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처음에 등장할 때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다. 한국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현재 오바마는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주범이 돼 있다. 이명박과 아주 죽이 잘 맞는 오바마를 보며 당혹감이 느껴질 정도다. 게리 영은 우리에게 오바마에 대한 기대가 어떻게 실망과 배신감으로 바뀌었는지 설명해 준다. 게리 영은 〈가디언〉 칼럼니스트이자 저술가로, 현재 〈가디언〉 뉴욕 특파원으로 있으며, 미국 진보 주간지 〈네이션〉에 미국 정치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이 글은 영국의 반자본주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0년 12월호에 실린 것을 일부 축약 번역한 것이다.


오바마가 당선했을 때 사람들은 거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출 정도로 기뻐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8년 집권이 끝나고 오바마가 승리하자 사람들이 새로운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품은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오바마는 최악의 반동적인 공화당 선거 운동에 맞서서 출마한 흑인 민주당 후보이고, 최악의 반동적인 대통령이 거의 10년간 집권한 뒤에 대통령에 당선한 것이다.

2년 전 취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83퍼센트였다. 당시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 과반이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료를 낮추고, 대안 에너지 생산을 갑절로 늘리고, 세금을 줄이고,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고, 노동조합 가입을 손쉽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2009년 10월, 연방 정부 보조금을 타기 위해 필사적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오바마는 경제 위기로 고통받는 지지자들이 요구한 정책을 도입하지 않았다.

어림잡아 응답자 3분의 2 이상이 오바마 대통령이 모든 어린이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보장하고,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줄이고, 전국에 공공기반시설을 확충하리라고 생각했다. 

70퍼센트가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1기를 마칠 때 쯤에는 자신의 형편이 나아지리라고 봤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너무도 빠르게 무너졌다. 얼마 전 중간선거에서는 1948년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집권당이 패배하고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으로 복귀했다. 민주당은 상원에서도 몇 석을 잃었다.

2008년 대선 당시에 미국의 분위기를 엿볼 겸, 나는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에 있는 한 바에서 개표를 지켜봤다. 그곳에서는 흑인들이 가게를 가득 메우고 샘 쿡의 “세상은 바뀐다”와 맥파든과 화이트헤드의 “이제 우리를 막을 자 없다네”를 흥겹게 부르고 있었다. 

2년이 지난 뒤, 나는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티 파티 익스프레스 모임의 초대를 받아 아리아 호텔 20층에 자리한 호화로운 연회장과 카지노에서 개표를 지켜봤다. 그곳에서 나는 잘 차려 입은 백인들이 재정적자 감축을 떠들어 대는 것을 들었다. 선거가 정치 분위기를 알려 주는 유일하고 가장 믿을 만한 통로라고 친다면, 2년 전과 지금이 같은 나라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이유를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오바마가 집권한 첫 해에 빈곤율은 1.8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급등했다. 이것은 빈곤율 기록을 시작한 후, 1년 새에 가장 가파르게 오른 경우였다. 지금 실업률은 9.6퍼센트다. 그가 권력을 막 쥐었을 때에 실업률은 7.6퍼센트였다. 주택 압류 비율도 늘고 있다. 

더욱이 오바마는 건강보험 논쟁 당시에 리더십을 보여 주지 못했다. 부시가 만든 고문 기관들이 대부분 온전히 남아 있다. 이라크 점령이 확대됐다. 주택 차압을 중지하겠다는 약속도 저버렸다. 그러나 지난 2년에서 어떤 결론을 끌어내자면 더욱 복잡한 분석이 필요하다.

실패했음에도, 적어도 미국 안에서 오바마는 린든 존슨[1960년대 ‘위대한 미국 사회’라는 야심찬 개혁 정책을 추진한 미국 대통령] 이래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이다. 

오바마는 건강보험 개혁 법안, 경기 부양 법안, 금융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라크 주둔 미군을 대폭 감축했고, 저소득 학생에게 학자금 대출을 늘렸고, 여성 대법관 두 명(그중 한 명은 라틴계다)을 임명했다. 

그러나 상황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이런 성과는 너무 사소한 것이어서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오랫동안 불황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건강보험 개혁이 아니라 건강보험 그 자체를, 경기 부양책이 아니라 일자리를, 군살 뺀 이라크 점령이 아니라 점령 종식을 요구했다. 또, 학자금 대출이 늘어 봤자 등록금 액수가 크게 늘었기에 별 소용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냉소적으로 변하고 환멸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중간선거 당일 민주당 쪽이든 공화당 쪽이든 상대편으로 표가 넘어가진 않았다. 민주당은 2008년에 견줘 흑인 표와 라틴계 표를 10퍼센트 잃고 젊은이 표를 12퍼센트 잃었다. 

