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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군사동맹을 강화해 지정학적 긴장을 높일 한미FTA

한미FTA의 문제점은 단지 경제적인 분야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FTA를 통해서 한미 경제동맹과 안보동맹을 이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경총과 전경련은 “최근 북한의 무력도발 이후 남북한 긴장관계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미FTA가 가져다줄 막대한 경제 및 국가안보적 이익을 감안해 조속히 비준돼야 한다”고 난리였다.

남북한 상호 포격 사태가 한미FTA 추가 협상 타결의 중요한 계기가 됐음은 분명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 정부가 연평도 때문에 한미FTA에서 놀라운 양보를 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이참에 보수 우파들은 한미군사동맹을 더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잡았다며 한미FTA 비준 촉구를 부르짖는다.

미국과 한국의 지배자들은 한미FTA를 자본의 이익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여길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정치·군사적인 이익도 얻겠다는 전략을 세워 왔다.

지정학적인 경쟁 우위

미국 지배계급은 동아시아에서 중국 견제 효과에 민감하다. 미일동맹과 한미동맹 강화는 미국 지배자들로서는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다.

199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 이후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협정을, 그것도 동아시아에서 맺는 것은 중국 견제 효과를 내기에 안성맞춤이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을 중심으로 지역 통합을 형성하는 것은 현재로는 가능성이 낮지만 미국 지배자들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통상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 지배자들은 이것을 견제하고 싶어 했다.

미국 정부가 2006년부터 한미FTA를 서둘렀던 것도 지정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미국은 2006년 6자 회담 종결 이후 ‘전략적 유연성’ 등을 추구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교두보를 굳건히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 미국은 FTA를 추진함에 있어 외교·안보적 사항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왔다. 미국 최초의 양자 간 FTA인 이스라엘과의 자유무역협정은 미국의 중동정책을 반영한 결과이다. 미국이 미주 지역의 FTA를 결성하려는 것도 넓게 보면 중미의 민주주의 확립[미국 정책에 친화적인 정부 세우기-옮긴이]에 대한 관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요르단과의 자유무역협정은 중동평화협상 과정에 참여하는 요르단의 경제기반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한국의 FTA 전략》, 삼성경제연구소)

미국은 미·요르단 FTA를 기반으로 이집트, 바레인, 오만 등과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2013년까지 중동자유무역지대 협정(MEFTA)을 맺으려고 하는데, 이것은 중동에서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이런 시도의 한편에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점령, 폭격과 민간인 학살이 벌어져 온 것이다.

이처럼 무역정책과 군사 안보 전략의 결합을 더 강화하는 것은 2001년 9·11 이후 미국 지배계급의 중요한 전략이었다. 미국의 안보전략문서는 “오늘날 무역협정은 냉전시대 안보조약과 동일한 목적을 수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위와 같은 전략은 오바마 정부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오바마는 한미동맹이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태평양 전체 안보의 린치핀(linchpin : 수레나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으로 핵심이라는 뜻)”이라며 한미FTA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물론 남한 지배계급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없이 단순히 미국의 압력에 복종한 것은 아니다. 한국 지배자들도 미국과 FTA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안보적 이익이 있다고 여기고 나름의 전략을 추구해 왔다.

린치핀

우선 경제적으로는 한미FTA의 “외부 충격”을 통해 국내에서 시장화·노동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려 한다. 나아가 남한 지배계급은 한미FTA를 통해 미국과 지정학적 동맹을 강화하면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밀리지 않는 위치에 서고 남북관계에서도 더 주도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전략적 판단과 이해관계는 사실 노무현 정부 때도 추구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것을 ‘동북아 중심 국가’로 불렀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신아시아 외교’로 부르지만 두 정부 모두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미FTA를 추진해 왔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레임덕 상황에서 지지층의 반발도 무릅쓰며 한미FTA를 추진했고,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까지 수입하려 하면서 한미FTA에 매달렸던 것이다. 이번에도 이명박 정부는 자동차 등에서 일부 손해를 보면서까지 재협상 타결에 매달렸다. 이런 안보 동맹 강화는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간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남북한 상호 포격 사태 같은 긴장을 더 앞당길 수 있다.

외교통상부가 말하는 “경제영토 확장”의 수단인 FTA는 기업 이윤의 군침을 돋우고 더 나아가 군사 안보 동맹을 보증해 주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결합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속살인 것이다. 한미FTA 비준을 저지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