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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그리고 국제주의

쌍용자동차 패배 이후로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잃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전국 노동자 대회나 G20 반대 집회에서는 변화의 기운이 감지됐다. 그리고 그 첫 타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G20이 끝나고 자화자찬하던 이명박의 얼굴에 강펀치를 날린 셈이다.

현재 남한 지배계급은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이 프랑스나 그리스에서처럼 노동계급을 깨우는 신호탄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고, 〈조선일보〉 등 우파 신문들은 벌써 역겨운 선전·선동을 시작했다.

그들 주장의 핵심은 ‘현대차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 노동 유연화를 해야 하고, 상생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선동 때문에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러다가 현대차가 경쟁력을 잃으면 다 같이 망하는 거 아냐?’, ‘노사 화합하고 상생 경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 수 있다.

현대차가 경쟁력을 잃어서 망하고 말고를 떠나서 우선 노동자들이 양보해서 ‘상생’ 경영을 통해 노동 유연화를 받아들이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자.

도대체 노동 유연화란 무엇인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이고, 사람을 사람이 아니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쓸모없어진 일회용품처럼 문자 메시지 하나로 해고당하는 것이 비정규직의 현실이고, 노동 유연화의 종착역이다. 노동 유연화는 노동계급에게는 파멸의 다른 이름이다.

이렇게 노동 유연화가 노동자를 원심분리기에 넣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짜내는 괴물인데도, 노동자들이 노동 유연화를 받아들이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노동 유연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기업이 노동 유연화를 받아들인 경쟁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나아가 기업이 망해서 다 죽는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렇게 문제의 근원이 경쟁이기 때문에 경쟁 기업의 노동자들이 노동 유연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직장에서도 노동 유연화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최선의 결과다.

그렇다면 이 최선의 결과는 어떻게 얻어질 수 있을까? 바로 국제주의를 통한 전 세계 노동계급의 연대가 해결책이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 안에서 경쟁시키고, 개별 자본가들이 끊임없이 노동 유연화로 ‘경쟁력’을 확보해 경쟁자를 누르고 승리하려 하기 때문에 국제주의가 없이는 노동 유연화에 맞서 최종 승리를 거둘 수 없다.

쉽게 말해서 국내에서 아무리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해서 정규직화되었다고 해도 기아차 노동자들이 노동 유연화를 받아들이면 현대차의 경쟁력이 감소해서 결국 노동 유연화의 악순환이 반복되며, 남한의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승리했다고 해도 미국의 GM 노동자들이 노동 유연화를 받아들이면 같은 이유로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국제주의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상생 경영이라는 넓고 큰 길로, 자본가들의 거짓 선동에 속아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노동 유연화를 받아들이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국제주의라는 좁고 작은 길로, 전 세계의 노동계급과 연대 투쟁해서 노동 유연화를 막는 길이다. 넓고 큰 길은 가기는 쉽지만 끝에는 죽음이 있고, 좁고 작은 길은 가기는 어려워도 끝에는 생명이 있다. 게다가 이 길은 투쟁할수록 넓어지는 길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국제주의라는 길로 가야 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은 노동자라면, 국제주의의 깃발 아래에서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