적어도 두 개에는 실제로 시신이 담겨 있었다.

시위대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자투폰 프롬판은 이렇게 말했다: “더는 협상은 없습니다. 붉은 셔츠는 살인자들과 절대 협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앞길이 험난하고 넘어야 할 산이 많겠지만, 이 나라에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만이 우리의 사명이자 먼저 간 사람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운동 지도부가 이 엄청난 분노의 표출을 어떻게 군대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의 힘으로 전환해 낼지는 미지수다.

압도 다수가 가난한 사람들인 붉은 셔츠 운동의 지도자들은 마침내 민중과 지배 엘리트 사이의 “계급 투쟁”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아직 군부와 왕정을 상대로 전면적인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펼칠 준비는 안 돼 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도시 노동계급과 군 사병들을 선동하면서 혁명의 동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어떠한 타협도 그동안 민주주의를 가로막아 온 왕당파 엘리트들의 수중에 권력을 남겨 두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2006년 쿠데타 이후 가장 심각한 정치 위기이자 격변이다.

많은 논자들은 이번 사태가 단지 엘리트 층의 내분(탁신과 보수파 사이의)인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타이 정세에 관한 대부분의 분석에서 빠져 있는 요소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행동이다.

탁신은 타이 최초의 전국민 의료보장 체계를 도입하는 등의 친서민 정책으로 노동자·농민과 동맹을 구축했다.

군부의 지지를 받는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의 민주당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붉은 셔츠 지도자들에 대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정부는 또한 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넷 언론, 위성 TV, 웹사이트 등을 폐쇄하려고도 했다.

이러한 역동적 사태 전개에 붉은 셔츠 운동과 타이 지배계급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타이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자일스 자이 웅파콘은 타이 사회주의자이며, 2006년 쿠데타를 옹호한 타이 국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왕모독죄로 기소된 후 영국으로 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