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여성 차별에서 실질적 이득을 얻는다는 생각은 널리 퍼져 있다.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상당수 사람들이 남성이 더 많은 여가와 권력, 편의를 얻기 때문에 여성 차별적 현실을 유지·강화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상이 강력한 이유는 나름으로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남성들이 가정에서 가사 노동과 양육을 평등하게 분담하지 않는다. 성폭력, 가정 폭력의 직접적인 가해자는 주로 남성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이 곧 남성이 여성 차별에서 물질적 이득을 얻는다는 점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내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남성의 의무라고 여겨지는 상황은 남성들에게 전혀 특권적 지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남편의 육아 부담은 대체로 명백히 여성보다 작지만 여성이 아이를 기르는 데 쏟는 시간은 남편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기보다는 체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들이는 것이다.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개별 가정에 내맡겨 이득을 보는 것은 평범한 남성들이 아니라 이 사회의 기업주와 권력자 들이다. 즉, 지배계급은 비용이 덜 드는 방식으로 다음 세대의 노동력을 길러내고, 현 세대의 노동계급을 재충전시킨다.

양육을 사회화하면 노동계급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기업주들에게서 세금을 거둬 만든 믿을 만한 공공 보육 시설에 걱정 없이 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육아 부담 자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육아 부담

많은 사람들은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고 노동 시장 진출도 낮은 현상이 남성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라고 여긴다. 이 논리가 사실이라면,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가 더 열악해질수록 남성 노동자의 처지는 그만큼 더 좋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기업주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핑계 삼아 남성 노동자들의 임금을 압박한다.

많은 남성들이 여성 차별적 관념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기 쉽다. 하지만 여성 차별적 관념들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그 반영이다. 게다가 개별 남성들이 여성 차별적 관념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억압은 노동계급을 효과적으로 착취해서 지배계급의 이윤을 증대시키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억압은 착취라는 더 근본적인 불평등을 감추려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의 가족 제도는 노동력 재생산을 개별 가정에 떠넘기고, 여성에게 이중의 부담을 지우는 수단이다. 지배계급은 이런 상황을 피지배계급 남성과 여성이 모두 받아들이도록, 성 역할 고정 관념을 체계적으로 유포하고 교육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은 모두 착취받는 집단이다. 대다수 남성들은 사회의 부와 권력을 통제할 수 없고, 오히려 대다수 여성들과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남성을 모두 여성의 적으로 돌리면 노동계급 ─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를 다 포함하는 ─ 의 이익을 위한 투쟁에서 연대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남성들의 의식도 함께 투쟁하는 과정에서 바뀔 수 있다. 2000년 롯데호텔 여성·남성 노동자들은 74일 동안 파업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얻어 낸 소중한 투쟁의 경험을 했다. 당시 롯데호텔의 남성 노동자는 이 파업이 끝나고 더는 직장 여성 동료에게 ‘미스 김’이라고 부르지 못했다고 한다.

성별로 분리된 싸움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단결된 힘을 발휘하는 투쟁이야말로 여성 억압을 낳는 이 체제에 효과적으로 도전할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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