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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3대 세습:
이것이 과연 사회주의 사회란 말인가

북한 정권이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으로의 후계 구도를 대내외적으로 공식화했다. 3대에 걸친 국가 권력 세습은 독재정권들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남한 우파도 북한의 권력 세습을 비난한다. 〈조선일보〉는 “세계적 정치스캔들”이라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이들의 북한 권력 세습 비난은 위선이다. 권력자의 친인척들이 권력을 공유하는 게 문제라면, 이명박의 형님 이상득의 ‘만사형통’도 만만치 않다.

부와 권력의 대물림이 북한만의 특징도 아니다. 얼마 전 유명환의 딸 특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삼성 ‘이병철-이건희-이재용’ 세습처럼 남한 재벌들은 2~3대에 걸쳐 기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한국의 100대 주식 부자 중 78퍼센트가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았다.

비록 선거를 치르기는 했지만, 일본에서도 1991년 이래 역대 총리 12명 중 11명이 세습 정치인들이었다. 미국도 연방 상원의원 상당수가 정치 명문가 출신들이다.

봉건 왕조 국가?

우파들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두고 ‘봉건’, ‘왕조’라고 비난한다. 〈조선일보〉는 “나라의 대물림을 당연시하는 왕조일 뿐”이라고 했고, 〈경향신문〉도 북한이 “[봉건]왕조국가임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상황이라고 했다.

진보진영에서도 북한 체제를 봉건 왕조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2007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때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기획실장은 북한 사회가 “스탈린주의를 봉건적 잔재와 결합시킨 가장 퇴행적인 형태”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 체제에 대한 올바른 분석이 아니다. 두 차례의 핵실험에 성공하고 장거리 미사일도 자체 개발했으며, 노동계급이 대규모로 존재하는 북한이 봉건 왕조라고?

북한 체제를 왕조라고 보는 견해는 첫째, 북한 체제의 동력을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경제의 내적 모순과 계급투쟁의 동인도 해명하지 못한다. 예컨대 봉건 사회처럼 지배계급의 소비가 착취의 목적이라면 북한이 중공업과 군비 부문에 높은 비율로 투자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둘째, 북한을 봉건 사회처럼 정체된 사회로 본다면 북한 경제가 1950~60년대에 남한보다 역동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셋째, 북한 체제를 봉건 왕조라고 보는 관점의 정치적 문제점은 남한 체제가 북한 체제보다 우월하다는 입장으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과거 냉전 시절 많은 좌파들이 바로 이 논리에 따라 서방 자본주의에 정치적으로 투항했다.

한편 진보진영의 일부는 북한 3대 세습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북한 세습이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박정희가 유신헌법 제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강변한 것도 비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눈높이

박경순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동북지방 방문이 “미국에게는 그 어떤 타협도 굴종도 있을 수 없다는 정치적 메시지”이자 “북한의 후계 체제 구축의 기본 정신과 원칙을 명확히 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권력 세습을 반제국주의로 포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게다가 북한 정권이 일관되게 제국주의에 반대한 것도 아니었다. 북한은 냉전 초기 소련 제국주의에 기대어 형성된 국가다.

게다가 오늘날 북한은 한편에서는 미국에 맞서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과 끊임없이 타협하려 애쓰고 있다. 북한은 WTO에도 가입하고 싶어 하고, 김정일은 북한에게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을 사회주의 사회로 규정하는 것은 더더욱 잘못됐다. 사실,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있을 수 없다.

노동당 규약에 따르더라도 5년마다 열리도록 돼 있는 당대표자회가 44년 만에 열릴 정도로 북한 체제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노동당 당대회도 1980년 김정일로 세습을 공식화한 이래 한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 인민들이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반면, 북한 관료들은 권력을 독점하고 온갖 특권을 향유해 왔다. 미국의 진보 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비날론”(합성섬유) 옷을 입고 거친 운동화를 신은 채 일터로 가는 노동자 옆으로 맞춤양복에 외제 시계를 찬 관료가 벤츠 승용차를 타고 쏜살같이 지나가는 북한의 현실을 꼬집은 바 있다.

소수 지배계급이 다수 민중을 착취·억압한다는 점에서 북한은 남한과 다를 바 없다. 김정일이 ‘박정희를 존경한다’고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북한은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이라고 봤는데, 북한 국가 건설 과정에서는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 혁명적 투쟁은 존재하지 않았다.

소련군 탱크

소련군 탱크가 밀고 들어와 소련식 체제를 이식한 게 북한 국가의 성립 과정이었다. 북한 노동계급은 단 한번도 권력을 잡아 보지 못했고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도, 파업할 권리도 없다.

국가 권력을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북한 지배 관료들은 생산수단도 지배해 왔다.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압력에 대응해 강박적으로 축적을 하려고 노동계급을 쥐어 짜 왔다.

따라서 소수 지배자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북한 체제는 관료적 국가 자본주의 체제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남한이 주기적으로 축적 체제의 위기를 경험해 온 것처럼, 북한도 축적의 모순에 빠져 거듭 위기를 겪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