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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믿지말라

노무현을 믿지말라

9월만 해도 파병 쪽으로 상당히 기울었던 노무현은 대중의 반발이 워낙 거세자 최근에는 동요하며 국민 대중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10월 13일 시정 연설에서도 “여러 가지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거짓말은 계속됐다. 이라크 현지 조사단은 “이라크 북부가 안정화돼” 있으니 전투병을 파병해도 된다고 보고했다.

노무현 정부의 다급한 처지를 드러내는 어처구니없는 모순이다. 이라크가 안전하다면 왜 전투병을 파병해야 하는가?

노무현 정부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거대한 압력에 직면해 있다. 먼저, 미국의 압력이다.

조지 W 부시는 이라크 민중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더 많은 군대를 투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 부시 일당은 서로 다른 노를 젓고 있다.

부시가 백악관 내에 ‘이라크 안정화 그룹’을 구성하기로 한 결정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부시 정부 외교안보팀의 갈등만 노출시켰다.”(〈파이낸셜 타임스〉)

오죽하면 신보수주의의 정신적 지주인 〈위클리 스탠다드〉 편집장 윌리엄 크리스톨조차 “부시 정부가 내전으로 무력해지고 있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게다가 유엔 안보리는 미국이 제출한 이라크 수정 결의안에 합의하지 못했다. 미국과 프랑스의 갈등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파병 반대 압력 완화 요인으로 기대를 걸었던 유엔 결의를 통한 다국적군 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올 초에도 그랬듯이, 유엔의 동의를 얻지 못한 미국은 각국에 파병 압력을 거세게 넣을 것이다.

10월 21일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부시를 만날 예정인 노무현은 파병 선물을 들고 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것이다. 이 때가 파병 반대 운동의 최초 중요한 고비가 될 듯하다.

왕따

노무현이 미국의 압력을 거부할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통합신당 의원 장영달이 토로했듯이, “미국으로부터 왕따를 당했을 때 우리 나라는 부지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남한 지배자들이 공유하는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의 이런 두려움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주의적 전략이 실현 불가능함을 보여 준다.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에 진정으로 도전할 수 있는 길은, 국제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이 얼핏 보여 주듯이 노동 계급과 피억압자들의 국제적 단결을 추구하는 국제주의 전략이다.

노무현이 미국의 요구에 굴복해 파병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거대한 저항을 부를 것이다.

지난 봄 파병 국면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당시 노무현은 집권 초기였고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기대와 환상을 품었다. 그래서 노무현은 파병을 밀어붙이고 나서도 자신이 60∼70퍼센트의 지지를 받는다고 강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한국은 주요 참전국이 아니었다. 한국은 약 680명의 ‘비전투병’을 파병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은 7개월 동안 “축적된 국민의 불신” 때문에 신뢰성 위기를 겪고 있다고 그 자신이 고백할 정도가 됐다. 지지율은 30퍼센트 안팎이다. 〈내일신문〉 여론 조사에서는 16.5퍼센트까지 추락했다.

또, 한국은 1만 명 규모의 전투병을 파병해야 하는 주요 파병 국가 반열에 올라 있다.

이런 이유로, 노무현이 전투병 파병을 추진하면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전락할 게 분명하다. 영국 총리 블레어의 오늘이 노무현의 내일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재신임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은 재신임 국민투표라는 얄팍한 꼼수를 내놓았다. 자기 지지자들을 재결집시키는 한편, 대중 운동(특히, 반전 운동)을 분열시키려는 시도다.

신뢰성 위기를 겪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해 놓고는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노무현의 재신임 국민투표가 미국의 파병 요청을 우회적으로 거부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또, 파병 결정이 국민투표 이후로 연기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위험한 낙관이다. 노무현은 국민투표 전에 그 동안 대중의 반발에 부딪혀 결정하지 못한 현안들 ― 예컨대, 이라크 파병 ― 을 처리하려 할 수도 있다.

이왕 재신임을 묻기로 한 마당에 껄끄러운 문제들을 재신임 전에 처리하려 할 수 있다. 그래 놓고는 ‘나를 신임할래 말래’ 하고 국민의 멱살을 잡고 협박할 것이다. 불신임됐을 때 생겨날 “국정 혼란”에 대한 대중의 불안감을 한껏 이용하려는 책략이다.

일부 온건한 세력들은 반전 시위가 이런 “혼란”을 초래할 것을 우려해 실제로 행동을 자제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노무현이 노리는 바다.

반전 운동가들은 노무현의 간교한 술책을 꿰뚫어볼 필요가 있다. 위험한 낙관도, 소심함도 모두 피해야 한다.

반전 운동은 중요한 시험대에 올려져 있다. 그 시험대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매우 명백하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 전쟁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한국 정부가 파병을 철회하지 않는 한 반전 운동은 계속 전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