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을 정당화하는 거짓말들

 

늘 그래 왔듯이, 지배자들은 거짓말이 드러나면 이내 더 큰 거짓말을 내놓는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현지 조사단의 거짓 보고를 내세워 대중을 속이고 전쟁 지원을 정당화하려 한다.

노무현은 "아랍권의 정세와 이라크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철저히 확인한 다음, 파병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외교통상부 장관 윤영관은 "조만간 귀국하는 이라크 현지 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파병 여부와 파병 결정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나 이라크 현지 조사단은 압도 다수가 파병론자들이다. 이들은 쿠웨이트에 도착하자마자 관광에 나섰다.

또, 미군 헬기를 타고 이동하면서 정작 평범한 이라크인들은 거의 만나지 않았다.

 

이라크는 과연 안전한가?

 

현지 조사단은 10월 1일에 "이라크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국방부에 보고했다. 매우 심각한 거짓말이다.

같은 날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아랍과 무슬림 세계를 위한 홍보 외교에 관한 미국 자문단'(조지 부시가 지명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충격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세계적인 진보 언론인이자 〈인디펜던트〉 중동 특파원인 로버트 피스크도 미국 라디오 방송국 '데모크러시 나우'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미군은 바그다드에서만 하루에 60차례까지 공격받고 있다. … 이라크에서는 게릴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장에 가 보면 사태가 통제 불능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0월 2일에 국방부는 한국군이 이라크 북부 모술에 배치될 것이라고 시인했다. 국방부 정책실장 차영구는 "이라크 북부 지역이 아주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로 전 날, 모술에서는 일자리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모술에는 민주주의도, 치안도 없다"고 외쳤다. 한국군이 파병된다면 민주주의와 일자리를 원하는 이라크 민중을 짓밟는 점령군 노릇을 해야 한다.

모술은 주요 유전 지대인 데다 쿠르드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이유로 예전부터 터키·이란·이라크·쿠르드족의 갈등이 첨예했다.

지금도 모술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9월 15일에는 모술 시청 앞에서 알바니아 군 1명이 게릴라의 수류탄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25일에는 미군 차량들에 폭발물이 터져 적어도 4명의 미군이 사망했다.

이 곳을 담당하는 미군 101공중강습사단은 미군 최정예 부대다. 이 부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함께 시리아 국경을 넘나드는 게릴라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파병론자들은 미군을 제외한 외국 군대에게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달 28일에 폴란드 군대는 이라크인들과 교전을 벌였다.

그래서 〈조선일보〉(10월 1일치)는 "미국이 원하는 군대는 이라크에서 미군을 대신해 상황을 안정시킬 역량과 의지를 분명히 가진 강력한 군사력"이라고 매우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냉혹하고 잔인한 경제 논리

 

경제부총리 김진표는 "파병 쪽으로 결정되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재벌들의 이익단체인 전경련도 파병을 지지했다.

이들은 23년 동안 세 번 치른 전쟁과 12년 동안 계속된 경제 제재로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삶이 망가진 이라크인들의 희생을 대가로 한국 경제를 살리자고 말할 만큼 지독한 냉혈한들이다.

정치인들과 재벌들은 파병을 정당화하기 위해 파병으로 얻을 경제적 실리를 과장한다.

그러나 미국이 전후 복구 사업을 철저하게 독식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 기업들인 벡텔과 핼리버튼에 사실상의 이라크 재건 사업 독점권을 부여했다.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이라크에서 발주한 공사는 모두 27억 3천만 달러 규모다. 이 가운데 10억 3천만 달러는 벡텔이 수주했고, 17억 달러는 핼리버튼의 자회사인 KBR이 따냈다.

현대건설은 나시리야 야전병원 공사를 따냈는데, 이것은 제마부대가 발주한 공사였다.

일부 자본가들은 파병이 전자제품이나 담배 같은 소비재의 중동 수출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따라서 이라크 파병은 베트남 전쟁 때처럼 경제적 '특수'를 기대할 수조차 없다. 그런 기대가 비인간성과 야만적인 이윤 논리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라도 말이다.

베트남 전쟁 때 한국 정부는 7년 동안 32만여 명을 파병해 10억 3천6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5천 명이 사망하고 1만 6천 명이 불구자가 된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경제적 이득이었다. 지금도 5만 명이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제 돈 대고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 한국군 1만 명을 파병할 때 드는 연간 전비는 1조 2천억 원∼3조 5천억 원이다(서희·제마부대의 10개월 주둔 비용이 360억 원이다). 이 돈이 왜 애먼 이라크인 학살 비용으로 쓰여야 하는가.

