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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막스 갈로, 푸른숲)

막스 갈로의 이 책은 불꽃같은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반혁명 군대 병사 룽에가 휘두른 개머리판에 두개골이 짓이겨진, 1919년 1월 15일의 끔찍하고도 비극적인 장면을 묘사한 서문으로 시작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세기의 전환기에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적 인물이 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과 정치적 견해의 많은 부분은 오늘날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살아있을 때 반대에 부딪히거나 무시되던 로자의 사상과 정치는 중대한 사건들에서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로자는 체제가 의회를 통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크게 비판했다. 로자는 자신의 사상을 이렇게 훌륭히 요약했다. “정치권력 장악과 사회 혁명 대신에 그리고 그것과 대비시켜 입법 개혁이라는 방법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공통의 목표를 향한 더 평온하고 느린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가 전쟁과 파괴를 낳는다고 분석했다. 거대한 전쟁 포로수용소, 첨단 무기, 핵폭탄의 시대가 오기 전에 이미 로자는 인류가 ‘사회주의냐 야만주의냐’ 사이의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로자가 정치적 삶의 대부분을 독일 사회민주당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막스 갈로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동요와 우경화 과정에 비중을 두어 비판적으로 다뤘다. 룩셈부르크는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부가 점점 혁명적 전통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레닌보다도 먼저 알아챘다. 갈수록 보수적으로 치닫는 관료의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노동자의 주도권에서 나온다는 점을 레닌이나 트로츠키보다 훨씬 먼저 이해했다. 막스 갈로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지도 원리가 대중과 끝까지 고통을 함께 하며 대중을 도우려 한 것에 주목한다. 로자는 “온갖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자발성과 창조성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또 로자는 그런 운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의식적인 지도력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불행하게도 로자 룩셈부르크는 항상 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어떤 종류의 조직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정식화하지 않았다. 이것은 로자의 주된 약점이었고 그녀는 아주 늦게서야 생각을 바꿨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이 1914년 애국주의 열풍에 직면해 무너져 제1차세계대전의 대학살을 지지했을 때 로자는 반대파를 이끌었고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이라는 원칙을 방어한 고립된 개인들과 작은 그룹들을 결집시켰다.

비극이게도 독일 노동자들이 전쟁에 맞서 반란을 일으켜 러시아 혁명의 모범을 따르는 듯 보였을 때 이 그룹은 조직돼 있지 않아 사태에 영향을 미칠 만큼 영향력이 있질 않았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볼셰비즘을 대립시킨다.

막스 갈로는 이 책에서 1905년 러시아 혁명을 바라본 로자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제헌 의회와 모든 수준에서의 피선거권을 지지했”고 “행동 문제에서는 레닌과 볼셰비키와 가까웠지만, 권력 조직의 방법론에서는 그들과 갈라졌다. 프롤레타리아가 차르의 전제 권력을 전복시킨 후에는 일단 공화파 부르주아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그러나 로자는 1905년 제1차 러시아 혁명이 발발했을 때 집필한 논문과 소책자들을 통해 “트로츠키와 파르부스가 개별적으로는 발전시켜 놓았으나 당시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거의 주장하지 않던 영구혁명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멘셰비키와 볼셰비키가 그들간의 깊은 균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혁명을 부르조아적인 것으로 생각한 반면에, 로자는 러시아 혁명이 부르조아 민주주의 단계를 넘어서 발전할 것이며 노동자의 권력장악 아니면 완전한 패배 가운데 하나로 귀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토니 클리프, 《로자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민주주의와 대립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로자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오로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서 구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로자는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볼셰비키가 제헌의회를 해산한 것에 비판했을 때조차 그녀는 소비에트 대신에 제헌의회를 주창한 것이 아니라 소비에트 더하기 제헌의회를 주장했다(제헌의회를 둘러싼 자세한 논쟁은 토니 클리프의 《로자 룩셈부르크》를 보시오).

러시아 혁명을 둘러싼 몇가지 논쟁이 있었지만 큰 그림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어느 곳에서든 미래는 ‘볼셰비즘’의 것”이라고 썼다.

막스 갈로는 이 책의 3분의 1 이상을 로자가 가족과 동료들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들을 인용해 개인적 삶과 심리 변화 추적에 치중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갈등, 연애, 자연과 예술과 문학에 대한 기쁨 넘치는 사랑 등 … .

물론 혁명가의 ‘뒷얘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대목이 쏠쏠한 재미를 줄지 모른다. 그렇지만 손에 땀을 쥐는 중요한 역사적 순간마다 그런 대목이 지면을 더 많이 차지해 맥이 빠진다. 무엇보다 로자는 혁명가가 아닌가? 만약 당신이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정치적 삶과 교훈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책보다는 파울 프뢸리히의 《로자 룩셈부르크 생애와 사상》(책갈피)이나 토니 클리프가 쓴 《로자 룩셈부르크》(책갈피)를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