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21〉은 간혹 독자들에게 “너무 주장이 세다”, “좀 소프트하게 나가는 게 어떠냐?”는 얘기를 듣는다. 〈레프트21〉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진보적 독자일 텐데, 그들 가운데서도 신문의 주장이 너무 ‘세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물론, 〈레프트21〉처럼 급진적 주장을 하는 사회주의 신문이라 해도 대중의 정서를 고려해야 하고 급진적 주장을 현실과 관련지어 설득력 있게 해야 한다. 

사회주의 신문은 대중의 경험을 원칙, 과제와 효과적으로 연결할 때 지지를 확대할 수 있다.

대중의 정서와 동떨어진 채 추상적 주장만 남발한다면, 대중과 소통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레프트21〉은 대중 행동을 통해서만 진정한 사회 변혁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대중 운동을 건설하려면 대중 정서를 잘 이해해야 한다.

“투쟁”

구체적 정세와 무관하게 몇 년 동안 “무장하라”를 1면에 내건 영국의 소규모 단체의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대중과 고립된 채 선명성만을 자기위안으로 삼는 좌파에겐 미래가 없을 것이다.

일부 독자들이 〈레프트21〉이 ‘세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마 주류 언론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단어와 주장 때문일 것이다. 투쟁, 혁명, 사회주의, 레닌 같은 단어 말이다.

실제 〈레프트21〉 지난 호에서는 ‘투쟁’이란 단어가 1백23회 쓰였다. 〈한겨레〉에서 지난 한 달 내내 쓰인 횟수보다 세 곱절 많다.

〈레프트21〉이 “투쟁”을 강조하는 것은 그 투쟁을 통해서만 사회 변화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투쟁하는 노동자·학생 들의 소식을 전하고 그 투쟁의 승리에 필요한 전술·전략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또 국제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적 경험을 일반화해 현재와 다가올 투쟁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 등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분석은 이런 과제를 수행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물론 “한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늘 지배계급의 사상”(마르크스)이기 때문에 급진적 주장은 손쉽게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그래서 좌파 매체도 ‘소프트’하게 연예 소식 등을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배자들은 사람들이 부정부패한 정치인, 악덕한 기업주에 분노하며 투쟁에 나서기보다는 그들의 삶과 별 상관 없는 연예인 사생활 소식에 정신 팔리길 바란다.

그래서 이런 연예 소식과 중요한 정치·사회문제를 다룬 기사가 혼재된 주류 언론은 사람들이 이 사회의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끔 한다.

따라서 좌파 언론이 위의 논리를 수용해 연예 소식을 다루기 시작한다면 무엇보다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일관된 사회변혁적 시각을 독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 도대체 재벌 2세의 이혼 소식과 여성 연예인 화보집, 스포츠 스타의 스캔들을 어떻게 ‘좌파적’으로 전달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S라인’, ‘얼짱’같은 여성차별적인 단어를 쓰면서 말이다.

사람들도 연예인 소식을 보려면 훨씬 더 선정적으로 사생활을 집요하게 캐내는 주류 언론을 보지, 좌파 언론의 연예면을 보진 않을 것이다.

경험

그렇다면 〈레프트21〉 같은 사회주의 신문은 어떻게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상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나는 매일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노동, 부족한 임금, 불안한 미래 같은 고통스런 경험이다. 이런 경험은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주고, 이 사회를 변하지 않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끔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때로 이런 지긋지긋한 현실과 고통에 맞선 투쟁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의식이 발전한다.

사회주의 신문은 이런 투쟁을 고무하고 파편적으로 보이는 현상들 — 불평등, 전쟁, 굶주림, 여성 차별, 민주적 권리 억압 등 — 이 사실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 줘야 한다.

2008년 촛불항쟁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급진화했다. 사람들은 이명박과 그 정부를 조롱하고 혐오한다. 다시 한 번 거대한 투쟁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는지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촛불 당시 의회로 들어가자던 민주당과 선거 때 심판하자던 개혁주의자들이 옳은지, 노동자 파업을 포함한 더 거대한 대중 투쟁을 주장한 사회주의 신문이 옳은지 말이다.

투쟁이 클수록, 대중의 자신감이 높아지고 사회주의 신문에 보내는 지지는 커질 것이다.

사회주의 신문이 대중의 경험을 원칙, 과제와 잘 연결해 제시할 때 지지는 더 효과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큰 투쟁이 없을 때도 사회주의 신문은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