파병을 거부하면 한미동맹이 흔들리게 되고 그리 되면 미국 자본이 한국 경제를 외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파병을 결정한다 해도 똑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 때문이다. 지난 4월에 한국 정부가 파병을 결정한 직후, 미국 상무부는 현대 하이닉스 반도체에 상계 관세를 매겨 보호 장벽을 높이 세웠다. 미국 지배 계급은 다른 나라 시장에 대해서는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한편, 자국 시장에 대해서는 보호무역주의를 실천하려 해 왔다.

 

과연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가

 

노무현은 파병의 대가로 한반도 평화를 사겠다는 뜻을 밝혔다. "파병 문제를 검토하는 데 있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과 확신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주미대사 한승주는 "주고받는 형식을 취하는 것은 우리의 입지를 위해 좋은 것은 아니"라고 반대했다. 괜히 조건부 파병을 걸었다 미국 강경파들에게 미움만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사실상 파병을 기정사실화해 놓고는 다만 조건부 파병이냐 무조건 파병이냐를 두고 서로 실랑이를 벌일 뿐이다.

노무현의 파병-한반도 평화 연계 구상은 자신도 믿지 않는 거짓말이거나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조지 W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미국의 세계 제패를 위한 구실로 이용하고 있다. 2002년 1월 29일 연두교서에서 부시는 "우리가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2002년 6월에 '부시 독트린'을 통해 "악의 축"을 어떻게 다룰지를 발표했다 ― "선제 행동". 첫번째 시험대가 바로 이라크였다.

부시는 이라크 전쟁 '승리'의 여세를 몰아 다음 목표물로 나아가려 했다. 여기에는 북한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은 이라크 수렁에 빠져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1950년대 영국 군대가 케냐·말레이시아·아덴·키프로스에서 벌인, 그리고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벌인 식민지 전쟁과 흡사하다. 미국 국방부가 장교들에게 전술을 가르치기 위해 알제리 전투 영화를 상영하는 까닭이다.

부시는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미국 내에서 점령에 대한 지지가 떨어지고 있다. 부시의 인기는 9·11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핵심 설계자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가 언론에서 난도질당하고 있는 현실은 전쟁광들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다.

럼스펠드는 최소 병력만으로 이라크를 침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두세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군의 추가 파병을 반대한다.

반면, 부시와 부통령 딕 체니는 이라크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이 유엔 깃발 아래 병력을 추가 파병해 주기를 원한다. 이것은 미국이 시리아·이란·북한, 심지어 베네수엘라·쿠바·중국 같은 국가들을 마음대로 위협하게 할 것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전략을 이라크 사막에 파묻어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파병 대가로 한반도 평화를 얻겠다는 노무현의 구상은 거짓말 혹은 야무진 꿈이다.

그리고 이것을 현실에서 뜻하는 바는, 지난 봄과 꼭 마찬가지로 노무현이 대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병을 강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 되면 노무현은 자신의 말을 실행에 옮기게 될 것이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

 

대중 행동이 필요할 때

 

노무현 정부와 국회는 갈수록 고조되는 반전 여론 때문에 서둘러 파병을 추진할 것이다. 괜히 질질 끌다가는 사태가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 지배자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의회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파병 여부를 결정하자는 주장에는 이처럼 국회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정당한 불신이 깔려 있다.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또 다른 동기는, 국회에서 파병 동의안이 통과되면 파병 반대 운동이 끝날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설령 국회가 파병안을 통과시킨다 하더라도 이것이 반전 운동은 끝났다거나 패배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9·27 반전 행동은 지난 봄 일어난 반전 운동이 더 넓고 더 깊게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 줬다.

무엇보다 기성 정치인들은 파병을 결정하는 순간 심각한 정치 위기에 빠져들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결정적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투표는 투표일까지 대중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게 만듦으로써 노무현의 정치 생명을 연장시켜 줄 수 있다. 1968년 프랑스 공산당의 국민투표 제안은 대중 항의를 피해 독일로 도망갔던 드골이 권좌에 복귀하도록 도왔다.

실로 대중적 반전 행동이 매우 중요할 때다. 9·27 행동을 디딤돌 삼아 10월 11일 파병 반대 집회를 대규모로 건설해야 한다. 이 행동은 10월 25일 점령 반대 한미 공동 시위와 11월 9일 노동자대회로 이어져야 한다.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 스마트폰 앱으로 〈노동자 연대〉를 만나 보세요!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아이폰 앱 다운로드

📮 매일 아침 이메일로 〈노동자 연대〉를 구독하세요! 아이폰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