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낙태 반대론자들이 낙태 공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낙태 시술 병원 고발 후 주류 종교계와 보수단체들을 등에 업고 반낙태 집회를 개최했고, 검찰은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고발한 병원 관계자를 구속했다. 

우파의 낙태 공격으로 낙태 비용이 치솟았다. 이 때문에 수개월치 월급과 맞먹는 엄청난 낙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여성노동자와 경제적 능력이 없는 10대 청소년 들이 큰 곤경에 처해 있다.

3월 5일 낙태단속 반대 행동 우파의 낙태 공격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려면 운동 건설을 위한 협력적 태도가 필요하다.

우파들은 경제·정치 위기 속에서 앞으로도 낙태 공격을 강화하며 우파의 결집점으로 삼을 것이다. 따라서 낙태권 공격에 반대하는 운동에 더 많은 사람들의 동참이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노동자의 참가가 매우 중요하다. 낙태는 계급 문제다. 부자 여성들과 노동계급 여성들은 낙태 문제에서도 평등하지 않다. 미국에서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에 낙태로 목숨을 잃거나 영구적인 자궁손상을 입은 여성들 중에 부자 여성은 없었다. 

지금도 한국의 부자 여성들은 얼마든지 비싼 돈을 들여 안전한 낙태 시술을 받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반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는 치솟은 낙태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낙태로 여성들이 공격받고 보수적 분위기가 강화되면 노동계급 운동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장기전

지난 두 달여 동안 여성·진보단체들은 낙태 공격에 대응해 왔다.   

3월 5일 낙태 단속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최근 낙태 시술 병원 관계자 구속에 반대하는 성명 발표에 이르기까지 진보적 여성운동진영은 낙태 단속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 왔다.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를 결성한 것도 낙태 단속에 반대하는 운동의 구심점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네트워크에 참가한 여성단체 내에는 낙태 공격에 반대하면서도 ‘프로라이프 의사회 vs 여성단체’의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탐탁치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에 ‘대응하면 오히려 키워 줄 뿐’이므로 무시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래서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반낙태 집회를 비판하는 성명서 발표에는 네트워크 내 일부 단체들만 참가했다. 

그러나 네트워크가 결성된 동기 자체가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고발이었다. 이 때문에 여성단체들도 원했든 원치 않았든 실제 프로라이프 의사회에 반대하는 활동에 참여해 왔던 것 아닌가.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일각의 주장처럼 ‘금방 치고 빠질 단체’가 아니다. 우파의 낙태권 공격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 운동이 거둔 성과물을 도로 회수해 가려는 반동적 시도들(이명박 정부의 시대적 소명이기도 하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낙태권 찬반 문제는 장기전이 될 공산이 크다. 여성운동은 낙태 반대론자들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한다.

낙태단속에 반대하는 여러 활동들이 필요하다. 여성단체들이 집중하고 있는 낙태사례수집은 낙태 현실을 정확히 알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한국여성민우회가 계획한 인권위원회 진정도 낙태단속 반대 운동의 새로운 초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 행동

이와 더불어 대중 행동을 조직하려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도 고소·고발뿐 아니라, (아직은 옥내이긴 하지만) 집회까지 열며 실질적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 측도 이에 대당하는 행동을 준비해야 한다. 또, 대규모 행동은 커다란 교육 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낙태권 옹호 운동이 대중 행동으로 분출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낙태  단속 반대 행동을 건설하기 위해 꾸준히 선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선전 활동은 대중 행동을 조직한다는 전망 속에 배치돼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네트워크에 참가하고 있는 NGO 활동가들은 대체로 대중 행동  건설에 소극적이다. 여기에는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것과 더불어 국회에서 곧 낙태법 개정안이 논의될 것이라는 기대도 작용한 듯하다.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은 얼마 전 모자모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안은 낙태 허용 사유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되, 임신 12주 이내일 경우에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낙태 수술 전에 상담 절차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것은 현행법보다는 허용사유를 늘리는 안이지만, 낙태단속 반대 운동이 지지할 수는 없는 안이다. 대통령령을 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한이 따를 수 있고, 허용 범위 밖의 낙태는 여전히 금지하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우파들이 낙태 반대 캠페인을 맹렬히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안마저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여성들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법 개정을 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운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예컨대 영국에서 좌파와 페미니스트들은 함께 낙태권 옹호 운동을 건설했고, 그 결과 두 차례나 우파들의 낙태권 공격 시도를 저지할 수 있었다. 1979년 영국노동조합총연맹(TUC)이 조직한 8만 시위는 낙태허용기간을 축소하려는 우파의 시도를 성공적으로 좌절시켰다.

반면,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주류 페미니스트들이 대중 운동과 거리를 두고 민주당에 의존하면서 낙태권 운동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 클린턴 집권기에 낙태권이 후퇴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협력적 태도

한편, 최근 네트워크 회의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가부장제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 단체와 함께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은 운동을 확대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은 태도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네트워크가 “느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렇게 이론 통일까지 요구하는 것은 느슨함과는 거리가 멀다. 

또, 특정 이론을 지지해야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운동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의 폭이 매우 제한될 것이다. 

몇몇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네트워크 회의에서 ‘그동안 여성운동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좌파들이 왜 낙태 문제에는 적극적이냐’며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했는데, 이것도 단결에 이롭지 않은 태도다. 

좌파가 모두 여성운동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도 부당하지만, 설령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단체들이 있더라도 이렇게 ‘과거’를 문제 삼는 방식은 현명하지 못하다. 

여성단체들이 주도한 운동 덕분에 여성차별 문제가 중요한 현안으로 부상했고, 호주제 폐지 등 주요한 법·제도적 개선은 여성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운동의 성장을 위해서는 여성운동이 여성 NGO들의 전유물이라는 식의 태도를 바꿔 새롭게 운동에 참가하는 단체들과 흔쾌히 협력적으로 함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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