이런 득표율 하락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패한 이유는 지지자들이 그야말로 넌더리를 내고 사기 저하돼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자유주의자들(특히 오바마 당선을 위해 엄청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한 이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런 배신감을 가장 분명히 표현한 사람은 지난 9월 대통령과의 대화 방송에 출연한 흑인 여성(오바마 대통령의 2008년 선거 지지자들 가운데 가장 든든한 집단) 벨마 하트였다. 

하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제 지쳤습니다. 저는 당신, 당신이 이끄는 정부, 그리고 제가 표를 던진 이유인 당신이 말한 변화를 옹호하는 데 지쳤습니다. 저는 현재 미국의 상황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런 정서는 이해할 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행동하기보다는 대통령에게 의지하고픈 심정을 반영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좀더 잘했다면 상황이 달랐으리라, 그가 분발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식의 비난은 은연중에 한 인간과 관직을 숭배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한 숭배는 민주주의와 들어맞지 않고 좌파 정치와도 양립할 수 없다. 

사실, 제2차세계대전 이래 미국에서 이뤄진 모든 항구적이고 진보적인 발전은 선거 정치 바깥에서 대중이 행동했을 때 나타났다. 이런 행동은 정치인들과 법원이 대중의 열망에 부응하게 만들었다.

미국 중간선거는 사람들의 보수화를 보여 준 것이 아니었다. 출구조사를 보면, 비록 공화당에게 의회 권력이 넘어갔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공화당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론들은 공화당의 승리를 대중 운동의 승리로 지나치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티 파티

흔히, 티 파티로 알려진 저항적 포퓰리즘 덕분에 공화당이 승리했다고 여긴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 는 몇 달에 걸쳐 전국의 모든 티 파티 모임과 접촉을 시도하며 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있지도 않은 모임이 많았다고 밝혔다. 

모임의 70퍼센트가 2010년 한 해 동안 정치 행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티 파티가 가장 극적인 성과를 올린 바로 그해에 말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티 파티를 “운동이라기보다는 뚜렷한 연결망 없이 모인 이질적인 집단이며 놀랍게도 정치 문제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고 묘사했다. 

티 파티를 전국적으로 활기 넘치고, 기세등등하며, 주도권을 쥔 세력으로 그리면서 티 파티가 먼저 공화당을 접수하고 다음엔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 

사실은 두 가지의 티 파티 현상이 존재한다.  

첫째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매우 느슨하게 소속된 모임으로, 그들 대부분은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을 티 파티 참여자라고 부르지만, 그러한 일체감을 빼면 그 사람들을 티 파티라고 부를 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조직적 구조도, 리더도 없고, 회원 규약이나 강령도 없다. 그것은 사실상 한 세대 이상 존재해 온 미국 우파를 재배치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름만 새로 붙인 것이었다.

둘째는 풍부한 자금을 보유한 단체들이 기층을 대변하고 티 파티를 대표한다고 말하지만, 이메일 리스트를 공유하는 것을 빼고는 티 파티와 어떠한 조직적 연계도 갖고 있지 않은 단체들이다. 

루퍼트 머독[세계적으로 유명한 우익 언론 재벌]이 소유한 〈폭스 뉴스〉의 무비판적이고 지속적인 보도의 도움을 받아, 티 파티라는 이름과 일체감은 있지만 아직은 어설프고 느슨한 집단을 응집력 있고 선거에 영향력을 미치는 세력으로 변화시켰다.

티 파티가 기층 운동을 가장해 “거짓 선동”을 펴고 있다는 주장은 진정한 요점을 놓치고 있다. 

티 파티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만을 날조(뉴욕 맨하탄에 이슬람 센터를 짓는 문제나 오바마의 종교와 출생지와 같은 것들)하면서가 아니라, 은행 구제 금융, 일자리 문제, 주택 가압류 문제 등 현실의 불만들을 이용하면서부터다. 

1994년 공화당 혁명을 이끌어서 중간 선거에서 클린턴을 좌절시켰던 뉴트 깅리치는 이번 중간 선거 2주 전 라스베가스를 방문해 ‘일자리를 위한 순회 강연회’에서 연설했다. 

지지자들은 “이곳에 일자리를 만들라, 지금 당장 일자리를 만들라” 하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었다. 

연단에서 그들은 은행 구제 금융과 정부 지출에 격분했고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그들이 제안한 해결책이 사이비에 불과할지라도, 그들의 불안감 가운데 많은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이상, 그들도 그런 문제에 부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물론, 경제가 나아진다면 이러한 불안 가운데 어느 것도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 우파가 긴축 정책을 요구하는 것을 볼 때,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그것은 정부의 노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오바마를 도울지 그렇지 않을지는 그의 정치 책략이 공화당을 능가하는 정도에 달렸다. 그는 공화당을 자신이 국민을 위해 하려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정당으로 보이게끔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홍보전에서 누가 이기든, 사람들은 계속 고통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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